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코붱 Sep 11. 2019

쓴소리와 잔소리의 차이

나 잘되라는 소리가 아프게 들려올 때

일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풀타임 일자리는커녕 알바 자리도 구해지지 않는 경단녀의 매일은 하루하루가 답답하고 괴롭다. 이럴 땐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어 진다. 나 이만큼 힘들다고 위로해달라고 투정도 부리고 생떼도 부리고 싶다. 그럴 때 듣고 싶은 말은 주로 정해져 있다. 대부분 그래그래, 너 많이 힘들었구나. 괜찮아. 언젠가 일은 구해지겠지. 같은 위로의 말을 기대하는데 간혹 따뜻한 위로가 아닌 그보다 더 큰 상처를 받게 되는 말을 들을 때가 종종 생긴다. 그런 말은 보통 이렇게 시작한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니까.”


나 잘되라는 소리는 왜 매번 아프기만 할까


내 경험에 비춰봤을 때 '나 잘되라고 하는 소리'의 대부분은 아프다. 힘들고 지쳐서 기대고 싶은 나의 어깨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대신 힘껏 붙잡고 앞뒤로 흔들며 소리친다. 약한 소리 하지 말라고. 내 힘듦과 아픔에 대한 공감과 위로 대신 본인의 잣대에 비추어 나를 재단하고 옳고 그름을 판가름 한 뒤 최종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내 앞에 나타난다.


이럴 땐 그 사람이 해주는 ‘나를 위한 말’이 정말로 나를 위한 말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된다. 남의 일이라고 너무 함부로 말하는 거 아냐? 괜히 부아가 치밀고 내가 왜 이런 말을 또 듣고 있어야 하는 건지 조금 억울해지기도 한다. 나를 위한 말이라며 상대방이 해주는 말은 사실 나도 알고 있는 내용일 때가 많다.


나도 다 아는데. 내 마음이 지금 그렇게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뿐인데. 지금 당장은 내가 너무 아파서 좀 기대고 싶은 것뿐이었는데. 이런 마음이 들면 그때부터 나를 위한다던 상대방의 말은 실종된다. 나에 대한 공감과 격려 대신 나의 나약함에 대한 비난과 힐책만이 부각되어 들려온다. 이때가 바로 나를 위하는 상대방의 쓴소리가 잔소리로 바뀌는 시점이다.



쓴소리와 잔소리는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나를 위하는 말’이라는 점에서 같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말을 듣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확연히 다른 말이 된다.


쓴소리는 듣기엔 편치 않고 거북함이 들지만 결국엔 듣는 사람도 스스로에게 필요한 조언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말이고, 듣는 것도 싫고, 내용도 공감이 안 되는 것은 잔소리라 할 수 있다. 결국, 쓴소리와 잔소리는 듣는 사람에 의해 정해진다. 정확히는 듣는 사람이 얼마큼 마음의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쓴소리와 잔소리가 정해진다고 할 수 있다. 나 역시 이러한 능력이 부족해서 친구를 더 크게 상처 입힌 적이 있었다.  


현재까지 20년 이상을 알고 지낸 친구가 중학생이었을 때, 어느 날 나에게 전화를 했었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확실한 건 당시의 내 친구는 지쳐있었고,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나는 거기에 조언을 해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네가 이런 건 잘못한 거라고. 그래서는 안됐다고. 서툰 훈수질을 하던 내게 친구는 울먹이며 소리쳤다. “아니야! 내가 바라는 건 그냥 공감해주는 것뿐이었어!!”


그때 처음 알았다. 나의 서툰 쓴소리가 도움은커녕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이후로 일단 들어주는 것을 우선시하고 있다. 나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를 지켜낼 힘이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아무리 힘들고 우울한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회복하게 된다. 시간이 적게 걸리느냐 많이 걸리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말에는 힘이 있다.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의 자존감을 뭉갤 수도 있고, 누군가의 힘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기를 꺾어놓을 수도 있다. 위로와 공감을 바라는 사람에겐 이러한 말의 힘을 버틸 힘이 부족하다. 나의 기를 꺾고 힘이 빠지게 하는 말들은 피하거나 버텨내야 하는데, 그럴 힘마저 없을 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에겐 그 어떤 조언도 조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나를 위한 쓴소리가 아닌 나를 상처 입히는 또 하나의 잔소리가 될 뿐이다. 때문에 상대방이 나를 위해 하는 쓴소리가 잔소리로 바뀌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치는 건 어떨까? 지금은 조언 대신 위로가 필요하다고. 이런 게 저런 게 잘못됐다는 지적질 말고 나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가 필요하다고 먼저 선언을 해버리는 거다.



나는 지금 너무 힘들고 너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없다고. 너의 조언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나의 아픔을 말하고 싶은 거니까 들어만 줄 수 없겠냐고. 그렇게 먼저 말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말이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되어 나를 상처 입힐 가능성은 많이 낮아진다.


나는 상처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자신의 마음이 이미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거기에 일부러 비수를 더 꽂을 필요는 없다. 내가 아프고 힘들 땐 미리 말해버리자. 나 이미 많이 아프고 힘드니까 네가 하려는 지금 그 말. 하지 말아 달라고. 누군가의 쓴소리가 잔소리로 바뀌기 전에 먼저 손을 올리자. 나를 정말로 위한다면 네가 하고 싶은 그 말. 그만 멈춰달라고.


 …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거라는 겁니다. 알아주실 거죠?

이전 07화 아니요, 괜찮지 않아요.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경단녀는 어쩌다 글을 쓰게 됐나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