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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Sep 10. 2019

33살 말고 87년생입니다.

숫자놀음은 이제 그만

언젠가부터 나이 대신 태어난 년도로 말하는 게 편해졌다. 스물일곱 정도까지는 연도보다 나이를 먼저 말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몇 살 대신 몇 년도생으로 대답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아마도 나이를 잊고 살아서일 거다.


나이를 잊고 산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나의 경우 의미가 없어져서였다. 한 살 한 살 먹는 게 큰 의미가 없어서 내 나이가 몇 살인지 생각하지 않게 된 경우였다. 스물아홉 살에서 서른이 되었을 때도, 서른에서 서른한 살이 되었을 때도. 나는 큰 변화가 없었다. 굳이 꼽자면 회사를 관뒀다가 다시 들어가고, 또 계약이 끝나서 관뒀다가 또 새로운 일을 구하고의 연속이었다.


중간중간 해외여행도 다니고, 연애도 하고, 독서모임도 하고, 운동도 하는 등등 자잘한 변화는 있었지만 나의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는 방법은 동일했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에서 나의 밥벌이를 해결했다. 그랬기에 내게 있어 스물아홉과 서른, 서른과 서른 하나는 그 날이 그날이었다. 아마 그래서였던 것 같다. 내가 나이를 잊고 살게 된 것은.

20대 땐 30대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20대인 지금은 내가 나이도 어리고, 인생 경험도 부족해서 이렇게 헤매고 있지만 30대가 되면 지금보다 정신적으로 더 성숙하고, 물질적으로도 안정감 있는 생활을 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뚜렷한 근거는 없었다. 그저 지금보다 5~6년은 더 지나있으면 뭐라도 되어 있겠지.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실제로 5~6년의 시간이 흘렀고, 동경하던 30대가 되고도 훌쩍 넘었지만 나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불안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헤매고 있다. 내 나이가 벌써 33살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혼란스러움과 방황이다.


나이는 먹을 만큼 먹은 것 같은데 왜 나는 제자리인 걸까. 아니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나보다 몇 살이나 더 어린 사람이 유명 쇼핑몰의 CEO가 되고, 재치 있는 그림실력으로 카카오톡의 이모티콘 제작자가 되어 몇 억대의 자산가가 되는 마당에 서른 하고도 세 살이나 더 먹은 나는 왜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거라도 해볼까? 싶은 것은 찾았다는 것이다.


33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에게 가장 큰 희열과 기쁨을 안겨준 것이 있다면 바로 글쓰기였다. 글을 통해 내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에게 공감받는 일은 생각보다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때문에 일단 시작은 했지만 역시 마음 한편은 불안하다.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몇 프로나 될까? 네이버 블로그가 아닌 유튜브나 인스타와 같은 영상매체가 뜨고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단지 글 쓰는 걸로만 밥벌이를 하고 싶다는 건 시대착오적인 생각이 아닐까? 그런 삶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가 되려면 또 얼마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내 나이가 벌써 서른셋인데. 괜히 시간낭비만 하는 거 아닐까?


예전엔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몰라 방황했다면 요즘은 반대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불안해졌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나를 가장 불안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는 내 나이다. 서른 하고도 삼 년을 더 산 이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도한다는 건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느는 건 겁이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두렵다. 어쩔 수 없었지 뭐 하며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대로 주저앉아버릴까.


나이가 많아진다는 건 기회를 잃는 거라고 생각한다. 인생에 있어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것이다. 스물다섯의 실패와 서른다섯의 실패는 같지 않은 것처럼 서른셋의 실패와 마흔넷의 실패도 같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실패가 두렵지만 어디까지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일 뿐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두려움으로 오늘 이 순간을 저당 잡혀 살고 싶지 않다. 미래란 결국 현재의 시간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오늘 이 순간을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고민만 하다가 아무것도 안 한 채 그대로 흘려버리고 싶진 않다.


실패로 인한 절망보다 안 해서 하는 후회가 더 가슴에 맺힌다. 내가 지금보다 3~4살이 더 어렸다면 29살~30살이다. 33살보다 29살이 결코 늦었다고 할 수 없는데. 뭐가 그렇게 겁난다고 고민만 하다 안 한 걸까. 이렇게 후회해봤자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행동하지 않은 것으로 인한 후회는 평생 남는다. 33년의 인생을 살면서 체득한 진리다.


앞으로도 나는 내 나이를 잊고 살려고 한다. 역시나 의미가 없어서다. 현재 시간으로 따지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33년째 살고 있다는 것뿐이지 33년 동안만 의미 있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나이는 우유나 빵처럼 몇 년도 몇 월 며칠까지만 유통 가능하다는 표식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1987년도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부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걸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게 맞다. 서른셋이라는 숫자에 붙잡혀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만 하고 있을 시간에 글이나 한자 더 적어봐야겠다. 더 이상 숫자놀음은 그만하련다. 나의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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