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de Kim Nov 07. 2019

당신이 그리워하는 날은 언제인가요?

 스리랑카에서의 2년간의 삶은 나를 바꿔 놓았다.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다. 스리랑카에 가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입을 모아 달라졌음을 지적했다. 성격이 밝아졌다, 적극적으로 변했다, 말수가 늘었다, 그늘이 사라졌다 등 표현은 제각각이었지만 모든 사람이 나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무엇이 나를 변화시켰는지 확실하게는 알지 못한다. 다만 삶에 대한 여유가 조금 더 생겼고, 나 자신을 더 좋아하게 되었음을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가장 분명하게 느낀다. 답답한 대한민국을 떠나 새로운 세상에서 살았기 때문이라 간단히 설명할 수 없다. 이후에도 나는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두 차례나, 그것도 꽤 긴 시간을 살았지만 스리랑카 때처럼 극적인 변화는 없었으니까.


 스리랑카를 묘사한 나의 글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내가 얼마나 스리랑카를 사랑했는지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글의 이곳저곳에 묻어 나오는 유치한 유머에서 천진했던 그 당시의 내가 보였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의문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스리랑카를 사랑했던 걸까? 아니면 천진함, 푸르름, 낭만이 가득했던 나 자신을 사랑했던 걸까? 나는 첫사랑 민순이를 사랑했던 걸까? 아니면 민순이를 사랑했던 나 자신의 감정에 매료되었던 걸까?

  스리랑카에 다시 한번 가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가 이내 가라앉는 것은 어쩌면 두려움 일지 모른다. 마흔을 바라보는 민순이가 여전히 청량했던 그날의 웃음소리를 간직하고 있을까? 스무 살의 민순이만을 기억하는 나인데, 민순이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 알아볼 수나 있을까? 도전보다는 기꺼이 안주함을 선택하는 중년의 남자는 늘 두려움이 많다. 그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며 다시 세상 때가 묻는지, 말수가 적고 어딘가 그늘졌던 예전의 나로 회귀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부쩍 찬란했던 그날들이 그리웠나 보다.


 회사에서의 연차가 쌓이며, 일의 양과 책임의 무게가 점점 더해간다. 본연의 나는 점점 희미해지고 직함과 역할만이 남겨졌다. 하루를 시작하는 두근거림을 느껴본 게 언제인가?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는 위기감에 나는 스리랑카에서의 기억을 애써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때의 사진을 들쳐보고, 먼지 쌓인 기억들을 기억해내려 애쓰는 동안 어느새 찬란했던 시절의 나로 돌아가 천진한 글을 쓰고 있었다.

 언젠가 또다시 힘겨운 세상살이에 나를 잃어갈 때쯤 다시 펼쳐보려고 정성껏 기록한 '아유보완 스리랑카'가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유익이 되기를. 그 유익이 일상의 활력을 더할 재미일지, 스리랑카를 여행하게 되는 계기가 될지, 혹은 당신이 그리워하는 과거의 자신을 되찾는 긴 여정의 시작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전 11화 천공의 성 시기리야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