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정치인이 일기를 쓴다면
언론고시를 준비할 때 나는 논/작 스터디란 걸 했다. 언론사 필기 전형은 제한 시간 안에 작문과 논술을 잘 써내야 하는 시험인데 두서없이 아무 말이나 적어놓고 나오면 절대 붙을 수 없는 시험이다. 시간 안에 글을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수험생과 차별화된 글을 써내는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다.
가령 기자의 경우,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그저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수많은 언론사들 사이에서 독자에게 색다른 시선을 제공할 수 있는 '정보제공 노동자'로서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PD의 경우는(준비를 제대로 해보지는 않았으나), 차별화된 관점으로 세상을 보되 그 안에는 웃음과 사랑과 따뜻함이 담겨 있어야 할 것 같다. 차별화된 관점만 있으면 방송 전파의 영향력을 낭비할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엔 언론이 아니라 한낱 농담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작문부터, 언시생 시절 썼던 글들 가운데 재밌게 썼던 글 몇 편을 정리 중이다. 예전에 썼던 작문들을 보니 제한 시간 60분도 채 안 걸려서 일필휘지로 썼던 작문들은 주제나 소재가 나의 오랜 관심사였던 경우가 많다. 평소에 어떤 시사 이슈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는지, 흔히 말해 어떤 분야에 대해서 덕질(덕질은 '남들이 시키지 않아도 혼자서 파고들며 공부하는 행위'라 정의하고 싶다)을 많이 했는지가 글에 드러난다.
필기시험 현장에서 자신의 관심사와 잘 맞는 제시어를 만나는 것은 좋은 운이지만, 필기 시험장에서 던져진 제시어와 자신이 관심사를 잘 '연결'시킬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드는 훈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위적이지 않게 현장 제시어와 자신의 글을 연결하는 훈련과, '현장에서 모든 제시어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을 동시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가능하고 후자는 가능하지 않게 보일지 모르나, 후자는 제시어를 범주화하고 제시어들의 추상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쌓아가면 가능한 일이다.
일례로, '정치인' '한 명' '화자' '일기'라는 제시어들은 다양한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정치인 + 한 명 : 권력
화자 + 일기 : 개인적인 경험
정치인 + 화자 : 정치인들의 말(시사적인 이슈에 대한 내용을 녹여낼 수 있음)
정치인 + 일기 : 시사적인 이슈와 팩션
한 명 + 화자 : 1인칭 시점
이렇게 제시어들을 연결시키다 보면 자신이 처음 본 제시어도 습관적으로 자신이 아는 제시어와 연결시키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현장에서 제시어를 만났을 때 덜 당황하고 글을 써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참 역사 덕후일 때(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거시사뿐 아니라 미시사나 설화를 좋아했다), 스터디를 하면서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완성했던 작문 두 편을 소개한다.
<1>
제시어 : 정치인 중 한 명을 택하여 일기를 쓰시오.
태조 즉위 두 해째. 열한 번째달 열한 번 째 날.
왕께 책 한 권을 올렸다. 책의 이름은 ‘조선경국전’이라 칭했다. 이 나라 조선이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 나의 깊은 고민과 고민 끝에 얻어낸 나름의 해답을 풀었다. 왕께서 어떻게 받아들이실지는 모르겠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큰 그림을 왕정이 아닌 사대부 정치에서 그렸기 때문이다. 책을 집어던지며 진노하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선은 필시 그리 되어야 한다. 조선은 임금이 아닌 사대부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책을 쓰기 전에 요순시대의 오랜 역사를 살펴봤다. 요순시대 백성들은 임금의 덕을 칭송했고 태평성대를 이뤘다. 이는 요임금과 순임금이 권력을 움켜쥐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왕위는 세습되지 않았다. 임금이 될 만한 인물을 사람들이 추대해 왕위에 올렸다. 권력이 아래서부터 위로 샘솟았다. 왕이 전권을 쥐고 있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 삼봉은 백성이 편안한 나라를 만들고 싶다. 임금이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 임금이 모든 권력을 쥐고 나라를 흔들게 되면, 그 나라는 오래 존속하기 어렵다.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는 이 시점에서 왕의 역할과 신하의 역할을 분명히 해놔야, 앞으로의 조선이 밝을 것이다. 그런 연유에서 왕께 책을 올린 것인데, 왕자 방원의 반대가 몹시 심했다. 왕께 책을 올리는 일도 방원이 알지 못하게 물 밑으로 진행했다. 지금쯤 왕께서 책을 읽고 계실지..
권력을 탐하는 왕이 나타나면 가장 고통받는 이들은 백성이다. 이에 사대부가 정치를 주도해야 한다. 임금이 권력을 휘두르는 나라는 그 끝이 정해져 있다. 고려 말 충혜왕은 나라의 권력을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데 이용했다. 주색잡기를 좋아해 후궁이 100명에 이르렀으며, 재물 탐하기가 심해 백성들의 토지와 노비 빼앗기를 일상으로 했다. 직언을 하는 관리는 ‘나쁜 사람’으로 여겨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이는 옳지 않다. 폭정을 일삼은 충혜왕의 끝은 폐위였다.
자 왈, 민심이 곧 천심이라 했다. 하지만 왕이 곧 국가인 나라에서는 왕의 마음이 천심이 돼버린다. 천심이 돼버린 왕의 마음을 무슨 수로 돌릴 수 있겠는가. 사대부가 임금을 도와 민심을 알아차리게 해야 한다. 국왕의 권력을 쪼개야 한다. 필시 그리돼야 한다. 그래야 조선 왕조는 백 년 뒤, 천년 뒤에도 나라다운 나라로 존속할 수 있을 것이다.
유난히 달이 밝은 밤이다. 겨울밤의 차가운 냄새가 창호지에 스민다. 늦은 시각,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파발이 왔다. 방원의 서신이다.
<2>
제시어: 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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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명: 사랑먼지 떨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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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먼지와 비슷합니다. 우리 취준생 여러분들 취업 준비한다며 토익 스터디, 면접 스터디, 심지어는 매일 아침 양치질하는 자신의 모습을 셀카로 찍어 카톡방에 기상 인증을 하는 스터디까지 하시는데요. 각종 스터디로 일주일을 빠듯하게 채워놓고 취준에 열심인 당신! 지금 사랑먼지가 싹 틀 수 있는 굉장히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있는 겁니다. 작은 먼지가 정전기를 일으켜 더 큰 먼지로 몸집을 불리는 것처럼, 스터디원 그녀(그)에 대한 호감이 스파크를 일으켜 설렘이 되고, 설렘이 또 사랑으로 발전하는 것은 한순간이거든요. 취준을 하다가 사랑에 빠지고, 취업에 실패하고, 그렇게 인생에 작별인사를 고하는 것도 한순간이고요.
한창 사랑해야 할 청춘이라고요? 열정과 낭만의 20대라고요? 세상에! 아직도 그런 순진해 빠진 청년이 지구 상에 존재한답니까! 그건 다 옛말이지요. 요즘 같은 세상에, 대의를 위해서 사랑쯤은 가볍게 버릴 수 있어야 큰 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랑은 밥 먹여주지 않습니다. 요즘엔 자기 밥그릇 정도는 스스로 찾아먹을 줄 알아야 사랑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밥그릇이 큰지 작은지에 따라서 사랑의 사이즈도 달라지는 시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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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 전 안내사항
다음 안내문에 동의해야 제품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일부 사용자 중 실제 제품 사용기간이 권장 사용기간을 초과하여, 결국 연애 세포가 소멸됐지만 취직도 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종종 발생합니다. 사랑도 잃고 일도 잃는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결과이긴 합니다만, 이에 대해 본사는 책임이 없습니다.”
이에 동의하십니까? ㅁ예 ㅁ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