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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역뿌리 Nov 18. 2017

#64 <몬스터 콜> 현실을 인정하면 보이는 것들

*<몬스터 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한 아이의 성장기이자 어른을 위한 동화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 마주해야 했던 아이러니한 상황을 목격할 수 있다


 <몬스터 콜> 스틸컷

"나는 괜찮아요" 누군가 물어보면 소년 ‘코너’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정말 괜찮은 척 말이다. 코너는 애써 이 모든 상황을 버텨내고 있다. 한창 어리광을 부릴 나이에 성숙해져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를 돌보느라 신경이 곤두선 외할머니, 이혼하고 미국에서 새 가정을 꾸린 아빠, 그리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병원을 전전하는 엄마. 가장 가까운 이들이 저마다 큰 짐을 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코너는 어느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또래 집단 사이에서는 학교폭력을 당하기 일쑤다. 이 모든 상황을 지탱하는 다리가 무너질 것 같아 힘든 내색조차 하지 못하는 그가 택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선택지, 바로 상상 속의 ‘몬스터’를 불러오는 것이다.

     

12시 7분. 매번 몬스터가 나타나는 시각이다. 그러나 몬스터는 코너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집안에서 할머니를 내쫓거나 엄마의 병을 낫게 하기는커녕 전혀 무관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그것도, 듣기에 아주 거북하고 불편한 이야기들만. 네 번째 만났을 때는 반드시 거짓이 아닌, 너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코너에게 으름장을 놓기까지 한다. 세 이야기를 들으며 코너는 가려진 진실한 자신과 마주한다

 

세 이야기 중 코너에게 가장 유의미한 이야기는 사악한 여왕과 선량한 왕자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다. 언뜻 줄거리만 들어보면 왕자의 애인과 왕을 독살한 새 여왕은 악의 축이요, 이를 구하고자 했던 왕자는 선의 축이라는 점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아니, 그렇게 이해하기 편하다. 왕자와 여왕을 극선과 극악으로 밀어붙여 그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야기의 줄거리는 여백에 있는 복잡한 내막을 보여주지 않는다. 실제 생략된 내막은 다음과 같다. 선량한 왕자는 그의 애인을 계획적으로 죽은 살인자이고, 사악한 여왕은 왕을 독살한 살인자가 아니다.

     


<몬스터 콜> 스틸컷


처음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코너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 여태껏 알던 동화 속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네가 하는 말은 다 거짓이라고, 코너는 한 발짝 더 생각하기를 거부한다. 이에 몬스터는 말한다.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 너머에 존재하는 진실은 훨씬 복잡하다고. 그렇기에 인간을 순수한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고, 오로지 그 사이에서 선과 악이 공존하는 형태로 존재한다고 말이다. 그러니 병에 걸린 엄마가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 뒤로, 자신을 괴롭히는 ‘무언의 생각’을 인정하라고 독촉한다. 그러나 코너는 엄마의 병이나 고쳐달라고 할뿐, 들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코너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끊임없이 나쁜 감정이 올라오는 나를 인정해버리면, 여태 잘 버텨오던 내가 무너져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죄책감’이라 불리는 이러한 감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울타리를 세우며, 진짜 ‘나’를 마주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실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감정이 아닌, 이를 회피하려고만 하는 우리 자신이다. 인간이기에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는 우리 자신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가짜 감정과 가짜 생각으로 뭉친 형체 없는 무언가와 싸워야한다.

     

네 번째로 코너의 내면 속 깊숙한 이야기를 해야만 할 때,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코너는 속마음을 털어낸다. “다 끝났으면 좋겠어”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일까. 버거운 상황 속에서 줄곧 어른이여야 했던 소년은 그제서야 곪아있던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면서 한결 편해진다. 지극히 냉정한 현실과 가려진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 영화 전반을 이끌어온 이 과제를 수행한 후에야 코너는 시시각각 갈등이 있던 외할머니와 화해하고, 엄마를 진정으로 떠나보낼 수 있었다. 인정하면 더 아플 것만 같았던 현실이 외려 코너를 치유한 셈이다. 그러니 우리는 한 발짝 움직이는 것조차 두려울지라도, 감싸고 있는 허물에서 나와 진실된 자아와 현실을 마주해야한다. 직시하고, 인정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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