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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냥깜냥 Jul 10. 2020

파란 거짓말 05.

written by 장미



파란 거짓말 05.

 W. 장미



**



“나 과학 선생님 봤는데.”

     

오늘은 마주치는 사람마다 나를 왜 이렇게 괴롭히는 거지? 찬위는 진주의 말을 듣자마자 그런 생각을 했다. 반에 맨 처음 들어온 친구가 재영이 아니었더라면, 이 길에서 진주를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다면 찬위는 조금 덜 괴로웠을지도 모르는데. 과학 선생님을 봤다는 말이 너무 뜬금 없으면서도 찬위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본 말 같기도 해서 찬위는 진주의 말에 쉬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재영의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입 안에서 말을 고르고, 또 골라본다. 적절한 대답을 찾아 내뱉는 게 맞지만 생각조차 못 해본 상황은 그리 쉽게 대답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얘는 얼마나 알고 있지? 과학 선생님을 언제 봤다는 말일까? 그 얘기를 나한테 하는 이유는? 의문들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답을 도출해보지만 진주의 말 한 마디로는 아무런 대답도 제대로 도출해낼 수 없었다.     


“…어어,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이야기인 줄 알잖아.”

“아닌데. 네가 무슨 소리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그 날을 말하는 거야.”     


이렇게 이야기하면 정확히 알겠지? 적당히 못 알아듣는 척 하면서 자리를 뜨려고 했던 찬위는 진주의 마지막 말에 입을 딱 다물었다. 진주의 말대로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진주는 과학실에 사고가 있던 날을 말하는 것이다. 그 날 과학 선생님을 봤다는 것은 찬위와 다르게 진실로 목격자란 말이 거의 확실했다. 거짓말쟁이. 찬위는 본능적으로 저를 방어하듯 말을 툭 내뱉었다. 거짓말쟁이? 진주는 찬위가 뱉은 아주 작은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되물었다. 찬위의 머릿속에 생각들이 엉키고 정리되며 어지럽혀지기 시작한다.

진주도 거짓말쟁이겠지. 그 날 과학실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들었는데. 친구들은 찬위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 모두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다. 정말로 과학 선생님의 사고를 봤다면 진주는 오히려 저보다 먼저 입을 열지 않았을까?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자신이 본 이야기를 정확히 하고, 그것이 저가 한 거짓말보다 먼저 퍼져서 제 거짓말은 연기처럼 사라졌을 것이다. 아니, 그렇지 않고 남아있더라도, 둘 중 누가 맞는 말을 한 사람인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람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교의 대부분이 찬위가 한 거짓말을 퍼트리고 믿고 있었으며, 그 위를 덮는 소문은 생긴 것이 없었다. 아직 선생님들 귀까지 찬위의 말이 들어간지는 모르겠으나 그것도 시간문제라는 것을 찬위는 잘 알고 있었다. 대충 말만 잘 정리해서 전하면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할 일은 더 이상 없겠지. 재영이 오기 전까지 자리에 앉아서 했던 생각을 찬위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찬위는 진주도 저와 마찬가지로 거짓말쟁이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모두에게 주목을 받으니 나를 흔들고 싶은 걸까? 그게 아니라면 왜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하지? 찬위는 무의식 중에 진주가 진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려고 했다. 진주가 진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큰일이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머리가 그렇게 행동을 하고 있었다. 진주가 아는 것과 찬위가 말하고 다닌 것이 다르다면, 진주가 먼저 선생님들께 찾아가 저가 본 것을 제대로 이야기한다면, 진주의 말로 새로운 소문이 일어난다면, 찬위의 평판은 바닥으로 곤두박칠 칠 거라는 건 굳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니까.      


“네가 나한테 왜 이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어.”

“진짜? 정말 모르겠어?”

“…….”

“나는 너한테 좋은 기회를 주는 거야.”     


진주의 말들이 찬위의 목을 점점 감아온다. 숨이 점점 막히고, 당장이라도 바삐 움직이던 심장이 더 일을 하지 못하고 멈출 것 같다. 진주는 위선자가 분명하다. 선을 베풀 듯, 찬위가 회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듯하지만 진주 또한 진실을 정확히 아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찬위에게 과학 선생님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 어떻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인가. 찬위는 더 불안하고 괴로워지기만 할 뿐인데. 저가 진실을 알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정확히 사람들에게 사실을 이야기하라는 말이라면 더더욱 나쁜 사람이었다. 찬위가 그걸 하지 않기 위해서 해온 것이 얼마인데. 지금까지 괴로워했던 게 다 무엇 때문인데. 낙인이 찍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이 일이 있기 전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들을 부수지 못해서, 남들의 작은 관심이 좋아서 저를 보호하고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뛰어다녔는데 그걸 모두 헛수고로 만들라고 하다니. 찬위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진주의 말도 계속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얼굴을 잔뜩 구긴 찬위는 진주에게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고 발을 움직였다.

이제 반에는 애들이 꽤 있을 것이다. 들어가서 평소에 그랬던 것처럼 공부를 시작해야지. 찬위의 노트에는 친구들이 물을 말과 예상답변들이 쓰여져 있다. 그걸로 하루를 잘 버티기만 하면 된다. 늘 그렇듯 혼자서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저런 말로 괜히 흔들리지 말자. 찬위는 저 자신을 꾹꾹 붙잡으며 복도를 걸었다. 진주는 저를 지나쳐 가는 찬위를 굳이 잡지 않았다. 그냥 혼자 쉴 새 없이 중얼거리며 떠나는 모습을 가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얼굴은 조금 일그러져 있었지만 그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교실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찬위는 제 숨이 턱턱 막히는 게 느껴졌다. 반에 사람이 많을까? 저를 보고 무슨 이야기를 할까?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으면 좋겠는데 가능할까? 요 며칠동안 있었던 일을 정리하니 멀쩡했던 날이 아무것도 없다. 오늘도 시작부터 최악이지 않았은가. 남은 시간이라도 평화롭게 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찬위는 이제 알 수 있었다. 복도를 걸으면서 진주와 했던 대화를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봤지만 진주가 정확히 무얼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찬위는 언제나 대화에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빠르게 찾아내는 편이었다. 원하는 것을 빨리 해결해주면 사람들은 늘 찬위를 좋아했으니까. 사랑을 얻기 위한 발버둥은 자연스레 찬위의 몸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뭘 원하는지 알지 못한 건 남들에게 연기하는 것이 익숙해지고 거의 처음 있는 일이다. 그래서 더욱 신경이 쓰이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주가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저가 뭘 하길 원한 건지 곱씹어보고, 또 곱씹어봐도 정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니 금방 교실이었다. 찬위는 문을 열었다. 작은 전투의 시작이다.          



**          



시간에는 발이 달린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빨리 지나갈 수가 없을 테니까. 교실 문을 열 때 심호흡하던 게 당장 5분 전인 것 같은데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찬위는 저가 어떻게 수업을 하고, 중간에 있던 쉬는 시간을 온전히 보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냥 친구들이 저를 끌고 급식실을 향해서 점심시간인 것을 알았을 뿐이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팔이 익숙하게 급식을 받았고, 친구들과 넉넉하게 빈 자리에 급식판을 내려놓고 앉을 때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안도인지, 불안인지 모를 감정이 내쉰 진한 여운이었다. 친구들이 급식과 전쟁을 시작하자 찬위도 모래알을 씹듯 잘 넘어가지 않는 밥을 억지로 입 안으로 밀어넣었다. 평소에는 좋아하던 반찬도 오늘은 그저 퍽퍽하기 그지없는 스펀지와 같았다. 미각을 잃은 것처럼 맛이 온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의무적으로 입에 급식을 쑤셔넣다가 그 행위를 멈춘 것은 제 시야 끝에 진주가 보일 때였다. 다른 여자애들과 즐겁게 웃으며 자리를 잡는데 저와 다른 행색에 질투가 날 정도였다. 나는 쟤랑 이야기한 후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쟨 왜 저렇게 멀쩡하지? 그런 생각이 머리를 강타하니 밥 먹는 행위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그냥 진주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그곳만 가만히 쳐다보며 원망을 할 뿐이었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고통스러운 것은 호수 뿐인 걸까? 흔들리는 수면을 바로잡기 위해 물살을 붙잡기 바쁜데 던진 사람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것은 괘씸하기까지 했다. 찬위는 진주에 대한 미움을 조금 더 쌓았다. 오늘 만났을 때부터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다. 저를 흔들고 괴롭혔으면서 혼자 평온한 게 화를 일으킨다.      


“찬위, 너 더 안 먹냐?”

“더 안 먹으면 반찬 나 줘.”

“어어, 그래. 너 먹어라.”

“앗싸!”     


친구들의 부름에 겨우 고개를 돌리고 친구들을 바라봤다. 늘 아무런 생각도 없고 즐겁기만 한 친구들은 오늘도 늘 그랬던 것처럼 즐겁기만 하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같이 어울려 즐겼었는데. 그날이 너무 까마득하고 아련하게 멀다. 역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불이 나기 전 그날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찬위는 제 몸의 무엇이든 내줄 수 있단 확신이 들었다. 금방 밥을 다 비운 친구들과 식판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찬위는 친구들에게 섞여 들어간 것처럼 웃으며 자연스럽게 연기를 시작한다. 급식실을 나가기 전까지 진주를 돌아보지 않았다. 제 시선을 따라 진주를 바라본 친구들이 누군지 묻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저런 나쁜 애는 몰라도 되지. 그런 생각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찬위가 시선을 돌아본 뒤에야 진주는 찬위의 뒷통수를 바라봤지만 찬위는 깨닫지 못했다.          



밥을 먹고 돌아간 교실은 어느 때보다 어수선했다. 원래도 몇몇이 모여 떠들고 있긴 했지만 이상한 분위기가 교실을 가득 채우고 있진 않았다. 찬위와 마찬가지로 친구들도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모두 입을 딱 다물고 교실에 있는 친구들만 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왁자지껄하던 친구들이 입을 다물자 교실의 작은 소음들이 찬위의 귀를 아프게 찌르기 시작했다.     


‘들었어? 아까 담임 과학실 일 때문에 찬위 찾다 갔다며?’

‘응, 그때 소영이만 있어서 그냥 나가셨대.’

‘소영이한테 아무 말도 안 하고?’

‘찬위 급식실 갔니? 그것만 물어봤다던데? 걔 부를 일이 과학실 일 말고 뭐 있어?’

‘오늘 경찰차 온 거 봤지? 그거 때문인가.’     


나야 모르지. 찬위가 알지 않을까? 일제히 꽂히는 시선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듯했다. 얼굴에 파고드는 시선이 따가웠다. 반에 있는 모든 친구들이 찬위가 입을 열기를 바라고 있다. 처음 그랬던 것처럼 찬위가 그날의 일을 떠들어주길 바라는 모양이다. 날카로운 시선들이 꼭 잘 만들어진 칼과 같았다. 늘 남의 관심만 바라던 찬위는 처음 느껴보는 날 것의 시선들이었다. 차갑고 날카로워서 찬위의 얼굴에 상처를 내고 스쳐지나간다. 상처 위로 빨갛게 피가 올라온다. 바닥까지 뚝뚝 떨어지는 피를 보고서야 찬위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따스해서 갈구하던 시선들이 찬위를 상처 입힌다.

나가고 싶어. 들어가기 싫어. 친구들은 작은 소리들을 다 듣지 못한 건지, 들어도 별 생각이 없는 건지 금방 분위기에 적응하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적응하지 못한 것은 찬위 뿐이었다. 너무 무서워서 다리가 덜덜 떨렸다. 예상했던 질문도, 대답도 다 필요 없었다. 당장 도망가고 싶단 생각 뿐이었다. 친구들은 혼자 들어오지 않는 찬위를 이상하게 다봤지만 공포에 질린 찬위의 눈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새파랗게 질린 찬위를 걱정스레 쳐다봤지만 이유를 알지 못해서 쉬이 말을 붙이기도 어려웠다. 찬위는 자신에게서 거두어지 않는 시선들이 얼른 사라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결국 문 앞에서 가만히 서 있던 찬위는 몸을 돌리고 바깥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뒤에서 친구들이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멈추지 않고 바깥으로 달렸다. 누군가의 시선들이 닿지 않는 곳, 아무도 저를 쳐다보지 않는 곳으로 숨고 싶었다. 왜 시선이 무섭지? 시선은 따뜻한 게 아니었나? 겁에 질린 찬위가 향한 곳은 학교 뒷편에 학생들이 잘 오지 않는 작은 벤치였다. 여기에 왜 벤치를 설치했는지 모르지만 주변에 풀도 많고, 풀 때문에 잡벌레들도 많아서 학생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었다. 벤치가 있는지도 모르는 학생들도 꽤 되었고. 찬위도 벌레 때문에 그리 좋아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당장 생각나는 것이 여기 밖에 없었다. 벤치에 앉아서 숨을 고르며 차분히 방금 들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저를 찾는다. 제 거짓말이 선생님들의 귀에도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이제 어떡하지? 어제 쌓았던 많은 질문들 중에 선생님들이 하는 질문은 없었다. 학생들이 떠드는 이야기에 선생님들까지 관심을 가진다는 생각은 티끌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찬위는 친구들에게 할 대답만 그렇게 머리를 싸매면서 만들어 냈을 뿐이었다. 예상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찬위?”     


그렇게 혼자 가만히 있는데 찾아온 것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누가 와봤자 몰래 나쁜짓을 하려던 애들이나 자기를 따라온 친구들일 줄 알았는데 상상도 못한 단정한 얼굴이 찬위를 불렀다. 진주는 이상한 표정으로 찬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여기 왜 있어?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아침처럼 귀에 웅웅 울린다. 그 말은 찬위가 할 말이었다. 이곳에 진주가 혼자 올 일이 무엇인가. 아침 일이 있고나서 한참 후에야 떠오른 진주는 찬위와 비슷한 사람이었다. 공부도 잘 하고, 친구들과 사이도 좋고, 선생님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그런 모범생들 중 하나였다. 단정하게 생긴 것 만큼이나 친구들에게도 친절해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어깨 너머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혼자 다니는 것이 어색해보였다. 저는 거짓으로 친구들 곁에 있는 척 연기한다면 진주는 정말로 친구들 속에서 어울리던 사람이었으니까. 저와 있을 때 다른 친구들도 없이 혼자 있는 모습이 어색하기만 했다.     


“나? 나…. 나…, 나는 그냥.”

“아, 그래? 그럼 옆 자리 좀 빌릴게.”     


땀으로 흠뻑 젖은 찬위의 얼굴은 신경도 쓰이지 않는지 진주는 찬위의 옆자리에 털썩 앉아 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찬위는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진주가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주의 주머니 속에 나온 것은 아주 뜻밖의 물건이었다. 학생 때부터 흡연을 시작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은 찬위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찬위도 마찬가지로 궁금증이 일어 해보고 싶다는 충동을 겪은 적이 있었으나 냄새를 잘 숨길 자신이 없어서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진주는 아무렇지 않게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저가 선생님께 달려가서 일러바쳐도 상관 태도였다. 들이키는 숨 따라 담배에 옮겨 붙은 불은 다시 내뱉어진 연기와 함께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익숙하게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진주의 얼굴은 어색하게 풀숲에 솟아있는 벤치와 다르게 자연스러웠다. 아니, 그 어색한 벤치와 예쁘게 동화되어 보이기까지 했다. 찬위는 저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진주 때문에 더욱이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너, 뭐야?”

“응?”

“여기서 매 번 이러고 있었어?”

“그랬다고 하면 선생님께 이를 거야?”     


입이 꾹 다물어졌다. 평소라면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당장 자리에 일어나서 담배를 빼앗아들고 가까운 교무실로 달려갔겠지. 저가 본 것을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벌 받는 친구와 대비되게 칭찬 받는 제 자신을 추겨 세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당장 저를 찾았다는 담임 선생님이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주에게 벌을 내리기 전에, 이렇게 방황하는 친구를 데려왔다고 찬위를 칭찬해주기 전에 과학실에 대해 물어보겠지. 선생님들 귀에 찬위의 이야기가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선생님들 귀에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크게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일이 꼬이다 못해 이렇게까지 커질 일이었나? 계속 그런 궁금증이 찬위의 머리를 때렸다. 많은 생각을 하고 차근차근 상황을 정리하는 찬위와 달리 진주는 크게 생각이 없어 보였다.

먼 산을 바라보듯 흐릿한 시선을 하고 제 손가락 사이에 들이킨 담배만 물었다 뱉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얘는 겁이 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저가 다 알고 있다는 사실로 제 입을 다물게 하려는 걸까? 찬위에게 진주는 아주 어려운 미로처럼 보였다. 나갈 길이 정확히 보이지 않고 계속 헤매게만 만드는 것 같았다.      


“너 나 협박하는 거야?”

“뭐?”

“네가 과학 선생님 봤다며. 그걸로 나한테 지금 보고 있는 거 얘기하지 말라고 겁 주는 거냐고.”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진주는 정말로 궁금하다는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찬위는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을 사람이 세상에 있었던가? 찬위가 아는 모든 인간은 제 실리가 가장 중요했다. 자기를 위해 협박하는 것쯤은 망설임 없이 하는 존재가 인간이라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앞에서 당당하게 흡연을 하는 진주의 모습은 서로에게 입을 막을 것을 던져주는 행위 같았다. 나도 네 비밀을 아니, 너도 내 비밀을 알려줄게. 서로 입을 닫자. 이런 걸까? 그러기엔 아침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찬위에게 진실을 밝히게 만들 것 같은 모양이었다. 오히려 제 약점을 붙잡고 흔들었지, 자신의 약점을 되려 보여줄 것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찬위는 진심으로 진주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해괴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찬위의 얼굴을 본 진주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 진짜 이상하다.”

“…….”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____ 장미 therosenove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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