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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해 Aug 03. 2024

덜덜 거리던 네 어깨가 보고싶어

지난날이 그리울  때가 있다 

     

나는 후두둑 거리는 빗소리를 듣기위해 남편에게 차를 세워 달라 한다. 남편은 새로 뽑은 지 얼마 안 된 차가 벌써 비를 맞는 건 안타깝지만 아내에게 빗소리 감상을 가능케 하는 자신의 능력이 더 만족스럽다.      

옆모습에 보이는 그의 자신 넘치는 표정을 보며 손을 들어 그의 뺨을 쓰다듬는다. 그리고 손끝은 그의 턱선을 따라 내려와 가슴을 훑는다. 그는 그제야 흠칫 놀란다.      


“왜이래, 변태”

“권리행사야 뭘 놀래, 의무를 다하라고”    

 

그는 피식 웃는다. 나는 소리 내어 웃으면서도 지난날이 그리울 때가 있다.      


이 사람과의 첫 키스 장소는 차 안이다. 자정을 막 넘긴 새벽 밤 조용하고 후미진 곳에 주차된 차안의 공기는 개미 발자국 소리도 들릴 만큼 긴장되어 있었다. 시선은 차 밖 허공에 던져져있지만 몸은 나도 모르게 그에게로 기울고 있었다. 나의 몸을 받는 그의 어깨가 너무 떨어 순간 다시 몸을 세울까도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내 손은 그의 손 아래로 파고들었고 그는 내 손을 부드럽게 쥐었다. 나는 허공에 던진 시선을 거두어 고개를 그에게로 돌렸다. 내 움직임에 확신한 듯 그제야 나의 리드를 빼앗아 기세를 역전시켰다. 이제 나의 할 일은 눈감기.   

   

타임슬립 한 거 마냥 당시를 떠올리기만 해도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가 대학 연구실 연구비로 렌트한 하얀색 소나타 안에서 벌어진 우리의 추억은 생생하고도 찌릿하다.   

   

“덜덜거리던 네 어깨가 보고 싶어”

“또 뭔 소리야”   

  

그러게 나 무슨 소리 하는 거니. 연애 때 그가 소나타를 몰고 온 날이 한 번 더 있었다. 그가 보고 싶었다. 그는 학회일정을 마치고 저녁 늦게 부랴부랴 날 찾아왔다. 식사시간은 이미 훌쩍 넘었고 카페도 문을 닫기 시작했다. 한 잔이 주량인 나와 운전으로 한 잔도 못 마실 그를 반겨줄 술집도 없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과 새우깡 한 봉지 사서 동네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았다.   

   

기분이 좋아선지 한 캔의 맥주가 쭉쭉 들어갔다. 그는 돈 없던 대학생 시절 친구와 놀이터에서 새우깡 한 봉지를 안주 삼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르고 어눌했던 그의 대학생 때 모습을 상상하며 지금도 가끔 난 새우깡을 사곤 한다.) 나는 그의 이야기면 뭐든 좋다. 그가 친구와 마시던 미끄럼틀 위는 아니지만 그때의 그와 마주 한 듯  혼자 짠~ 하며 쭉쭉 마셨다.   

   

눈이 가늘게 풀리고 있는데 빗방울이 새우깡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영화처럼 아니 영화였다. 남은 새우깡과 거의 비워진 맥주 캔을 들고 뛰었다. 젊은 사랑을 질투하듯 하늘은 도망치는 우리에게 기관총 쏘듯 비를 퍼부었다. 빗발치는 비를 맞으며 소나타 안으로 몸을 피했다. 이미 젖을 만큼 젖었고 취기가 돌면서 몸이 오들거렸다. 술을 분해하지 못하는 몸뚱이는 열을 빼앗기며 점차 이가 부딪힐 정도로 한기가 들었고 눈이 감겼다. 그는 운전하다 몇 번이고 차를 세우고 차 밖으로 들락날락거렸다. 그가 무얼 하는지 알길 없었고 알아 낼 힘도 없었다. 내 몸 추스르기도 어려웠다. 눈이 자꾸 감겼다. 내 술 버릇이라면 버릇이다.    

  

춥고 졸리고 토하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는 편의점만 보이면 차를 세워 살만한 담요를 찾았다고 했다. 너무 오들 거리는 날 위해 말이다. 심지어 지나다 찜질방이 보이기에 무작정 들어가 점원에게 담요를 팔라고 생떼를 썼다고 했다. 물론 통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신 나간 놈인가 싶었을 거다.   

   

결국 그의 선택은 근처 모텔이었다. 음 나를 업고 들어간 건 아니니까 솔직히는 우리의 선택이라고 하자. 모텔 방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한 짓은 토였다. 춥고 졸리더니 토가 쏠렸다. 맥주 한 캔에 별짓을 다하는 스스로가 내가 생각해도 기가 찼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변기까지 가지 못하고 욕실 바닥에 와장창 쏟아냈다. 이 역시 어쩔 수 없었다.      

토를 마치고 그의 부축을 받으며 침대에 누웠다. 그는 한껏 이불을 끌어다 덮어 주었다. 나는 잠시 눈을 붙였다. 얼마간 쉬고 나니 한기가 가라앉았고 불타던 얼굴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그는 침대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불편 할 텐데’     

 

그는 젖은 청바지 그대로 앉아있었다. 불편 할 텐데 시작은 순수했다. 나는 그에게 옆에 와 누워도 된다고 했다. 정말? 그는 이렇게 딱 한 번 묻고 곁으로 다가왔다. 정말 아무 짓도 안하면서.      

반듯이 누워 있는 그를 바라보다 손을 들어 검지로 볼을 살짝 눌렀다가 입술을 어루만졌다. 그는 나처럼 모로 누웠다. 또 나처럼 손을 들어 내 볼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첫 키스 보다 강렬한 추억을 쌓았다.  


         

남편은 새로 산 차의 와이퍼를 켰다 껏다 하고 있다. 창을 닦아낼 때 마다 북북 거리는 소리가 빗방울이 차 지붕에 떨어지는 낭만의 소리를 방해한다.  

    

“시끄러운데 와이퍼 좀 꺼줘”

“안가?”

“조금만 더”   

  

지루한 듯 몸을 꼬며 그가 음악을 튼다. 플레이리스트에 들어있는 곡들이 랜덤으로 마구 흘러나온다. 박효신 2집을 듣고 싶다고 하려다 만다. 소나타에서처럼 그에게 몸을 기울인다. 


“왜이래 밖에서”     

여기 안인데...     


다른 차들이 가끔 앞을 지나갈 때 마다 그의 표정에 짜증이 올라온다. 바닥에 고인 흙탕물이 차에 튈 땐 안절부절 입을 움찔거린다.   

   

에이C. 


차안에 긴장이 돈다. 소나타와는 확연히 다른 긴장감이다. 나는 그를 보고 그는 전방을 주시한다. 내 손은 그의 손을 파고들고 그는 내 손을 들어 내 허벅지에 놓아준다.      


“갈까?”    기다린 듯 시동을 건다.     

 

네 어깨가 덜덜거리던 지난날이 그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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