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물은 메카물끼리, 학원물은 학원물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하루히 시리즈도 역시 마찬가지이며, 특히 교고쿠도 시리즈 중 스핀오프인 백기도연대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언급되곤 한다. 이 글은 하루히 시리즈가 표절임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실제로 하루히 시리즈는 백기도연대의 표절이라기보다는, 패러디 혹은 팬픽의 수준에 가까운 것으로 많이 설명되고 있다. 이 글은 백기도연대라는 작품을 통해 하루히 시리즈를 보다 더 깊이 이해해보자는 목적으로 쓰였다. 도대체 어떤 부분이 비슷한가 했을 때, 가령 일반적으로 백기도연대와 하루히 시리즈의 공통점으로 흔히 알려진 부분들에 정리하면,
- 하루히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가 쿈의 1인칭 서술인데, 백기도연대에서도 1인칭을 취하고 있다. 특히 1인칭으로 서술되면서 쿈의 본명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 특이한 컨셉은 백기도연대의 모토시마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름을 잘 못 외운다는 에노키즈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모토시마를 온갖 별명으로 부른다..
- 장미십자탐정사무소 에노키즈의 책상 위에는 탐정이라고 적힌 삼각 명패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문예부 컴퓨터 자리에는 단장이라고 적힌 삼각 명패가 있다.
- 백기도연대의 각 장의 이름은 "장미십자탐정의 우울/울분/분개/개연/연의/의혹"이다. 우울까지는 우연일지 몰라도, 분개까지 나왔으면 일부러 패러디한 것이 맞지 싶다.
- 결정적으로, "에노키즈 레이지로"라는 캐릭터를 보면 확신할 수 있는데, 비상식적, 행동파, 비범, 무례는 기본이며, 주변 사람들을 하인 취급, 잠자코 있기만 하면 미남이며, 주변 사람들을 별명으로 부르는 캐릭터이다. 너무나 하루히스럽다. 아니, 하루히가 너무나도 에노키즈스럽다.
이 소식을 듣고 책을 꼭 읽고 싶어 백기도연대 우, 풍의 2권을 모두 읽었다. 사실 원작을 모르니 매우 지루한 책이지만 나름대로 끝까지 읽고 하루히 시리즈와 비교해본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아래의 내용은 백기도연대만을 읽고 정리했으므로, 본편인 교고쿠도 시리즈를 읽은 독자가 있다면 틀린 점을 꼭 확인해줬으면 한다.
필자가 발견한 내용은, 발견했다기보다는 이 글에서 필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교고쿠도 시리즈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단지 하루히나 쿈 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각의 캐릭터를 자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하루히라는 캐릭터는 에노키즈 레이지로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비상식적, 행동파, 비범, 무례는 기본이며, 주변 사람들을 하인 취급, 잠자코 있기만 하면 미남이며, 주변 사람들을 별명으로 부르는 캐릭터이다. 사실 하루히는 너무나 명확해서, 이렇게 명확한 공통점보다는 비슷한 점이나 차이점에 주목해볼까 한다.
- 에노키즈는 선악의 기준이 자신이며, 본인이 신이라고 스스로 언급한다. 하루히도 SOS단 단장으로서 선악의 기준이 본인에게 있지만, 스스로가 신이라고 언급하지는 않으며, 신으로서 인식하고 있지 않다. 코이즈미를 비롯한 기관에서 신으로 해석되고 있을 뿐이다.
- 에노키즈는 제국 대학의 법학부 수료. 하루히도 공부는 잘하지만 아직 고등학생이다.
- 에노키즈는 탐정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하루히는 미스테리나 추리에 관심을 자주 보이며 고도증후군에서는 "명탐정"이 되고 싶어 한 경우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단장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 가마솥 사건을 통해 정계, 재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결국 에노키즈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하루히의 SOS단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이지만, 아직은 중학생 때 운동장에 쓴 우주인에게의 메시지가 신문에 등장한 정도.
- 그래서 에노키즈에 대한 세상의 평판은 일단 아주 좋다고 한다. 에노키즈가 해결한 큰 사건들이 신문에서도 언급될 정도이다. 그래서 손님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일감을 구하는 묘사는 보이지 않는다. 한편 하루히의 경우 아직 SOS단을 설립한 후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으며, 손님을 모으기 위해 적극적으로 홍보를 취한다. 그래서인지 하루히는 홍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본인 스스로 바니걸까지 입을 뿐만 아니라, SOS단 홈페이지의 방문 수를 꾸준히 체크하며, 교내에 SOS단 포스터도 붙였다.
- 에노키즈도 연기를 할 때에는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 하루히가 아사쿠라의 이사를 조사했을 때 멘션 관리인과 정상적인 대화를 하는 것을 본 쿈이 놀란 적이 있었다.
- 에노키즈는 폭력배들과 1:다로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싸움을 잘하며, 도둑 연기를 할 때에는 경찰에게 안 잡힐 정도의 체력도 있다. 하루히는 싸움을 잘한다는 묘사는 잘 없지만 체력이 좋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 백기도연대에서 에노키즈가 흔히 취하는 방식은 악당을 처단하고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는 하루히 시리즈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데, 그나마 하루히가 컴퓨터 연구회에서 컴퓨터를 강탈하고 하인으로 만든 것은 에노키즈와 비슷한 방식으로 보인다.
- 백기도연대의 화자인 "나"(모토시마 토시오)는 "요컨대 에노키즈는 자기가 재미있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그 사나이의 사전에는 재미있거나 재미없다는 두 종류밖에 없다."라고 묘사한다. 에노키즈가 관심 있는 사람은 적이냐, 하인이냐,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인간이며, 이도 저도 아닌 인간에게는 철저하게 무관심하다고 묘사된다. 하루히는 불가사의에 집착하지만 사실상 흥미 본위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긴 하다. 또 하루히 시리즈에서는 적이나 악에 대해서는 딱히 명확하게 언급되지는 않는데, 그나마 나가토를 쓰러지게 한 천개영역이라던가 혹은 코이즈미를 통해 연기를 하고 있는 학생회장 정도이다.
- 에노키즈가 가마솥 사건 탐정료를 헐값에 청구한 이유가 재미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루히도 처음으로 사건 의뢰가 왔을 때 탐정료를 무료로 하곤 했다.
- 에노키즈는 먼저 와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우가 적다. 하인..들이 모여있을 때 갑자기 등장한다. 혹은 모토시마 등이 교고쿠도의 집에 모여있을 때 에노키즈가 갑자기 등장한다. 이처럼 에노키즈는 후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 보면 하루히도 어디 나돌아 다니다가 단원들이 모여있을 때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 에노키즈는 타인의 기억을 보는 능력이 있다. 이러한 초능력을 본인이 인식하고 스스로 활용한다. 하루히는 세계 개변의 능력은 있지만 스스로 인지하지는 못한다. 한편 에노키즈의 경우 스스로를 신이라고 하지만 세계 개변 능력은 없다.
- 에노키즈는 하인들 뿐만 아니라 교고쿠도나 기바와 같은 수평적인 관계에 있는 친구들이 있다. 반면 하루히의 주변에는 하인들이 많으며 수직적인 관계에 있다. 하루히의 친구라고 할만한 사람이 없다..
- 에노키즈는 잠이 많다는 설정이 있다. 낮잠도 깊이 잔다고 한다. 하루히는 따분한 일상으로 인해 책상에 엎드려 잔다고 언급되기는 하지만 특별히 잠이 많은 것은 아니다.
- 본인은 공격하기 힘들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겨냥되는 사례들이 있다. 백기도연대의 마지막 2개 편에서는 하타 류조 등이 에노키즈에게 보복하기 위해 하인들인 모토시마와 마스다를 납치한다거나 죄를 뒤집어 씌운다거나 하는 시도가 있었다. 즉 에노키즈 본인을 해치기는 어려우니 주변 사람들을 해쳐서 간접적으로 피해를 주자는 것이다. 하루히 역시 본인이 해를 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주변 사람의 경우 미쿠루가 타치바나 일당에 의해 납치된다거나 나가토가 천개영역과의 커뮤니케이션에 고전한 사례가 있다.
- 백기도연대의 화자인 "나"(모토시마 토시오)는 "분명히 에노키즈의 영향 하에 있는 사람은 모두 어딘가 이상하고, 그것은 전적으로 묘한 영향력을 가진 그 사나이와 접촉한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이상한 사람이다. 이상하기에 에노키즈와 쉽게 어울리고 있는 것이다."라고 언급한다. 하루히와 에노키즈의 주변에 특이한 사람이 모이는 것은 비슷하지만, 그 과정이 다른데, 에노키즈의 경우 그 사람들이 특이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에노키즈와 쉽게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며, 하루히의 경우 하루히가 스스로 원했기 때문에..
- 백기도연대의 면령기 편에서 쓰이나라는 소재가 등장한다. 입춘 전날 밤 볶은 콩을 집안에 뿌려 악귀를 몰아내는 행사인데, 에노키즈는 이를 콩 뿌리기와 도깨비 괴롭히기의 2개로 분리해서 해석하고 있다. 이후 에노키즈에게 "적"으로 간주된 검은 옷을 입은 사나이들에게 도깨비 가면을 씌우고, 종교 행사라면서 도깨비 가면을 쓴 사나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이 충격적인 에노키즈의 행동에 영향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하루히 시리즈에도 콩 뿌리는 행사를 진행했는데, 이때 하루히는 SOS단 단원들과 함께 콩을 뿌릴 때 도깨비가 불쌍하다며 "복은 안으로"만 외치고 "도깨비는 밖으로"를 외치지 않도록 했다..
- 완전히 다른 설정도 꽤 있다. 에노키즈가 담배를 피운다거나, "와하하하" 하면서 웃는다거나, 또 복장에 대한 센스도 엉망이라고 언급된다. 이런 부분은 나름대로 에노키즈라는 캐릭터를 여성으로서 변환하여 하루히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낼 때 없앤 설정으로 보인다.
- 에노키즈의 집안은 왕년에는 귀족이며 지금은 재벌 총수라고 언급된다. 에노키즈의 아버지도 작품에 등장하는 반면, 하루히는 가족에 대한 언급이 매우 부족하다. 오히려 이런 집안 사정을 생각하면 대저택에 사는 귀한 가문의 딸인 츠루야가 떠오른다. 츠루야는 그나마 상식적이고 민폐는 없지만, 다소 에노키즈스러운 자유분방한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특히 야구 대회에서는 하루히에 버금가는 운동신경을 보여준다.
이러한 부분들은 에노키즈라는 캐릭터를 재해석함으로써 하루히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고쿠도 시리즈는 전후 일본 사회를 다루고 있는데, 이때의 에노키즈라는 캐릭터가 만약 현대 일본 사회에 있었다면? 그 캐릭터가 여고생이었다면? 이렇게 재해석을 한다면 에노키즈는 하루히와 매우 비슷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에노키즈가 현대 일본 여고생이었다면, 분명 여러 동아리에 관심을 가졌겠지만 흥미를 잃고, 결국 스스로 동아리를 만들었지 않았나.. 하는 것들 말이다. 그리고 타니가와 나가루 특유의 미스테리, SF적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스즈미야 하루히라는 캐릭터이다.
쿈의 경우 백기도연대의 화자인 "나(모토시마 토시오)"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여기서도 비슷한 점에 대해 찾아보면,
- 모토시마 토시오라는 본명으로 불리지 않고 계속 다양한 별명으로 불린다. 에노키즈뿐만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들도 모토시마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않는다. 1권 마지막에 성, 2권 마지막에 풀네임이 비로소 등장한다. 쿈의 경우 다양한 별명이 아닌 쿈으로 계속 불리지만 본명이 등장하지 않는다. 경악 편 마지막에서야 쿄로스케라는 말이 츠루야에 의해 언급되지만 이것도 본명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 모토시마와 쿈은 모두 각 작품의 1인칭 서술자이다. 참고로 본편인 교고쿠도 시리즈에서는 3인칭 서술을 취하고 있다.
- 모토시마와 쿈 모두 스스로 평범함을 강조한다. 모토시마는 "나는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임을 자부하고 싶을 뿐이다."라는 말을 계속해서 언급한다. 한편 슌토("적"의 포지션에 가깝다)라는 사람이 에노키즈 주변을 조사하면서 기자, 경찰, 골동품상, 소설가 등 다양한 사람들을 확인했으나 당신(모토시마)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하곤 했다. 쿈 역시 평범한 인간임이 코이즈미에 의해 보증..되었으며 특별한 능력이 발휘되지는 않았다.
- 사건에 말려드는 태도가 츤데레적이다. 딱히 말려들고 싶진 않다고 입으로는 이야기하지만 속으로는 즐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모토시마의 경우 "우둔할 정도로 선량한 내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그 탐정 때문이다."라던가 "내가 원했기 때문에 개입했다는 면도 전혀 없지는 않으나 그렇더라도 말려든 것만은 분명하다."와 같이 언급한다. 쿈도 마찬가지로 사건에 말려들면서 투덜대지만 우울, 소실, 경악에서 그것을 즐겨왔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렇지만 역시 모토시마 토시오와 쿈 사이에 다른 점도 있다. 쿈은 나름대로 하루히에게 태클을 거는 츳코미 포지션인데, 모토시마는 너무 존재감이 없다.. 행동으로 봤을 때에도 쿈은 다소 수동적이지만 나름대로 key person으로써 주체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모토시마는 연락이 오거나 사건이 닥쳤을 때 행동하는 수동적인 모습이 많다. 또한 쿈은 MIKURU 폴더를 관리하면서 가끔씩 감상하곤 했는데, 모토시마 토시오는 그렇게까지 가벼운 사람은 아니다.. "모토시마 토시오가 현대의 고등학교 학생이었다면?"이라고 생각해도 잘 해석이 안된다. 이렇게 가벼운 캐릭터의 성격으로 연출된 것은 에노키즈의 하인 중 하나인 마스다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마스다는 에노키즈의 옆에서 츳코미 포지션을 많이 취한다.
여기서 필자는 재미있는 주장을 하려고 하는데, 추젠지 아키히코의 캐릭터성이 코이즈미와 나가토로 나누어졌다고 주장한다.
백기도연대는 에노키즈를 중심으로 서술되지만, 교고쿠도 시리즈 본편에서는 추젠지를 중심으로 서술된다. 교고쿠도 시리즈의 레퍼토리는 대개 이렇다. 추젠지 본인은 책을 읽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찾아와서 문제를 늘어놓는다. 추젠지는 장광설을 펼치면서 설명을 한다. 사건에 대해서는 초반에는 수동적인 입장을 취한다. 사람들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추젠지 본인이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파괴를 하기도 하고. 후에는 사건의 진상을 설명해준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 책을 읽는다, 독서광 : 말할 것도 없이 나가토에 가깝다. 코이즈미는 잡지식은 많지만 책을 읽는다는 묘사가 없다.
- 다른 사람들이 찾아와서 문제를 늘어놓는다 : 주변 사람들이 문제 상황에 대해 상담을 하는 것은 나가토에 가깝다. 코이즈미의 경우 코이즈미가 스스로 쿈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쿈이 코이즈미에게 상담한 일은 드물다.
- 장광설을 펼치면서 설명을 한다 : 예를 들면 우부메의 여름에서 추젠지가 양자역학을 설명하면서 관측자 이야기를 하는데, "관측하는 주체가 관측하는 지점에서 이 세상은 과거까지 거슬러서 성립되었다"라고 언급한다. 중요한 소재는 아니지만 이러한 설명 컨셉과 그 내용까지 모두 코이즈미와 매우 유사하다.
- 초반에는 수동적이지만, 후반에 적극적이다 : 나가토에 가깝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책을 읽는다거나 적당히 수동적으로 따라다니는데, 꼽등이가 등장한다거나 미쿠루빔이 발생한다거나 할 때 나가토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해결한다. 코이즈미의 경우 미쿠루 납치 당시 기관의 멤버들과 활약하기는 했으나 사실 폐쇄 공간 밖에서는 능력에 한계가 있다.
사실 추젠지의 성격은 나누어져서 오히려 어색해졌다. 예를 들어 독서와 장광설은 분리된 것이 아닌 연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평소에 책을 읽어서 박학다식하므로 -> 장광설을 펼친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 코이즈미가 평소에 책을 읽는다는 언급은 없는데도 희한한 잡지식이 많다는 것은 오히려 어색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추젠지의 포지션에서도 역할이 분배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사건 초반에 장황설만 펼치지 딱히 하는 건 없는 건 코이즈미로 분배되고, 문제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건 나가토로 분배된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이렇게 성격이 나뉜 이유가, 아야나미 레이라는 캐릭터성을 나가토 유키에게 추가하면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아야나미 레이 특유의 조용하며 쿨한 성격에, 추젠지와 같은 독서광이나 문제 해결사라는 설정을 추가하고, 나름의 SF적 요소를 추가하여 우주적 능력을 갖춘 캐릭터로 재해석하여 나가토 유키가 탄생한다. 그런데 아야나미 레이와 같은 성격으로 인해, 나가토는 말 수가 적다. 수 페이지에 걸쳐 쿈에게 장광설을 펼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추젠지의 장광설은 사실 교고쿠도 시리즈의 정수이자 큰 매력인데, 이를 하루히 시리즈에도 넣기 위해, 코이즈미라는 캐릭터를 추가적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전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말이다.
이렇게 추젠지스러운 캐릭터는 하루히 시리즈에서 매우 많다. 코이즈미는 기본이며, 나가토의 경우 말 수가 적고 단어들이 지나치게 어렵지만 사건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경우가 꽤 있다. 경악 편에 가까워지면서 심지어 쿈도 어려운 독백 스킬이 늘어나는데, 모토시마가 평범하고 쉬운 말투인 것과 대조적이다. 뿐만 아니라 장광설로 유명한 캐릭터로 사사키도 있다. 심지어는, 샤미센도 어려운 철학 이야기를 한다.
그 외에 추젠지에 대해 더 추가적인 분석을 해보면,
- "나"(모토시마 토시오)가 추젠지를 "언변에 능하다. 지나치게 능하여 마치 마술을 부리는 것 같다."라고 언급한다. 나가토는 딱히 언변에 능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너무 어렵게 설명해서 코이즈미가 다시 풀어서 말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부분에서는 나가토가 아닌 코이즈미가 추젠지의 언어 능력을 닮은 것으로 보인다. 코이즈미는 하루히를 속인 경우도 있었을 정도로 언변에 능하다.
- "나"(모토시마 토시오) : "주젠지는 나를 가리켜 전형적인 보통 사람이라고 했을 정도이므로 내가 안다면 도리어 이상하다." 코이즈미가 쿈을 조사했다며 평범한 사람이라고 한 장면과 너무 비슷하다.
- "나"(모토시마 토시오) : "주젠지는 나와 단둘이 있으면 존댓말을 쓴다, 여럿이 같이 있을 때는 그렇지 않다."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가토는 쿈에게 반말을 하는데, 코이즈미는 존대를 쓴다.
- "나"(모토시마 토시오) : "이 주젠지라는 사나이는 극단적으로 육체노동을 싫어한다. 이럴 때는 도와주어야 한다. 북이라고는 해도 그다지 무겁지는 않다."라고 하는데 이런 설정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추젠지의 부인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젠지의 부인은 무뚝뚝한 남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상냥하고 또 그녀가 끓여주는 차는 맛있다."라는 모토시마의 흘러가는 독백에서 우리는 미쿠루를 떠올릴 수 있다. 아쉽게도 추젠지의 부인은 굉장히 잠깐씩 등장하는 인물일 뿐이고 사건에 특별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그저 차를 끓여주는 상냥한 캐릭터이며 딱히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 캐릭터, 미쿠루와 매우 비슷하다. 하루히가 말하듯이 "모에야 모에!"이러면서 미쿠루라는 캐릭터에 관심을 가진 것처럼, 타니가와 나가루 역시 단순히 모에에 집중해서 미쿠루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마무리.
처음 언급한 것처럼, 이 글은 하루히 시리즈가 표절임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 글은 백기도연대라는 작품을 통해 하루히 시리즈를 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였다. 하루히 시리즈에 나오는 다양한 캐릭터들은 백기도연대를 포함한 교고쿠도 시리즈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완전히 똑같지는 않으며 다소 다른 설정들도 많다. 백기도연대를 포함하는 교고쿠도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전후 일본 사회 인물에서 현대의 고등학생으로 변환하고, 우주적이고 시공간적인 SF적 요소 및 미스테리 요소를 추가하여 재해석한 것이 하루히 시리즈가 되지 싶다. 혹시 관심이 있는 하루히 팬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