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작은 '상태적 리얼리즘'이라는 실험적 방법론으로 쓰였습니다.
Chapter 1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Chapter 1 (원본): 의도적 생략 버전
- 대화 최소화
- 유혹 과정 제거
- 식별과 포획만 기록
Chapter 1-B (대안): 확장 버전
- 대화 추가
- 시선 교환
- 긴장 상승 과정
두 버전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둘 다 읽어도 됩니다.
저는 원본을 권장하지만, 선택은 독자의 몫입니다.
원나잇에 서사가 필요한가?
그것은 당신이 결정하십시오.
[19금 / 실험문학]
나는 혼자였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누적된 결과였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 감각은 마모되었고, 신경계는 강렬한 물리적 타격을 통해 자신이 실재함을 증명받고 싶어 하는 진공 상태를 형성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밤, 이 바(Bar)의 높은 의자에 앉아 있다.
공간은 무질서한 소음과 알코올의 휘발성 분자로 가득 차 있다. 낮은 조명은 내 망막을 기만하며 사물의 경계를 흐릿하게 뭉개지만, 내 앞의 위스키 잔 속에서 깎여 나가는 얼음의 각진 질감만은 선명하다. 그것은 이 무질서한 엔트로피 속에서 내가 붙들고 있는 마지막 고정값이다.
자정이 지났다. 이미 녹아버린 얼음이 남긴 미지근한 위스키를 입술로 가져간다. 묽어진 농도, 체온보다 낮은 온도.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은 둔하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응시한다. 입술에 덧칠한 붉은 색은 형광등 아래에서 지나치게 선명하다. 피부는 건조하고, 눈 아래 다크서클은 파운데이션으로 덮었으나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손가락은 잔을 쥐고 있다. 손톱 끝은 매니큐어로 정돈되어 있으나, 엄지손가락 끝의 각질은 벗겨져 있다.
높은 굽. 발목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세한 통증을 보고하고 있다.
그때, 내 등 뒤 1미터 부근의 대기가 비정상적으로 압축된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거대한 질량을 가진 물체가 내 중력권 안으로 진입했다.
남자가 내 옆자리의 좌표를 점유한다. 그가 밀어낸 공기는 파동이 되어 내 피부 점막을 미세하게 수축시킨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계측한다.
남자의 신장은 나보다 훨씬 크다. 어깨 폭도 넓다. 남자의 외형은 정돈되어 있으나, 그 정돈 아래로 통제된 압력이 감지된다. 재킷은 어깨선을 따라 팽팽하게 당겨져 있고, 그 아래 근육의 부피는 충분히 크다. 손목에 감긴 시계는 무겁다. 그것이 바 카운터에 닿을 때마다 내는 둔탁한 소음은 그의 존재를 물리적으로 각인시킨다.
그의 손은 크다. 손가락 마디마다 뼈의 윤곽이 선명하고, 손톱은 깎였으나 손등에는 미세한 상처 자국이 있다.
그의 눈은 나를 직시하지 않는다. 대신 바텐더를 향해 낮고 안정적인 저음으로 주문을 내뱉는다.
"위스키. 스트레이트로."
그 목소리는 낮다. 저음역대다. 내 척추를 타고 흘러와, 아직 접촉하지 않은 내 근육들을 미리 경직시킨다.
바텐더가 호박색 액체를 가득 채운 잔을 남자 앞에 놓는다. 표준 잔, 위스키 도수 40도 이상. 남자는 잔을 들어 빛에 비춰본다. 독주가 가진 진한 농도가 유리벽을 타고 끈적하게 흘러내린다.
남자가 나를 본다.
"혼자?"
질문이지만 확인에 가깝다.
나는 잔을 내려놓는다.
"네."
"나도."
남자가 한 모금을 입안에 머금은 채, 천천히 삼킨다. 목울대가 움직인다.
침묵.
남자가 내 잔을 본다.
"그 위스키, 농도가 너무 낮아 보이는데."
"얼음이 녹았어요."
"처음부터 낮게 주문했겠지."
틀린 말이 아니다.
남자가 의자를 돌린다. 내 쪽으로. 거리가 좁혀진다. 무릎과 무릎 사이 30cm.
그가 자신의 잔을 내 잔 쪽으로 가볍게 기울인다. '챙-' 하는 금속성 파열음.
"마셔봐."
명령이 아니라 제안. 하지만 거절의 여지는 없다.
나는 남자의 잔을 받는다. 무겁다. 입술에 댄다.
40도 위스키의 화력이 입술을 태운다. 한 모금 삼킨다. 목구멍이 불타오른다.
남자가 보고 있다. 시선이 내 입술에 고정되어 있다.
심박수가 급격히 상승한다.
"더 독한 걸 원하게 될 거야."
남자가 머금은 독주의 잔향이 내 호흡기 내벽에 닿아 기화한다.
남자가 바텐더에게 손짓한다.
"여기, 위스키 한 잔 더. 스트레이트로. 그녀 앞에."
바텐더가 새 잔을 가져온다. 남자가 받아, 내 앞에 놓는다.
거리 20cm. 남자의 무릎이 내 허벅지 옆에서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이 감지된다.
나는 새 잔을 든다. 입술에 댄다. 또 한 모금.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열기. 아랫배까지 도달한다.
남자의 눈에 무언가 번뜩인다. 만족. 확인. 결정.
잔을 쥔 내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린다. 손끝이 차가워진다. 맥박이 빨라진다.
호흡이 짧아진다.
남자가 내 손에서 잔을 가져간다. 바 위에 놓는다.
그의 손이 내 손등에 닿는다. 뜨겁다.
손가락이 내 손목으로 미끄러진다.
잡는다.
뼈와 힘줄이 맞닿은 부위에 가해지는 강한 압력. 혈류의 속도가 강제로 끌어올려지고, 손목 아래 정맥이 압박되어 손끝으로 가는 혈류가 일시적으로 차단된다.
"나가지."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높은 구두 굽이 바닥을 긁으며 내는 날카로운 마찰음.
바를 나서는 순간, 차가운 새벽 공기가 열기에 달구어졌던 내 피부 표면의 온도를 급격히 뺏어간다. 하지만 내 손목을 결착한 그의 악력은 뜨거운 고정값으로 남아 있고, 그 온도 차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