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역뿌리 Dec 09. 2017

#67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너무나 다른 그들


이 글은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문득 외로울 때가 있다. 스스로 감당하기 버겁고, 누구에게도 말 못할 고민이나 비밀이 있을 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당장이라도 털어놓고 싶지만, 그에게 나의 부담을 전도하는 것만 같다. 혹은 그조차도 엄연한 타자임을 인식하고 우리는 입을 다문다. 그 때, 우리는 소울메이트를 꿈꾼다. 서로 영혼이 닮아 있기에 굳이 부담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죄책감을 받지 않아도 되는 그런 정신적으로 편안한 관계 말이다.

     

대개 이런 영혼의 동반자는 나와 유사한 환경에서 자랐을 확률이 높다. 비슷한 가정환경, 비슷한 친구들 등에서 살아온 이들은 성향이 닮아있기에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서로 어떤 감정을 느끼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그런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서로로부터 위안을 받는다. 그런데 이 영화 속 두 소녀는 조금 다르다. 서로를 평생의 짝이라 부르지만,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서 자란 그들은 극과 극의 인생을 살아간다.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서로를 통해 채워나가며 그들은 우정을 키워나간다.

    

영화 <안녕, 소울메이트>의  스틸컷. 달랐기에 그 어떤 누구보다 서로에게 소중한 친구였던 안생과 칠월.


칠월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하에 부모님의 사랑과 함께 제도권 하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 모범생이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이뤄지는 입시공부, 일반 고등학교 진학에 이어 취업이 잘 되는 학과에 진학, 그리고 은행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까지. 인생의 탄탄대로를 걸으며 학창시절부터 사귀었던 가명이라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한편, 그와 어린 시절부터 줄곧 함께 지내왔던 안생은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이를 인식하고 울타리에서 벗어나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야 했다. 하고 싶은 미용 공부를 위해 관련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고, 원치 않은 대학공부 대신 생업 전선에 뛰어든다. 그러다 칠월의 애인 가명과의 관계 속에서 애매모호한 기류를 느끼고, 그녀의 영혼의 동반자를 위해 고향을 떠난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이곳저곳을 떠돈다. 그렇게 각자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그들은 편지로나마 소식을 주고받으며 인연의 끈을 놓지 않는다. 다시 만나게 될 순간만을 기다리며.

     

그러나 그들이 재회했을 때는 예전과 같은 반가움만 있지 않다. 묘한 불편한 기류가 흐른다. 특히 칠월과 안생이 함께 여행을 떠났을 때 문제의 시한폭탄은 폭발한다. 늘 그렇듯이 값싼 여관에서 숙박하려는 안생, 이에 화난 듯 안생을 호텔로 끌고 와서 호텔비를 계산해버리는 칠월. 고급 레스토랑에서 오랜만에 만난 소중한 친구와 식사하고 싶은 칠월, 이에 미안해하며 취객들로부터 특유의 말솜씨와 재간으로 술을 공수해온 안생. 그리고 이러한 모든 상황과 안생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칠월. 모범생으로 살아왔던 칠월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왔던 안생이 부딪히는 순간이다. 전부터 목격한 안생과 가명의 관계를 오해하면서 그들은 이제 마음까지 멀어진다.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스틸컷.

     

세월이 지나 안생과 칠월이 다시 만난다. 삼각 기류의 중심에 서 있는 남자, 가명으로 인해. 결혼을 목전에 두고 퉁명스러워진 가명의 집에 칠월은 급작스럽게 방문한다. 그 때 가명의 어깨에 기대어 부축당하고 있는 안생을 목격한다. 불의의 사고로 애인을 잃은 후 안생은 가명의 집에서 동거했던 것이다. 다시 오해가 쌓이고, 칠월은 안생에게 가장 아픈 말을 내뱉는다. 서로 가장 힘든 순간에, 절대 해선 안될 마지막 말을 해버린다. 의지할 곳 없는 안생에게 유일한 친구인 칠월의 말은 그 어느 누구의 신랄한 말보다 가슴에 크나큰 구멍으로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안생은 칠월에게 되받아치기는커녕 실소를 터뜨리며 말한다. “우리 어쩌다 이렇게  돼버렸을까서로가 너무나 반대였기에 그들은 절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언제든 적이 될 수 있었다. 이를 알고 있었지만 가장 어려운 순간에 그들은 서로에게 아픔을 남겼다.

     

만약 이 영화가 여기서 끝났더라면, 그들의 관계를 소울메이트라고 칭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된다. 칠월은 가장 힘들 때 안생을 찾아가고, 안생은 아무 일 없었던 마냥 갈 곳 잃은 칠월은 보듬어준다. 어떠한 갈등과 오해가 겹겹이 쌓여 잠시 친구라는 자리를 이탈할지라도, 그들은 서로가 힘들 때 기꺼이 다시 친구를 자처한다. 그러한 여정 속에서 그들은 그제서야 자존심을 버리고 서로에게 솔직해진다. 과거에 했던 말이 진심이 아님을 자각하고, 서로에게 솔직해짐으로써 서로를 한 발짝 더 이해하려고 하는 것.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들은 진정으로 소울메이트가 된다.  

     

세상에 자신과 영혼이 똑 닮은 사람이란 없다. 각자 다른 삶을 살아온 상대방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관계만이 서로에게 진정한 소울메이트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64 <몬스터 콜> 현실을 인정하면 보이는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