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호이 Apr 18. 2019

[김호이의 사람들]  배성기 대표를 인터뷰

'트럭모는 CEO' 배성기 대표를 만나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호이의 사람들>의 발로 뛰는 CEO 김호이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과일장사, 트럭장사는 무엇인가요? 

최근 많은 분들의 열풍 중 하나가 식당이 어려워서 과일 채소 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번 인터뷰는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국가대표 트럭장사꾼이라는 타이틀을 얻어낸 배성기 대표의 인터뷰입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진짜 과일야채장사 그리고 트럭장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Q. 가게를 가지면 모든게 다 이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가졌던 걸로 알고 있는데 가게를 가지고 나서 생각과 같이 돌아갔나요? 
A. 처음 가게를 했을 때 그리 나쁘지 않게 운영을 하고 있던 중에 기상악재를 만나게 되면서 잘못 되기 시작하면서 가게를 접게 됐어요. 

Q. 그 악재가 무엇이었나요? 
A. 2011년도에 강남역 근처에 물난리 난 걸 기억하시나요?  그때 제 가게가 물난리 나는 곳 한가운데에 있었어요. 

Q. 배성기 대표만의 장사비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비법이라고 할 건 없지만 끈기가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과일장사 10년차 접어들었을 때 가게를 처음 열었는데 그때 잘못되었다고 해서 만약에 포기했다면 지금의 제 모습도 없었을 거예요.

Q. 망하고 나서 장사를 다시 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의 반응은 어땠나요?
A. 말도 못하게 다 반대했어요. 과일장사의 경우 밤에 11시~12시에 가게가 마무리 되고 새벽에 1시~2시가 되면 가락시장에 가야되는데 그러면 하루에 2시간~3시간 밖에 못자요. 많이 자야 3시간인데 그렇게 했어도 망했으니까. 
아내가 “그렇게 했어도 안 되는 거면 안 되는 거라고, 그만 미련 버리고 직장 다니자”라고 얘기를 했어요.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사라는 길을 계속 걷게 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A. 그때는 일단 절박해서 시작을 했어요. 직장 다녀서 내가 빚을 갚을 능력이 안 되는데 빚을 갚기 위해서는 장사밖에 없었거든요. 그 당시에는 절박함밖에 없어서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진= 배성기 대표 제공 ]


Q. 예전에 배성기 대표가 생선장사도 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채소에서 왜 생선장사를 하게 되었나요? 
A. 농산물을 하기 위해서는 청과, 야채, 생선도 다 할 줄 알아야 돼요. 그래서 생선까지 배워서 약 1년 반 동안 생선 장사를 했었는데 그 당시에 도곡동에서 물고기 총각으로 유명해졌어요.

Q. 그렇다면 고기는 안 했었나요? 
A. 네, 고기는 안하고 생선까지만 했었어요. 

Q. 과일,야채,생선,고기,계란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야채를 선택한 계기가 있나요?
A. 제일 기본이 될 수 있죠. 생선가게를 하든 뭘 하든 농수산물을 다 할 줄 알아야 되는데 저는 차근차근 한 단계씩 해나갔어요. 맨 처음에 과일과 야채를 배우고 그 다음에 생선을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생선까지 배우게 된 거예요. 

Q. 배성기 대표의 인생을 바꿔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처음 트럭장사는 잘 안됐어요. 그런데 장사를 하던 중에 어떤 분께서 장사를 할 때 웃으면서 장사하라는 말 한마디를 해주셨고 그게 제 인생을 바꿔줬어요. 매사에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항상 웃게 됐어요. 
인상을 쓴다고 해서 그 일이 달라지지는 않아요.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니까. 어차피 해야 될 일은 웃으면서 하는 거죠. 즐기지는 못할지언정 웃기라도 하면 결과는 바뀔 수 있어요.
처음에 시작할 때 사람들은 “이걸 할 때 안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고 시작을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시작하면 무조건 그 일은 안되게 돼 있어요. 
근데 ‘이걸 어떻게 하면 해낼 수를 있을까“를 생각을 하면 그 일은 해낼 수 있어요. 생각이 1%의 차이만 바뀌어도 결과는 100%가 바뀌게 되어 있어요. 

Q. 웃음을 실천하고 나서 매출도 많이 올랐나요? 
A. 처음에 트럭장사를 했을 때 하루 매출이 보통 10만원 정도 였는데 웃으면서 장사를 하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조금 바꿨더니 매출이 많을 때는 트럭 한대에서 하루에 300~500만원 정도의 매출이 나왔어요. 

Q. 매장 장사와 트럭장사가 많이 다른가요? 
A. 완전히 달라요. 매장은 한 곳에서만 하는 거라 단골이 생길 수 있는데 트럭장사는 단골이 생기기 굉장히 어렵고 제약적인 게 굉장히 많아요. 신고가 들어올 때도 있고, 경찰이 올 때도 있고 해서 쫓겨 다닐 때가 많아요. 
근데 장단점이 있는데 저는 “장사가 안 되면 이동할 수 있고 손님을 찾아다닐 수 있다”라는 좋은 점을 생각했고, 매장을 운영할 때도 마찬가지로 좋은 점만 생각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안 했어요.

Q. 그렇다면 현재는 매장장사와 트럭장사를 동시에 하고 계신건가요?
A. 현재 저희가 운영하는 매장이 10군데 정도 되고 트럭장사의 경우 사관학교를 운영하면서 약 20여분이 저한테 장사를 배우고 있어요.




[사진= 배성기 대표 제공 ]


Q. 만약 트럭장사가 아닌 다른 일을 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과일장사를 하기 전에는 제가 대기업에 다녔었는데 만약 트럭장사와 과일장사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계속 회사원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요.

Q. 예전에 대기업을 다니던 삶과 지금 현재 과일장사를 하는 삶 중에 어떠한 삶이 더 만족스러우신가요? 
A. 물론 지금이 더 만족스럽죠, 내가 회사에 있으면 회사가 나의 삶을 바꿀 수 있어요. 회사가 어려워지면 그만두게 할 수도 있고 무슨 일이 생기면 회사 때문에 전근을 가야 될 때도 있고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기는데 지금은 제 사업을 하다 보니까 내가 직접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가고 조립을 해나가는 거잖아요. 
근데 회사는 내 꿈을 조립하기에는 너무 크고 내가 부속품은 될지언정 꿈의 틀은 될 수 없는데, 지금은 내가 내 꿈의 틀도 될 수 있고 부속품을 만들 수도 있어서 너무 좋아요.

Q. 매장이나 트럭장사를 하면서 돌발상황이 있었나요? 
A. 돌발상황은 굉장히 많아요. 사람들이 제가 이 정도 됐으면 다 잘 될 거고 빚도 없이 웬만큼 살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사업이라는 게 언제나 어려운 고비는 한번씩 생기는데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사업을 하면서 편하게 사업해본 적이 한번도 없어요. 불과 얼마 전에도 어려워졌다가 좋아졌다가 그랬는데 사람들은 잘될 때는 잘하는데 힘들 때는 이겨내지 못해요. 
잘될 때 잘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어려울 때 그걸 이겨내는 사람이 그 결승점에 가는 거예요. 자기 꿈의 결승점에 가는 사람은 결국은 잘될 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 때 그걸 이겨내는 사람이 꿈의 결승점에 간다고 생각해요. 

Q. 배성기 대표의 장사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A. 제일 힘들었을 때는 아무래도 돈 때문에 빚을 많이 졌을 때였던 거 같아요. 사채까지 써서 사채업자들한테 쫓겨 다니고 아이가 학습지를 해야 되는데 3만원이 없어서 그걸 못해주고 아이 옷도 못 사줬을 때가 제일 마음이 아팠어요. 
내 가족들이 무언가 먹고 싶다고 했을 때 서슴없이 “어 그래, 먹어” 고기 먹고 싶다고 했을 때 “나가서 고기 먹자” 식구들이 여행 가고 싶다고 했을 때 “그래, 여행 가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제일 행복한 거 같아요. 

Q. 아내의 차를 담보로 내놨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때 그걸 알게 된 아내의 반응은 어땠나요?
A. 제가 아내의 차를 담보로 내놓고 아내가 나중에 알게 됐는데 이미 차를 담보로 내놨기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내지는 않았어요. 근데 말은 없더라고요. 
제가 어려웠을 때도 돈 가지고 싸웠던 적은 없어요. 지갑에 만원짜리 한 장 없어서 서로 밥도 못 먹고 밖에서 일을 하면서 기름 값이 없었던 적은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싸우고 그런 적은 없어요. 

Q. 그렇다면 차를 담보로 했을 때 얼마 뒤에 사실을 알게 됐나요?
A. 차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정도면 굉장히 상황이 안 좋아졌을 때인데 그러면 그 돈을 제때 갚을 수 있는 사람이 드물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돈을 제때 갚지 못하니까 사체업자들이 집까지 찾아왔어요. 그래서 알게 된 게 두 세달도 안 걸렸던 것 같아요.

Q. 어머니 아버지 등 다른 가족들이 상황을 알았을 때는 어떠셨나요?
A. 부모님들은 내 자식이 잘되면 내 아이들에 대해서 굉장히 자랑하고 싶은데, 안 되면 말이 없어요. 속상하죠. 그때 당시에 제가 어려워져서 집이 없어서 부모님 집에서 얹혀살았는데 그에 대한 화풀이를 저와 제 아이들 그리고 아내한테 뭐라고 하는 거예요. 잔소리를 많이 하시고 굉장히 속상해 하셨죠. 저 때문에 창피해서 못산다고 하시고... 

Q. 장사를 할 때 어떠한 신념을 가지고 일을 임하시나요? 
A. 모든 일이든지 일단 해보고 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주영 회장이 말했던 것처럼 일단 해보기는 했어요. 항시 좀 무모한 도전이죠. 그러면서 배워가는 거 같아요. 더 많이 익힐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장사를 앉아서 책으로 익히고 인터넷으로 글로만 익히려고 하고 네이버와 구글에만 물어보려고 하는데 장사는 몸으로 익혀야 되는 거예요. 
저 같은 경우에는 남들이 봤을 때 이게 될까 하는데 해보기는 해요. 되든 안 되든 일단 방법을 찾는 거죠. 그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제일 큰 신념은 “일어나지 않은 일은 생각하지 말고 해보기나 하자, 부정적인 생각 하지 말고”예요. 

Q. 처음 장사를 했었을 때는 어땠었나요? 
A. 처음 10년 동안 강남에 있는 총각네 야채가게에 있었는데 마인드가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내 가게를 강남에서 했을 때도 그렇지 않았는데 사람이 한번 망하고 나니까
 비가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정말 단단해지더라고요. 
웬만한 거에는 흔들리지 않고 대나무가 마디가 생기듯이 인생에도 마디가 생길 때 성장에 더디다고 해요. 저도 그 어려웠던 시기가 마디가 생겼을 때라고 생각을 해요.
근데 대나무 같이 그렇게 길게 자라는 나무는 마디가 없어서 바람이 불면 그냥 부러져 버려요. 마디가 있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도 부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이거든요. 저는 어려웠던 순간들이 저한테는 지금 어떤 일이 닥쳐도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고 마디가 되어줬다고 생각해요. 

Q. 어려웠을 때 가장 힘이 되어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A. 아무래도 가족이죠. 아이들과 아내가 제일 크다고 생각해요. 영원한 내 편이잖아요. 내가 뭘 하던 간에 영원한 내 아빠잖아요. 
   
Q. 그날 팔리지 않은 과일과 채소들의 경우 어떻게 처리를 하시나요?
A. 혹시 인디언 기우제라고 아세요?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오고 비가 안 오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잖아요. 그것처럼 다 팔릴 때까지 재고가 안 남을 때까지 장사를 하는 거예요. 아주 간단해요. 

Q. 그렇다면 재고가 안 남을 때까지는 문도 안 닫는 건가요?
A. 그렇죠. 길거리를 나가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 팔아야죠. 저희는 장사를 할 때 못 팔면 다 팔 때까지는 안 들어가요. 그러면 재고가 안 남겠죠. 

Q. 그렇게까지 하다보면 몸이 상하거나 하지는 않으신가요?
A. 물론 몸은 상하겠지만 더 중요한 걸 얻게 돼요. 자기가 그 물건을 팔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는 건데, 그러면 그 다음날이 되면 요령이 생기잖아요. 근데 글로 배우고 인터넷으로 배우고 누구한테 들었다고 하면 해보지 않아요. 안된다고 단정을 짓기 때문에.
근데 나는 이미 해보고 되는 방법을 찾았잖아요. 그러니까 나중에는 장사가 더 빨리 끝날 수가 있겠죠.



[사진= 배성기 대표 제공 ]


Q. 예전부터 과일이나 채소를 즐겨드셨나요? 

A. 저 과일 엄청 싫어해요. (웃음) “그럼 과일장수가 과일 싫어하면 어떻게 과일 장사를 하냐”고 하는데 일로 만나는 과일과 내가 즐겨 먹는 과일은 달라요. 일 때문에 과일 장사를 하니까 가락시장이나 이런데 가면 맛을 봐야 해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과일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다른 가게에 가서도 과일을 많이 사 먹어 봐야되는데 그러면 자기의 기준점이 생겨요. 
“아 이 가게는 3000원 인데 맛이 좋다 안 좋다” “우리 것보다 좋다 안 좋다” 이런 경쟁할 수 있는 기준점이 생기기 때문에 다른데 가서도 많이 사요. 
근데 정작 많이 먹지는 않고 저희 집은 그래서 다 주스로 갈아 먹어요. 집에는 제가 계속 과일을 사다 나르니까, 제가 파는 과일만 갖고 오는 게 아니라 다른데 가서도 엄청 많이 사는데 그러다 보니까 웬만한 건 다 주스로 갈아 먹어요. 

Q. 트럭장사를 하다 보면 사고도 많이 나지 않나요? 
A. 사고 같은 것도 많이 나죠. 제가 트럭장사를 할 때도 주차하다가 접촉사고도 많이 나고 그래요. 

Q. 도난사건 같은 건 없었나요? 
A. 저는 없었는데 저희 장사를 배우는 사람들은 가끔 있어요. 돈 지갑을 차 안에 두고 내리는 경우가 있는데 몇 번 잃어버린 적도 있었어요. 

Q, 과일의 경우도 도난사건이 일어나나요? 
A. 과일은 가져가도 하도 많이 쌓아 놓고 하니까. 티가 않나요. 뭘 가져갔는지도 몰라요. (웃음)

Q. 앞으로 어떠한 장사꾼이 되고 싶으신가요? 
A. 지금처럼 장사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체계적으로 장사를 가르쳐서 장사를 많이 하라는 얘기가 아닌 장사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장사를 시작하라는 걸 가르쳐 주고 싶어요.
대부분 요즘 유행이 식당을 하다가 식당 열풍이 사그라드는 게 식당 하기 어렵다 어렵다 하니까 이제 과일가게로 다 눈이 돌아갔어요. 
적은 투자비용과 그냥 판매만 잘하면 되는 줄 아는데 그것도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을 하면 결국은 망하게 돼 있어요. 그래서 그런 걸 체계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제일 힘들어 하는 게 구매예요. 왜냐하면 10개 사는 사람보다 100개 사는 사람을 더 싸게 줄 거 아니에요. 그래서 공동구매를 통해 저와 뜻이 맞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분배해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해주고 싶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인터뷰 장면 ]


Q. 태풍이나 벌레들이 먹어서 생기는 품질의 차이 등으로 인해 맛도 많이 달라지나요?

A. 일단은 가격이 많이 올라요. 과일도 사람처럼 가치라는 게 있는데 작년에 굉장히 농사짓기 힘든 한해였어요.

그리고 과일 값도 많이 올랐는데 태풍이나 폭염을 이겨낸 과일은 굉장히 높은 가치를 받아서 비싸게 받을 수 있어요.

근데 그걸 못 견딘 과일들은 헐값이 되는 거예요. 좋은 과일들은 얼마든지 있었어요. 대신 예년보다 가격이 비쌌어요.


Q. 과일과 채소의 경우 무농약이 더 비싼데 농약도 뿌릴 때 가격이 들텐데 무농약이 더 비싼 이유가 있나요?

A. 재배가 그만큼 힘들어요. 무농약이라고 해서 농약은 안 뿌리는데 무농약은 그냥 내버려두면 다 자라는 게 아니에요. 그게 키우기가 더 힘들어요.

왜냐면 약초나 천연으로 발효 시킨 걸 뿌려줘야 되고 진딧물 같은 해충을 잡아먹게 하기 위해서 무당벌레를 대거 가지고 와서 풀어놓고 해야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무농약은 더 재배하기 까다로워요.

제대로 생산이 되지 않을 확률이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농약은 비싼 거예요.


Q. 마지막으로 장사를 하시는 수많은 분들 그리고 장사를 준비하고 계신 수많은 분들께 한 말씀해주세요

A. 장사를 하시는 분들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경기가 어렵다는 말이에요. “최저임금이 올라서 힘들다” 이런 소리를 해요, 근데 어떻게 보면 변명일 수 있어요.

경기가 어려운 건 사실인데 제가 IMF 때부터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작년보다 경기가 좋았던 적이 없어요. 어른들이 항상 하시는 말씀있죠? “작년이 더 좋았다” “작년만 못하다”라는 말 많이 하시잖아요.

올해가 지나면 또 똑같은 소리를 해요. “어떻게 가면 갈수록 못 하냐, 작년만 못하다”는 소리를 똑같이 할 거예요. IMF 때 돈 번 사람들 분명히 있었거든요.

경기가 안 좋아서 자기가 어려워진 게 아니라 준비가 덜 됐기 때문에 어려워진 거예요. 물론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힘들어진 건 맞지만 최저임금이 올라서 그렇게 크게 힘들어진 게 아니에요. 준비가 덜 되면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과일 야채 장사가 단순히 판매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구매도 잘해야 되고, 위치 선정도 잘해야 돼요. 또, 내가 어려울 때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지에 대한 노하우도 필요해요. 단순히 판매만 잘한다고 뛰어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흔히 퇴직하시는 분들이 “나도 장사나 한번 해볼까?” “과일 장사나 해볼까?”라는 말을 많이 하시는데 그런 분들은 정말 하시면 안돼요. 그래서 장사를 충분히 배운 뒤에 하시라고 얘기해드리고 싶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배성기 대표와  ]


여러분 이번 국가대표트럭장사꾼 배성기 대표의 인터뷰 어떠셨나요? 저는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과일 채소 트럭장사가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과일 채소장사에 대한 진솔한 얘기를 들어보는 인터뷰였는데요.

힘들 때 배성기 대표의 인터뷰를 생각하며 “조금만 더 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원하는 걸 이뤄내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호이의 사람들] 마음치유 전문가 박상미 대표 인터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