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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Sep 12. 2019

힘들 땐 잠깐 쉬어가요

잠깐 숨좀 고르고 갈게요

인생을 살면서 매 순간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는 않다는 걸 몇 번의 경험으로 터득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풀리지 않는 모든 순간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고는 말 못 하겠다. 나는 여전히 인생의 역경에 풀이 죽고, 기가 꺾인다. 


나는 요즘 돈을 못 벌어서 우울하고, 나의 이 우울감을 발산시킬 수 있는 제대로 된 취미 하나 없는 것이 답답하다. 풀리지 않는 우울감은 차곡차곡 내 가슴에 쌓이고 가끔씩 타이밍 안 좋게 터져 나오기도 한다. 불쑥 짜증이 나고, 삼켜야 할 말이 제멋대로 튀어나온다.


이 안 좋은 타이밍의 희생자는 첫째는 나고 둘째는 내 남편이다.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존재들이 상처 받는 일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휴. 또다시 마음이 답답해졌다. 


눈 앞에 커다란 벽이 세워진 기분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앞을 보며 희망을 살피고 싶지만 내 몸보다 몇 배는 큰 벽이 내 시야를 차단하고 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회색빛 콘크리트의 두꺼운 벽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를 상대하고 있는 기분. 내 깜냥으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눈앞의 적을 어떻게 해치워야 할지 감이 안 온다. 


언젠가 읽은 책에서 신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역경을 준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시련이 주어진 건가? 이렇게 거대하고 막막한 역경은 아직 내 깜냥으론 무리인 것 같은데. 신은 나를 과대평가한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그동안 멋대로 살아온 것에 대한 골탕을 먹이고 싶은 걸 지도. 유신론자도 아니면서 이럴 때만 신의 존재를 믿는 내가 스스로도 좀 어이가 없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조금 억울할 수도 있다. 사실 인생이 내게 시비를 걸고 싸움을 하자고 달려든 적은 없다. 그저 흘러갔을 뿐. 일정하게 흐르는 일련의 시간 속에서 나의 인생길을 만들어 온 것은 오직 나였다. 크고 작은 나의 선택들이 하나씩 모여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내 인생이고, 앞으로 살아갈 날의 모습이다. 


왜 내 인생은 이따위인 거냐고 소리치고 화를 낸다면 그건 결국 그런 인생을 만들어온 나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것과 같다. 가뜩이나 마음처럼 안 되는 인생이 답답하고 힘든데 나까지 스스로를 학대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인생은 나를 쓰러트리기 위해 존재하는 투쟁 상대가 아니다. 오히려 든든한 아군이다. 언제 어느 때나 나의 선택을 지지해준다. 내가 뭘 선택하던 투정 부리지 않고 묵묵히 따른다. 그건 좀 아닌 것 같다고 토 달지도 않는다. 내가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으면 그러라고 한다. 얼른 일어나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의식하지 않아도 주변을 맴도는 공기처럼 그저 내 주위에 머물며 나를 기다려준다.

이렇게 보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커다란 벽도 사실 나를 방해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벽은 내 시야를 차단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내 위로 작렬하는 태양빛을 잠시 가려주는 그늘막이 되어주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한낮엔 체감온도가 40도까지 올라가는 일본의 여름에는 이런 그늘막이 엄청 요긴하다. 뙤약볕 아래를 걷다가 건물 사이로 생긴 그늘에 잠시 몸을 맡기며 한숨 돌리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한숨 돌리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땀으로 흥건한 이마를 수건으로 닦고, 갈증에 타는 목을 시원한 물로 달래며 다시 뙤약볕으로 나올 수 있는 힘을 만들기 위해 취하는 휴식의 시간. 남은 거리를 끝까지 가기 위해선 적절히 쉬어줘야 한다. 숨 넘어가기 직전까지 몰아세우다간 그대로 숨 넘어갈 수도 있다. 인생을 헤쳐가기에 숨이 턱에 다르고 힘이 부친다 생각할 땐 그저 주저앉아 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

 - 안젤라 데이비스

남편이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벽은 눕히면 다리가 된다.” 연애시절 한번 들었던 말인데 그동안 잊고 살았다. 힘들어하는 나에게 남편은 최근에 또다시 이 말을 들려주었다. 


언젠가 내가 체력을 회복하고 기운이 나면 양팔을 걷어붙이고 다시 힘껏 벽을 밀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가로막았던 벽이 결국엔 나를 위한 다리가 되어줄 그 날을 위해 오늘은 일단 힘을 비축해두자. 그렇게 살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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