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와 세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지민 May 30. 2022

힙하게 사는 게 어려워요

회사에 스키니진을 입고 갔다. 스키니진을 선택하면 상의 코디 레파토리가 단순하다. 그래서 스키니진은 아침에 뭘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주는 나의 소중한 패션 아이템이다. 발목까지 달라붙는 바지는 편안하고 스타일리시한 것이 나에게는  마음에 드는 매력이었는데, 나의 스키니진 핏을 보고 회사 동료들 한 마디씩 다.


"요즘엔 스키니진 입으면 촌스럽던데."

"ㅇㅇ씨는 스키니진 자주 입더라."

나는 머쓱하며 웃어 넘기려 되받는다.

ㅡ하하, 요즘엔 통 넓은 바지가 유행인가요?

"아니, 요즘엔 그것도 유행 지났지~ 요즘엔 로우라이즈야~"


그의 대답으로 인해 나는 유행에 한 걸음이 아닌 두 걸음 뒤처진 사람이 되었고, 그들의 트렌드 이야기는 새로 생긴 식당과 카페로 계속해서 이어졌다.


새로 생긴 음식점을 가보지 않으면 조금 뒤처진 사람이 되고 아이돌이 입은 그 옷을 사입으면 유행을 좀 아는 사람이 되는 요즘. 빨리 변하고 쉽게 변하고 바삐 변하는 요즘 유행들은 실제 그 멋스러움의 값어치보다 조금 더 과대포장돼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 멋스러움이 내 눈에는 어쩐지 쉽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의 값싼 포장지로 감싸져있는 것 같지만, 그것이 실제 저렴한 문화든 고급의 문화든 '힙함'이라는 단어 하나로 꽤 멋드러진 어떤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 현실이다.


스키니진을 옷장 깊숙한 곳에 고이 접어 두고 유행을 쫓아가는 시늉 해봤다. 새로 생긴 가게에 누구보다 먼저 가보고 신상이라하면 가격표를 보지도 않고 사버다. 음식이 나오면 맛과 분위기를 음미하기 전에 사진부터 찍고 친구가 앞에 있어도 SNS에 사진을 올리기 바빴다. SNS에 적당히 꾸며진 나의 힙한 라이프 스타일에 하트를 눌러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마치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한 양 우쭐해 하기도 했다. 힙함을 추앙하는 삶은, 쉽고, 편했고, 자극적이었고, 쾌락적이었다.


그런데 불현듯,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불안감이 나를 찾아왔다. 그간의 나를 되돌아보니 숱한 시간들 속에는 진짜 내 모습이 없었다. 힙한 사람의 부류에 속하고 싶어서 내가 아닌 타인을 의식하며 힙한 삶을 꾸며냈다. 나만의 멋을 가지고 진짜 멋지게 살기보다는 그저 누군가를 의식한 채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그 흐름에 파묻혀서 세상을 뒤쫓아가기에 벅찬 삶이었다.


내 색깔을 잃어버리고 남들이 사는 삶을 따라 살면서 점점 무채색이  나를, 지금이라도 발견한 것 다행라고 생각해야하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내 색깔, 나만의 풀 컬러를 잃지 않으며 살아가기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나는 그 색깔을 소중히 지켜내며 힙함과의 거리두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나를 들여다보며 자아성찰하는 척(?) 브런치에 글을 쓰는 내 모습 역시 누군가의 힙함을 흉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많은 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