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나는 사막이었다
아라비아 로렌스에 나오는 끝없는 모래 언덕처럼
딸아, 나는 바람이었다
태벽 준령을 넘어 동해로 가는 길목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살았다
딸아, 나는 망망대해 살았던 돌고래였다
딸아, 딸아 나는 무심초였다
나 혼자 무심히 살아온 이방인이었으니
나는, 나는 역참에 역마 같은 사람이었으니
딸아, 이제는 뒤돌아보지 마렴
지나간 세월은 무참해서 차마 네게 전하고 싶지가 않구나
너에게 나는 없는 사람
흔적도 없는 발자국이란다
그러니 무심히 살거라
나는 이미 없는 사람이었거니
딸아, 나는 왜 이렇게 살았을까 묻고 싶구나
그런데 너는 말이 없다
그래 너는 나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으니
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건 알아다오
평생 너를 그리워하다 간다는 걸
딸아, 사랑은 증오와 미움의 결정체 란다
용서는 결코 사랑이 아니지
그러니 사랑하기 위해 용서하면 안 된단다
우리의 業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니
이승의 緣은 불허하기로 하자
딸아,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만난 적도 없는 이별이다
이렇게 우리는 만나지도 못하고 사라지고 마는구나
딸아, 부디 나를 원망해 다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