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자 리

by 시인 화가 김낙필




먹구름이 몰려온다

비 구름이다

창밖으로 비바람도 분다

불을 안 켜고 어두운 채로 앉아있다

청 단풍나무 끝이 바람결에 흔들린다

나는 끄떡도 없이 앉아있다


고무나무가 아프다

자리를 창가 쪽으로 옮겼더니

신열을 앓는다

잎이 떨어진다

있던 곳이 이리 소중했던가

나는 그 자리가 없었던가

손 발이 다 떨어졌는데


빨래를 걷는다

곧 쏟아질 비를 맞을 차비를 한다

모래면 立秋

어젯밤은 선풍기 없이도 잤다

새벽녘엔 홑이불도 찾아 덮었다

한 계절도 임무를 다 한 것 같다

무상하다


비가 쏟아진다

한 마리 급히 높은 지붕 위로 날아간다

내 마음까지 급해진다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한 여름도 별수 없이 기운을 꺾는다

그래, 만물이 모두 그런 거다


떠나는 계절

삶도 계절처럼 흘러가고

식은 찻잔을 레인지에 다시 뎁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