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운세에 점수를 매긴다면?
기운이 빠지는 한 주를 보냈다. 일주일 내내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유난히 거울 속 내 모습이 못생겨 보였고 말도 평소보다 자주 버벅댔다. 아이가 울고 짜증 낼 때마다 내가 잘못 키운탓같았다. 아는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등껍데기가 있다면 머리를 집어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 주의 운이 있다면 이번 주 내 운의 점수는 몇 점일까. 큰 탈 없이 가족들 모두 건강히 있으니 기본값으로 50점은 깔고 시작해야겠다.
월요일은 월요병의 날이다. 깜짝 놀랄 만한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 한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들다. 주말에 외출하느라 쌓인 집안일들을 하나 둘 해치워야 하고 한 주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뭘 하려고 하기보다는 차분히 지나가는 시간에 나를 맡겨야 한다. 이번 주도 그랬다. 은행 업무를 보고 아이와 장을 본 뒤 집안일을 했다.
화요일은 수강신청이 있는 날이었다. 다음 학기 아이와 함께 듣는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데 보기 좋게 실패했다. 여름 학기는 인기가 많아 수강신청이 시작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수업이 모두 마감됐다. 웨이팅리스트에 내 이름을 올리고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뜨겁고 기나긴 여름, 아이와 무엇을 하며 보낼까 생각하려니 벌써 열사병의 어지럼증이 찾아온 듯 머리가 띵했다.
수요일은 월요일과는 다른 피로감이 있는 날이다. 여자가 가장 못생겨 보이는 때가 수요일 아침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오전에 아이를 데리고 수업에 갔더니 엄마들 얼굴이 모두 수요일에 걸맞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푸석하고 피곤한 얼굴들에 함께 묻어갈 수 있어서 약간의 위안을 얻었다.
일찍 낮잠에 든 아이를 눕혀놓고 후다닥 점심을 먹은 뒤 미뤄뒀던 글을 썼다. 글쓰기도 요일에 영향을 받는 것인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순간의 감정들로만 기워진 누더기옷 같은 한 편이 애매하게 모니터에 떠있었다. 이번 주 브런치 발행은 글렀다는 생각에 더 착잡해졌다.
목요일은 중요한 일이 있는 날이었다. 아이 학교에서 학부모 상담이 있었다. 아이는 처음 학교에 왔을 때보다는 적응을 잘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영어로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숫자든 낱말이든 그림이든 아직 두각을 드러내는 분야는 없고 배우고 익히는 단계에 있다고 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마치 내가 생활통지서를 받아 든 양 기운이 빠졌다. 나는 나고 아이는 아이인데. 아이가 큰 불평 없이 유치원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여야 하는데 말이다.
상담하는 동안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유창한 영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의사표현은 할 수 있다고 여겨왔는데 이 날따라 말이 꼬였다. 아이 선생님 앞이라 문법을 틀리게 말하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이었을까. 미국에 있는 동안 영어실력이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란 걸 느낀 하루였다.
수강신청도 실패하고 글도 엉망이고 여전히 영어를 버벅대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저녁에 아이 둘이 동시에 앙앙 울어대서 그만 울라는 내 목소리도 묻혀버릴 때에는 육아에도 실패한 엄마가 된 것 같았다.
금요일은? 금요일은 뭐가 됐든 금요일이다. 한주에서 가장 즐거운 해피 프라이데이!
그래서 이번 주 운세 점수는 몇 점일까. 큰 사고 없이 지냈으니 기본 점수 50점, 무난했던 월요일은 6점, 수강신청이 폭망한 화요일은 3점, 글쓰기가 잘 안 됐던 수요일은 4점, 맥빠진 학부모 상담일인 목요일은 4점, 아직까지 별 탈 없이 흘러가는 금요일은 6점. 총 73점이다. 점수를 내어보니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번엔 운세가 아닌 내 대처에 점수를 매겨보기로 했다. 주말의 피로에도 월요일에 밀린 업무와 집안일을 처리하고 아이들을 위해 놀이터를 하루 두 번이나 갔기에 20점 만점에 20점! 화요일은 수강신청 실패에 내 실수도 한 몫했기 때문에 10점. 수요일은 글은 못썼지만 없는 틈을 내서 글 한편을 완성했기에 15점. 목요일은 둘째까지 끼고 상담실에 들어가 선생님 말씀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기에 15점! 금요일은 한주를 무사히 버텨낸 나에게 20점을!
총점은 90점! 한 주의 운세는 탐탁치 않았으나 어떻게든 버터 내려고 노력한 내 대처 점수는 생각보다 높았다. 많이 높았다. 실제로 내가 대처한 것만큼 내 기분이 좋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행복할 자격이 있다는 걸 내 점수가 증명했기에.
운세가 50점이어도, 태도가 50점이어도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아이들은 그럼에도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성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어쨌든 금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