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간 여 행 자

by 시인 화가 김낙필


나를 깊이 알아본 적이 있는가
내가 나를,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주관적인 나와 객관적인 내가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 본 적이 있는가
나 자신을 내가 잘 모를 수도 있으리라는 상상을 해 봤는가
내가 나를 얼마큼 잘 알고 있는지
점검을 해 보라
내가 타인의 나일 뿐이었다면
나 자신의 나는 여태 숨어있었다
나는 없고, 타인의 나만 있는 것이 삶이다
얼마나 껍데기 生을 살았는지
반성하라
내가 누구인지 곰곰이 자문하라
그리고 진정한 나로 살아가도록
애쓰라

죽어가는 화초를 살리는 사람이 있고
멀쩡한 화초도 죽이는 인간이 있다
생생했던 동물을 죽이는 자가 있고
병들어 죽어가는 동물도 살려내는 사람이 있다
이걸 보고 인간의 본성과
사람 됨됨이를 구분할 수 있다
인연이라고 다 좋은 인연은 아니다
나를 해치는 인연도 인연은 인연이다
나는 죽이는 사람 인가 살리는 인간인가

몸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
함부로 굴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용 연한이 다 되어서
여기저기 힘이 달린다
걷기도 열심히 하고
자전거도 타고
둘레길도 걷지만 세월을 비껴 가지는 못 한다
옛날 같으면 다 쓴 물건인데
세상이 좋아져서 덤으로 사는 인생이다
생산재가 아닌 소비재가 되어버린 몸뚱이가 안타깝다
언제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을까
정신은 언제까지 말짱할까
나도 내가 걱정이다

나는 평생을 사랑하며 살았다
어릴 적부터 노땅이 될 때까지 한시도 사랑을 놓아 본 적이 없다
대상이 실존의 인물일 때도 있었고 상상 속의 존재일 때도 있었지만
늘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왔다
사랑은 세상을 아름답게 했고
사랑하는 동안은 신이 나고 즐거워서 삶의 원동력이 되었고 활력소가 됐다
어느 가수의 노래 제목처럼 나의 삶은 사랑밖엔 난 몰랐다
사랑 없인 하루도 살 수 없어서 끊임없이 노력하며 질기게 사랑을 붙잡았다
그렇게 해서 내가 사랑한 사람이 열서넛은 족히 넘는 듯싶다
나는 시인이다
20년 동안 발표한 삼천 여편의 창작시 중에 사랑과 그리움을 주제로 한 詩들이 절반을 훌쩍 넘을 것이다
이렇듯 작품 활동이나 일상생활 속에서도 늘 사랑 타령을 하며 살았다
사랑은 정말 위대해서
지금도 18세 순이와 사랑에 빠져 살고 있다
이렇듯 평생을 사랑하며 살고 있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고 했는가
성경에서도 인생은 나그네라고 말하였습니다
인생이 왜 나그네일까요
잠시 왔다가 스쳐가는 그런 길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인생이 길고 험한 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루하고 험한 고해의 길 일수도 있고 장밋빛처럼 화려한 길일 수도 있지만
고통과 즐거움 그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가고 말지요
인생도 어느 시공 한쪽에서 잠깐 지나가는 티끌 같은 바람일지도 모릅니다
너무 팍팍하게 긴장하지 말고 순응하고 받아들이며 바람처럼 살다가는 것이 현명한 삶일지도 모릅니다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하면서 인생을 즐기며 사시길 바랍니다

이별이 없으면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울까
삼십 년을 같이 살았네
오십 년을 해로했네
대놓고 자랑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세상에 혼자 와서 한날한시에 둘이 갈 일은 절대 없는 게고
헤어져서 따로따로 가는 길인데
"그동안 무던히 잘 참고 살았어" 인사하고 쿨하게 갈라서는 일이다
서로의 의무가 있어서 오랫동안 동거했지만 싫고 귀찮아지면 훌훌 털고 떠날 일이다
개 닭 보듯 소 개 보듯 살아봐야
남는 건 무참한 관계뿐이니
홀가분하게 한번 따로 살아볼 일이다
그 참에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탈탈 털어버리고 미련 없이 홀가분하고 떠나갈 일이다
자, 한 시절 잘 보냈으니
우리 이쯤에서 찢어 집시다ᆢ
나를 나답게 하는 일, 이런
생각뿐이다

나는 지고지순한 사랑 따윈 믿지 않는다
사랑은 늘 변하고 옮겨 다니는 거니까
이 사람에서 저 사람에게로
저 사람에게서 또 다른 사람에게로
그렇게 유행병처럼 옮겨 다니는 거니까
어떻게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고 살 수 있겠어
좋은 사람이 얼마나 많고 넘쳐나는데
인연이 안 닿아 만나지 못할 뿐이다
그 인연은 언젠가 오기 마련이니까
한 사람만 평생 사랑하며 살 수는 없다
이효리가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것 같아 늘 불안하다고
더 좋은 사람이 생기면 바로 옮겨갈 것 같다고
바람 날 것 같아서 불안하다고
그땐 어찌 될지 자신도 장담할 수 없다고
얼마나 솔직하고 화통한 고백인가
일부종사가 미덕인 나라에서 열녀문에 목매는 불쌍한 인간들,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해보고 죽은 자가 부지기 수일 텐데
불륜이 천벌 받을 죄라고 울부짖는 우리는 아직도 조선시대 사대부 그늘 밑에 살고 있다
불륜도 엄연한 사랑이다
오히려 규범을 팽개치고 감정에 충실한 절실한 사랑이 아니더냐
사랑에 무슨 조건이 있다는 것이냐
남의 눈치 보지 말고,
꼴리는 대로 맘껏 사랑하다 죽자
떳떳하게, 졸지 말고 감정에 충실한 사랑, 맘껏 하다 죽자
한 번뿐인 인생
일부종사 때려치우고
원하는 대로 물 흐르듯 사랑하다 가자

사랑은 결국 이별이 있어 완성되는 거다
추억이 생기고
못 잊을 기억으로 남고
그렇게 애틋하고 미련이 남아서 아름다운 거다
사랑해서 함께 살다 보면
그 사랑보다 더 현실적인 파랑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깨지고, 상처 받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사랑의 감정은 숯 검 덩이처럼 검게 타버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사랑의 완성은 이별이다
영원한 사랑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영원한 사랑은 허위이고 사치이고 연극일 뿐이다
남는 것은 구차스러운 동정과 연민뿐이다
사랑은 유치하고 경박하다
반면 이별은 존엄하고 경이롭다
사랑은 비겁하고 유치한 것이고
이별만이 진실이고 빛나는 별이고 아름다운 꽃이다
뼈마디에 바람 드는 나이쯤 되면
이 모든 걸 깨닫게 된다
이별이 얼마나 대단한 업적이고 소중한 행적인지를ᆢ
사랑의 끝은 그러하다

잠에 들지 못한다
나 때문에 밤이 깊어가서 새벽을 부른다
흔들리는 뱃전 인가
천정에 맴도는 적도의 끝쯤
원주민도 없는 밀림 복판에서
발가벗고 있는 나를 본다
하지만 나의 끝은 어딘지 모른다
살다 살다 삶이 길다 싶으면
그땐 죽어야지
잠 못 드는 밤
모진 말들만 되풀이하며 누운 풀처럼 곤죽이 된다
어디로 가야 하나
잊어버리라고 너는 노래한다
짐이 되지 말라고 나는 잔인한 짐꾼이 되기로 한다
먼 바람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필경은 이 밤의 울음소리 일터
밤이 새도록 詩를 쓴다
그리고 새벽에 보리 누룽지를 끓이고, 불어 터지게 놔두고,
깊은 잠을 자련다
나는 새벽에 글을 쓴다
가장 영혼이 맑을 때니까
잠든 사람들아 깨지 마라
어디선가 만날 수 있도록
그 언제라도
내가 미우면 오지 마라
寅時에 깨어 있는 사람들만
내게 오라
함께 詩를 쓰자

대부분 먼 데서 온 것들이 강건한 뿌리를 내린다
오갈 데 없는 것들은 작심하고 목숨을 거는 것이다
본토박이들이 발등을 찍히고 뒤편으로 물러설 즈음
먼데 것들은 비로소 네활개를 펴는 것이다
애환의 봉천동을 오른다
돼지곱창 한 접시에 막소주 한잔 놓고 불콰해진 얼굴로 침을 튀기며 세상을 향해 삿대질을 했던 사람들은 소풍 마치고 다 갔다
송현동 산동네를 아침저녁으로 오르내리던 김氏는 쌀 봉지와
엮인 꽁치 네댓 마리를 들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 비탈길을 다녔다
연탄을 신작로에서 언덕배기까지 안아 나르던 구공탄 아궁이 시절
밴댕이도 굽고, 갈치도 굽고, 고등어도 굽고, 양은솥 밭도 끓이고
목깐 물도 끓이고, 콩나물국도 끓이고, 새우젓국도 끓여먹던 연탄아궁이가 그립다
다 먼 데서 와서 모여 살던 그곳은 고향이다
본토박이들은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지고
타향에서 온 배고픈 것들끼리 모여 오순도순 살던 언덕배기 산 동네
어른들은 모두 떠나가고 애들이 다 늙어 백발이 되었다
먼 데서 온 것들이 성공해서 강남에서도 살고 잠실에서도 살고
송도에서도 살고ᆢ
경일이네ᆢ순자네ᆢ재환이네ᆢ옥희네ᆢ덕승이네ᆢ진호네ᆢ금순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들 살고 있을까
그때 보던 밤하늘에 북두칠성이 그리워지는 오늘

TV 방송에 "살림하는 남자들"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여자들이 바쁘다 보니 남자들이 살림 살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모계사회의 도래는 남성들의 권위를 무너트렸고 부권 사회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살림 살 이한지 어언 20년이 지났다
해보니 일상이 돼서 불편하거나 괴롭다거나 하지 않다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고 남성이 전업주부로 들어서는 경우도 흔치 않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원칙이 바뀌고 새로운 원칙이 생겨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내의 맛"이라는 프로도 있다
도저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제목이 기가 막혔다
피디의 의도가 참으로 저렴하고 저급했다
그리고 살림하는 남자들이 그곳에도 출현한다
꼰대라 그런지 왠지 씁쓸해진다
고추 떨어진다고 부엌에는 얼씬도 말라던 할머니, 어머니 시대는 먼 나라 하늘에 계시다
남자의 위세는 땅바닥, 여자의 위상은 하늘 꼭대기로 치솟고
앞치마 두르고 설거지하는 뒷모습이 오늘의 내 모습이다
늘 주방에 살다 보니 칼질도 능수능란하고 음식 맛도 제법 낼 줄 알게 됐다
검색만 하면 쏟아져 나오는 각종 레시피가 살림살이하는데 완벽하고 충분하다
살림살이하는 남자여
살아남으려니 어쩔 수 없다
엘비스도 가고, 마이클도 가고, 이소룡도 가고
가끔은 허탈해도 끝까지 살아남아라

이제부턴 아무 계획도 없이 그렇게 살기로 한다
이젠 그리워 않기로 했다
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미운 사람, 정든 사람, 그리운 사람,
용서 못할 사람, 그런 것도 없다
연인에서 적으로 원수로 살 일도 없다
다 보내기로 한다
기다리는 일도 없기로 한다
남는 건 늘 혼자일 뿐
미안해할 일도 없다
나는 시간의 여행자
누굴 다시 만날 일도 없다
사랑하는 일이 갚지 못할 죄 인 줄을 알고 난 후에
세상에 태어난 죄처럼 속죄한다
홀로 가는 길
이별은 늘 먼저 오는 것
눈물바다를 건너 너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망망한

시간의 저편
잠들면 낮은 빗소리
찰방거리는 파문의 시간 그 건반 위로 슬픈 세레나데
어깨 위로 나부끼는 시간의 편린
그 비늘들의 울음을 듣네
뒤척이는 내 영혼의 발걸음은 해저문 언덕 위 십자가에 맴도네
아무 생각도 없이 어디론가 떠돌며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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