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줄거리와 법률 쟁점
(이어서)
1. 영화 줄거리와 리뷰
이렇게 로비와 세실리아가 결국 사랑을 이루는 것으로 결말이 끝났다면 영화와 원작이 이렇게까지 평이 높지 않았을 것이다.
즉, 로비와 세실리아의 재회는 브라이오니가 만든 허구였다. 브라이오니는 소설가가 되었고 여든이 넘어서 자신의 21번째 소설을 발간하는데, 세실리아와 로비, 브라이오니의 실명이 그대로 나오는 자전적 소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결말은 모두 허구였고, 현실에서 로비는 1940년 6월 퇴각을 하루 앞두고 브레이 듄스에서 패혈증으로 사망했고, 같은 해 9월 세실리아는 런던 남부의 밸엄 역에 가해진 폭격으로 수도관이 망가지면서 역에 숨어있던 세실리아는 익사했다. 두 사람은 결국 생전에 재회하지 못한 것이다. 브라이오니가 결말을 현실과 달리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사랑을 이루었다는 내용으로 허구로 만든 이유는, ‘현실처럼 결말을 내면 독자들에게 너무 가혹한 결말이다, 독자들한테 만족이나 희망을 줄 수 있겠느냐, 그래서 현실에서는 로비와 세실리아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를 자신이 빼앗았지만 책에서는 그들이 삶에서 잃은 것을 주고 싶었다,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친절이다, 나는 그들에게 행복을 선사한 것이다 ‘라고 책 발간 기념 방송 인터뷰에서 말한다. 영화는 로비와 세실리아가 두 사람이 약속한 대로 즐겁게 재회하여 바닷가를 거닐다가 함께 별장으로 들어가는 상상씬으로 끝난다.
(이어서)
2. 법률 쟁점
가. 비극의 시작이 편지 읽기였다면 비극의 절정은 로비가 강간범이라는 허위 진술을 한 행위다.
브라이오니가 로비가 강간범이라고 진술한 행위는 무고죄에 해당할까. 무고죄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여기서 허위 사실이란,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것을 의미하고, 자신의 기억에 반하는지 여부는 영향이 없다. 즉 자신의 기억에 반하는 진술을 했어도 그것이 객관적 진실에 부합하는 진술이라면 무고는 아닌 것이다.
브라이오니는 로라를 강간한 자가 폴 마샬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상상력과 오해를 확신하고 로비가 강간범이라고 진술했는데 이는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것은 물론 브라이오니의 주관적 기억에도 반하기 때문에 허위의 사실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브라이오니의 진술에 의해 강간범으로 처벌될 수 있고, 무고죄의 범의는 반드시 확정적 고의임을 요하지 않고 미필적 고의로도 족하다. 판례는 ‘무고죄는 신고자가 진실하다는 확신 없는 사실을 신고함으로써 성립하고 그 신고사실이 허위라는 것을 확신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브라이오이는 로라를 강간한 자가 로비라고 확신에 차서 말하기 때문에 무고죄의 범의도 충족이 된다.
문제는 무고죄가 되려면 허위사실을 ‘신고’ 해야 하는데, 브라이오니가 자진해서 신고를 한 것인지 여부가 애매하다. 영화에서도 강간 사건이 발생하자 수사관들이 집에 오고 브라이오니는 수사관 앞에서 진술을 한다.
나. 그러나 무고죄는 자진하여 사실을 고지하는 것인데, 수사기관의 신문에 대하여 허위의 진술을 하는 것은 신고에 해당하지 않는다. 신고는 주로 고소장이나 고발장을 제출하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영화에서 브라이오니는 로비를 강간범으로 고발했다기보다는 사건이 발생하자 집에 찾아온 수사관 앞에서 단순히 진술을 한 것에 불과하므로 허위사실 ‘신고’라고 볼 수 없어 무고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한편, 만약 브라이오니한테 무고죄가 성립한다고 해도, 브라이오니는 당시 13세였기 때문에 형사미성년자에 해당하여 처벌받지 않는다.
다. 여기서 의문은, 로라는 강간범의 피해자인데 그녀는 로비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왜 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영화에서 로라는 자신은 범인이 누군지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장면에서는 로라의 말이 진실인 것 같기도 한데, 나중에 로라는 자신을 강간한 폴 마샬과 결혼을 하고 두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한 브라이오니를 본 로라는 불편한 듯 시선을 외면한다. 그렇다면 로라는 자신을 강간한 자가 폴 마샬임을 알면서도 브라이오니가 로비가 범인이라고 확신을 보이자 어떤 이유에서든 이에 동조해서 거짓 진술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만약 로라가 폴 마샬이 강간범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로비가 강간범이라고 진술했다면 이것은 죄가 될까?
범인도피죄는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자를 은닉 또는 도피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범죄이다. 여기서 ‘도피하게 하는 행위’는 은닉 이외의 방법으로 범인에 대한 수사, 재판 및 형의 집행 등 형사사법의 적용을 곤란 또는 불가능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로써 그 수단과 방법에는 제한이 없다. 범인도피죄가 문제 되는 사건을 보면, 참고인이 수사기관에서 범인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진술하는 행위가 본 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많이 문제 된다. 그러나 판례는 참고인이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을 기만하여 착오에 빠지게 함으로써 범인의 발견 또는 체포를 곤란 내지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것이 아니라면 단순히 알고 있는 사실을 묵비하거나 허위로 진술한 것만으로는 범인도피죄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로라는 피해자로서 참고인에 해당하는데, 적극적으로 폴 마샬이 용의 선상에 오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로비가 강간범이라고 허위로 진술을 하는 정도였다면 범인도피죄가 되지는 않는다.
3. 영화 리뷰
가. 이 영화에 대한 많은 후기에서 말하듯, 브라이오니가 말년에 혈관성 치매에 걸려 곧 기억에 잃게 된 상황에서 소설을 쓴 행위가, 그것도 결말을 허구로 쓴 것이 과연 진정한 속죄에 해당하느냐 이런 생각이 든다. 처음에, 속죄란 말의 의미에 대해서 그 대가를 치렀다는 것을 누가 인정해주는지에 대하여 이 영화는 대답을 주지 않는다. 로비와 세실리아는 젊은 시절에 사망했기 때문에 브라이오니가 속죄의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더더욱 알지 못한다. 브라이오니의 속죄가 진심이었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두지만, 내가 브라이오니의 입장이라고 생각해본다면, 평생을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을 것 같다. 그녀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세실리아의 발자취를 따라 간호사가 되어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들을 돌보는 삶을 선택한 것도 속죄의 노력으로 보인다.
나. 어린 시절에 브라이오니는 강간범의 얼굴을 보았음에도 왜 로비라고 허위 진술을 했을까. 그 심리가 그 나이대 어린 소녀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이유에서든 잘못된 확신을 가진 후에, 객관적 진실이 밝혀진 후에도 잘못을 인정하기 싫은,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에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을 불러오거나 내 예상을 전혀 벗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던 일은 생각보다 많이 발생한다. 기억 저편에 묻어둔 일을 꺼내 그때 나는 잘못한 게 없는지 생각해보게 만든 영화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