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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역뿌리 Oct 21. 2017

#61 <칠드런 오브 맨>, 희망을 잃지 않는 이유

가장 끔찍한 디스토피아의 모습은 어떨까.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기계문명으로 인해 행복이 조작된 반유토피아적 사회를, 조지 오웰의 <1984>는 전체주의의 감시와 통제 하에 개인의 자유가 억압된 사회를 그린다. 그렇다면 더이상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지 않는 사회는 어떨까. 전 세계의 여성들이 더 이상 아기를 낳지 못하는 사회를 그리는 <칠드런 오브 맨>은 색다른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국경은 무너지고, 무장국가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영국은 불법이민자의 폭동과 테러가 난무한다. 인류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정부마저 평온한 자살을 맞이할 수 있는 약을 배포하기도 한다.


<칠드런 오브 맨> 스틸컷.


영화는 2027년, 지구에서 가장 어린 아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으로 막을 연다. 모든 사람들이 뉴스를 보며 눈물을 훔칠 때, 무표정한 얼굴로 그곳을 황급히 빠져나오는 한 남자가 있다. '테오'는 한때 혼란 가득한 세상을 바꾸겠노라 투쟁했던 인물이다. 그랬던 그가 신념이 같았던 아내 '줄리안'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죽은 이후로 의욕도, 감정도 모두 잃었다. 여느 시민들처럼 현실에 순응하며 남은 생을 채워갈 뿐이다. 그러나 다시 우연찮게 재회한 줄리안에게 세상에서 가장 어린 흑인소녀 '키'를 인간프로젝트에 무사히 데려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그녀의 부탁으로  반강제로 시작하지만, 하필이면 그가 위험을 불사르고 막중한 임무를 완수해야하는지 그 필요성에 대해 전혀 느끼지 못한다. 줄리안의 죽음 이후에는 회의감은 더 깊어질 뿐이다.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에게 키는 최후의 보루였던 임신한 배를 공개한다. 그 순간, 테오는 경외로움과 함께 다시 임무를 완수해야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아이의 죽음에도 어떠한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던 그는 흔들린다. 죽어있는 세상에서 새로운 희망을 목격한 것이다. 그는 그 순간 다짐했을 테다. 이 소녀와 아기를 꼭 지켜내겠노라고. 과거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을 만회하고자 세상에 던지는 마지막 투지일지도 모르지만 그가 새로운 세상과 생명을 소망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칠드런 오브 맨> 스틸컷. 


테오 외에도 새로운 생명을 지켜내기 위한 여정에 많은 이들이 동참한다. 키가 진통으로 인해 발각되려는 순간 대신 잡혀감으로써 그녀를 지켜냈던 쟈스민, 정부의 무리를 따돌리기 위해 죽음을 택한 제스퍼, 인간프로젝트까지 갈 수 있는 배를 구해줬던 집시까지 모두 절망의 현실이 아닌 인류의 유일한 희망을 위해 행동했다. 총성 가득한 전쟁통에 아기 울음소리에 일제히 모든 행동을 멈춘 군인들도 마찬가지다. 서로에게 겨누던 무기를 모두 내려놓고그들은 테오와 키, 그리고 새로운 생명에게 길을 내준다. 담요더미로 감싼 아기에게 눈을 떼지 못하며 경외로움을 표한다. 울려퍼지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구원의 빛줄기였을 테다. 절망적인 현실에서 구원의 현장을 목격함으로써 분명한 이유없이 싸우던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지켰다.


<칠드런 오브 맨>은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렸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사이기 때문에 피어날 수밖에 없는 희망을 그렸다. 욕망과 폭력으로 점철된 세상일지라도 인간 내면에 있는 순수함과 선함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 특유의 본성으로 인간들은 절망 속에서도 언제나 희망을 경험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머지않아 인간이 자초할 지도 모르는 디스토피아 사회에 이 영화는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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