혼잣말이 지겨운 오미크론 확진자의 실시간 자가격리 체험담
코로나 자가격리 6일차, 오전 내내 마당에서 일을 하고 뜨거운 물에 샤워 후 쓸데 없이 에너지가 남아 돌아 주방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지금 제가 보고 있는 실시간 풍경이 딱 이렇습니다. (왼쪽이 우리 마을 작은 항구의 방파제인데 이제 물이 들어오고 있군요.)
지난주 열도 없고 그냥 목이 잠기는 가벼운 목감기 증상에 혹시나 해서 자가진단키트로 검사를 해보니 양성이 뜨더군요.
"에이~ 설마~ 열도 없는데? 이거 정확도가 영 떨어지는데? 엉터리 아냐?"
자가진단키트의 성능을 매우 우습게 보고 비웃음에 그냥 무시하려 했으나, 그래도 행정적 절차는 따라야 했기에 어마어마한 대기시간을 들여 선별진료소에서 PCR검사를 받았습니다.
결과는 확진!
저는 양성. 와이프는 음성. 아들도 음성.
"뭐야? 왜 나만 양성이지? 아놔~ 방에서 홀로 갇혀 7일을 지내느니 차라리 서천집에서 자가격리 하겠어!"
돼지고기 1kg, 조리된 삼계탕 3인분, 참치캔 3개, 스팸 3개, 계란 한판, 김치, 생수, 햇반 한 박스, 바나나, 라면 잔뜩, 기타 등등.
어차피 서천집에는 비상식량이 늘 가득했기에 단백질 위주로 와이프에게 장을 부탁해 재빨리 차에 싣고, 논스톱으로 서천집에 도착하였습니다.
솔직히 병간호도 없이 홀로 지내야 한다는 불안감 보다는, 그냥 홀로 지낼 수 있다는 기대감과 설렘이 더 컸습니다. (와이프는 제 브런치를 보지 않습니다. ㅋㅋㅋ)
결론적으로 코로나 오미크론의 증상은 인터넷에 올라온 각종 후기와 별반 다르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경미한 수준이었고, 타이레놀의 약발을 잘 흡수하는 몸이라 별다른 처방약 없이 무난하게 6일차까지 오고 이제 하루를 더 남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근데 지난 6일이 어땠을까요? 처음 내려 올 때는 하루종일 뒹굴거리며 온갖 TV프로그램을 섭렵하고 밀린 영화를 잔뜩 봐야지 했는데,(그러고 보니 TV와 영화를 많이 보긴 했군요.^^;) 의외로 평소보다 많은 활동량으로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막상 내려오니 할 일이 참 많더군요.
처음엔 메마른 매실나무 가지 사이에 앙증맞게 올라온 작은 새싹 봉오리를 보며 '이제 봄이 오려나보다~' 하며 감상에 젖고 있는데, 문득 이녀석들에게 영양식이라도 줘야겠다는 생각에 3년째 묵힌 퇴비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한 포대에 20kg짜리 퇴비를 여러 차례 나르고 뿌리며 이제야 허리를 좀 피고 있는데, 이번에는 또 울타리에 올라온 불청객 넝쿨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합니다.
"아놔~ 이 잡스런 잡초 같으니! 언제 이렇게 덮어 버렸데?"
작년에 보트를 사서 매주 주말이면 일도 안 하고 낚시만 하고 놀고 먹었더니 울타리가 아주 난리도 아닙니다.
어떻게 합니까? 남아 도는게 시간과 체력인데 해야죠.
집 주변 울타리를 돌아 각종 넝쿨과 잡초를 제거하는 데만 딱 2일이 꼬박 걸렸고 겨울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톱과 낫을 들고 정말 칼춤을 추었습니다.
아~ 진짜 환삼덩굴 보다 칡넝쿨은 정말 징~ 합니다. 꽈배기처럼 남천나무 줄기를 바싹 꼬고 있는데 한올 한올 다 풀어 주느라 정말 1년치 인내심 다 써버렸습니다.
대충 이렇게 마무리를 지으니 3일이 훌쩍 지났습니다.
근데 보이시나요? 이번에는 마당을 점점 옥죄여 오는 대나무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습니다.
저 대나무 사이 사이 제가 심은 왕자두 나무들이 전혀 보이지가 않네요.
저 대나무 사이 사이 제가 심은 두릅과 오가피들은 발견하기가 숨은그림 찾기 보다 어려워졌습니다.
"그래, 내가 이참에 저 썩을 대나무도 아작을 낸다!"
대나무를 속아내는데 또 꼬박 하루가 갔습니다....
대나무는 정말 처리하기가 제일 골치 아픕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땔감으로 쓰면 되겠지 했는데, 대나무 마디마다 공기가 차있어 만약 마디에 구멍을 뚫지 않고 그냥 불구덩이에 던져 넣으면 빵빵 터지는 것은 물론, 불씨가 사방팔방 튀기 일수입니다.
몇 번 시도하다가 위험해서 접었습니다. 혹시 땔감으로 쓰실 분들은 꼭 폭발 가능성을 염두해 두시기 바랍니다. 진자 식겁합니다.
저는 일단 겨울동안 쓰지 않는 텃밭에 쌓아 놓고 나중에 마르면 파쇄기로 갈아 버릴 계획입니다.
시간 참 빠르더군요. 그냥 마당에 나가 왔다갔다 땀흘리며 일하고, 밥챙겨 먹고, TV 좀 보다보면 금방 하루가 가더군요. 거참...
또 오늘은 마당에 골프연습장을 만들면 어떨까 하고 한참을 궁리하고 설계하고 하며 밖에서 보냈습니다.
다음에 오면 대나무밭 사이로 골프연습장도 한번 만들어 보려고요. ㅎㅎㅎ
골프채 들고 속속들이 올라오는 잡초를 타겟삼아 연습하는 재미도 꽤 쏠쏠 하더군요. ^^
그냥 하루에 두어시간 마당에 나가 일하면 걸음수가 6천보에서 7천보는 평균적으로 나옵니다.
자가격리중인데 평소보다 훨씬 운동량도 늘었습니다.
이거 자가격리하는 사람 맞나... 싶네요. ^^
돌이켜보면 코로나가 터지고 이 세컨하우스 덕을 참 많이 봤습니다.
지은 지 8년이나 됐는데 최근 2년 동안 가장 알차게 사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간적으로도 가장 많은 시간을 최근 2년에 보냈고 말이죠.
게다가 이번에 자가격리를 하면서 깨달은 점도 있습니다.
누구는 마당이 넓으면 나중에 고생한다고 하는데, 저는 마당이 넓어야 할 일도 많고 바쁘게 움직일 수 있어 더 좋다고 확신합니다.
집만 덩그러니 있었다면 나중에 은퇴 후 이곳에 정착하였을 때, 땀 흘릴 일도 없이 매일 무료한 삶이 되지 않을까요?
제 기질이 가만히 있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스타일이라 그런지, 노후에 이정도 일거리라도 있어야 운동삼아 움직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무튼! 코로나 확진 받고 매일 땀흘리며 일하고 씻고 배불리 먹고 실컷 자니 세상 행복합니다. ㅎㅎㅎ
글을 다 쓰고 나니 앞의 항구에 물이 꽉 들어찼군요. 이제 남은 하루를 어찌 보낼까 또 고민하며 쉬어야 겠습니다.
저녁엔 남은 돼지고기로 홀로 무알콜 파티를 열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