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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역뿌리 Jan 21. 2018

#73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같은 상처를 지닌  

*이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설원에는 숫사슴과 암사슴이 있다. 매일같이 그들은 설원에서 뛰어논다. 서로 어떠한 대화조차 하지 않지만 함께 물을 마시거나 먹이를 찾는다.  주인공 두 남녀의 꿈 속 한 장면이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스틸컷. 두 남녀가 꾸는 같은 꿈에서는 각자 사슴이 된다. 


새하얀 설원과 대조적으로 그들의 일터는 핏물로 낭자한 도축공장이다. 도축공장의 재무이사인 안드레는 과거에 수많은 여자를 만났지만 어느 순간부터 금욕주의와 독거를 자처하는 이혼남이다. 마리아는 세상과 타인과의 관계가 익숙치 않아 매일 같이 레고로 대화장면을 연습하는 도축공장의 새로 온 파견직원이다. 겉보기에도 두 남녀는 어떠한 접점을 찾을 수 없다. 단 한 가지만 빼고.


안드레와 마리아는 공통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맺기를 두려워한다. 영화는 상극인 두 남녀의 접점에 주목한다. 직장동료와도 잘 지내는, 겉보기에 전혀 문제 없어보이는 안드레에게는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어떠한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 직장동료들과의 대화도 단답형으로 끝내는 게 그의 특기인 듯하다. 그야말로 그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권태로워하고, 무기력하다.


한편 마리아는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꺼려한다. 그녀는 사방에 철옹벽으로 둘러싸인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는 것만 같다. 관계의 결여로 알게모르게 고통받는 두 남녀는 꿈에서 사슴이 되어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를 실현하는 셈이다.  

마리아가 대화 대행연습을 하는 레고. 


그러나 꿈에서는 잘만 실현되던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는 현실에서 이룩하기는 참 어렵다. 공교롭게도 둘은 동일한 꿈을 꾼다는 사실을 상담가로부터 알게된 후 가까워지지만,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특히 마리아는 꿈을 통해 용기를 얻은 후, 안드레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안드레는 지나친 신중함과 조심스러움으로 마리아로부터 멀어지고자 한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전화 한 통'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준다. 그 전화 한 통이  마리아가 자신의 손목을 그으며 자해하는 장면이라 자칫 섬뜩해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관계에 무지한 그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용기 내어 타인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는 측면에서는 가장 낭만적인 장면이 아닐까.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스틸컷. 


드디어 관계적으로 결핍과 불충족의 상태에 놓인 두 남녀는 서로 사랑을 시작한다. 영화 결말부에는 두 남녀는 섹스씬과 아침식사를 함께 하는 씬으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서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뒤이어 그들이 매일같이 꾸던 꿈, 그러니까 새하얀 설원이 등장한다. 그러나 두 남녀가 빙의되던 두 사슴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더이상 그 꿈을 꾸지 않는 걸까. 아니면 두 사슴의 다른 버전 꿈을 꾸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웠던 두 남녀는 더이상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하는 욕망을 꿈에서 찾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고 있는 현실에서 그러한 꿈은 그들에게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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