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몸의 변화를 인정하고 새로운 사용법을 익히자.
마흔 즈음이면 많은 이들이 인생 후반을 준비한다. 사실 명확히 마흔이 그 기점이라 말할 근거는 없다, 다만 그 무렵부터 서서히 느껴진다. 예전 같지 않은 체력, 늘어난 병원 진료표, 그리고 어쩐지 더딘 회복. 눈은 침침하고, 자도 자도 늘 피로하다. 그제야 실감하게 된다. 생의 에너지가 무한히 이어질 것만 같던 청춘의 때에 흔히 하게 되는 착각에서 빠져나온다.
이제 남아 있는 내 인생에는 '완벽하게 건강한 시간'은 없음을 받아들이자. 40년 넘게 탄 헌차가 새차가 될 수는 없다. 엔진오일도 제때 갈고, 고장 나면 바로 고치고, 부지런히 기름칠하며 타야 한다. 무슨 수를 써도 헌차는 새차가 될 수 없듯, 산삼으로 깍두기를 담가 먹는다 한들 이팔청춘으로 돌아갈 리 없다. 그러니 이젠 인정하자. 남은 삶은 꾸준히 관리하며 살아야 한다. 무리하지 말고, 덜 먹고, 꾸준히 움직이고, 덜 스트레스받으며 살아야 한다.
둘째, 스트레스로부터 내 마음을 지키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스트레스는 쉴 새 없이 쏟아져 들어온다. "어떻게 스트레스를 안 받아?"라고 반문하지만, 바로 그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스트레스는 남이 '주는 것', 그것을 받을지 말지 결정하는 주체는 '나' 자신이다. 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그것은 나의 스트레스가 아니라 그저 의미 없는 '소음'일 뿐이다. 모든 자극에 일일이 반응하고 모든 말에 상처받을 이유는 없다.
그러니 귀를 막을 필요도 없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기술이 필요하다. 상대는 알지 못한다. 설령 알아챈다 해도 어쩌겠는가. 고소할 일도 아니고, 불법도 아니다. 내 마음밭의 파수꾼은 타인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남이 뭐라 하든 때로는 뻔뻔해지자. 소중한 나를 위해서.
이것은 불친절하거나 이기적인 태도를 권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내 마음이 먼저 건강하고 평온해야 타인에게도 진심 어린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나를 온전히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가장 단단한 기초가 된다.
셋째, 사람들의 기대에 굳이 부응하려 하지 말자.
그러려면, 먼저 스스로의 기대부터 거슬러야 한다. 사실 가장 큰 적은 나 자신이 나에게 거는 기대다. 이래야 한다는 기준들, 그걸 잠시 내려놔 보자. 승진해야 하고, 정년을 채워야 하고, 이 정도는 돈을 모아야 하고, 이 정도 수준의 옷, 구두, 가방은 걸쳐야 하고, 이 정도 입지의 아파트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들. 이런 기대감을 싹 치워버리자. 더 늦기 전에 내려놓고, 그 무게로부터 가벼워지자. 어차피 아프면 돈도 명예도 아무 소용없지 않나. 저승 갈 때 싸들고 갈 수 있는 게 아니잖나.
넷째, 인생의 후반전은 전반전과 속도와 방향이 달라야 한다.
젊은 시절의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끊임없이 도전하며 자신을 증명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매진했다. 한 푼 두 푼 아껴 종잣돈을 모으고 경제적 자립을 위해 분투했다.
하지만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지금,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함에도 불구하고 관성에 이끌려 여전히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꿈을 향해 전진하는 청년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이미 가진 권력과 부를 더욱 움켜쥐려는 노년의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인생 후반의 지혜는 젊은 시절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된 그 자리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사는 것에 있다. 또한, 가진 돈을 계속 쌓아두기만 하거나, 아파트 평수를 죽는 날까지 늘려가는데만 쓰는 건 내 인생에 대한 모독이다.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은 남은 삶을 보다 가치롭게 하는데, 그리고 가족과 이웃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데 쓰자.
다섯째,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하자.
지금껏 ‘해야 하니까’ 참 많이도 움직였다. 해야 하니까 참고, 해야 하니까 견디고, 해야 하니까 아팠다. 그런데 이제는 ‘하고 싶어서’ 움직이는 삶으로 전환할 때다. 삶의 주어를 타인의 기대에서 나 자신의 내면으로 돌려야 한다. '내가 좋아서',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삶은 가벼워진다. 인생 후반은 효율보다 몰입이 중요한 시기다. 무엇에 시간과 마음을 몰입할지를 내 손으로 정하는 것, 그것이 후반의 특권이자 지혜다.
여섯째, 관계를 정돈하자. 말 그대로 ‘정리’가 아니라 ‘정돈’이다.
정리란 잘라내는 일에 가깝고, 정돈은 잘 위치시키는 일이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관계라도, 완전히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거리만 재조정해도 삶은 훨씬 평화로워진다. 억지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억지로 맞추려 하지 말고,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라 받아들이며 필요 이상 섞이지 않으면 된다. 소중한 사람들과는 더 깊이, 더 자주, 더 따뜻하게 연결되면 된다. 그것이 관계의 정돈이며 인생 후반을 사는 지혜다.
일곱째, 죽음을 준비하되, 삶을 끝까지 사랑하자.
서른 후반까지는 주말마다 친구와 지인의 결혼식에 다니느라 바빴다. 하지만 마흔을 넘기며 달라졌다. 청첩장 대신 부고 소식을 더 자주 받는다. 진작부터 알고 준비하는 결혼 소식과 달리, 부고는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와 준비되지 않은 마음을 덮치기에 늘 당황스럽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죽음의 소식은 삶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생의 감각을 깨운다. 삶의 끝이 있음을 의식할 때, 우리는 그제야 ‘지금’이라는 순간에 깊이 눈뜨게 된다. 하루가 선물처럼 느껴지고, 사소한 것들이 귀해진다. 커피 한 잔의 온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 모든 것이 ‘다시없을 지금’이라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두려움 속에 움츠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더 깊이 사랑하고, 더 진하게 삶을 살아내는 일이다. 삶의 마지막이 언제가 될지 모르기에, 오늘 하루를 정성껏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 후반을 사는 자들이 가져야 할 지혜의 정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