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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Mar 30. 2016

한단지몽 一炊の夢(5)

〔글〕 코이케 마리코小池真理子 〔번역〕 소리와 글

한단지몽 一炊の夢(5)


노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아버지 대에서부터 그의 집은 -동경 오오타구(大田区)의 주택지에 있는- 소아과 병원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는 병원 근무의를 거쳐 병원을 물려받았다. 쇼와 30년 대*(1950년대)의 일이었다.


당시로서는 화려한 생활이었다.


취미는 휴일에 드라이브와 

친구들과 같이 골프장에 가는 것.


여자 친구도 많았고


차 보조석에 앉히는 여자가 늘 바뀌는 것으로 유명해서


근처에서는 플레이보이 의사선생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밤.


고열로 응급환자가 실려 왔다. 


6살인 남자아이였다.


아이의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곁에 있었다.


최근에 근처로 이사 왔다고 했다. 남편이 출장 중이라서 너무 불안하다고......

아이의 엄마는 파래진 얼굴로 떨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그는 달래고

남자아이를 진찰하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위로했다.


매력적인 여자였다.


불안해해도

울고 있어도

무엇을 하고 있어도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다.


며칠을,

그는 

그녀의 집까지 

왕진을 다녔다.


남자아이의 침대 앞에서

그녀가 주는 홍차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총명했고

감수성도 풍부한 여자였다.


그보다 한 살 아래였다.


이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태어났을 지도 모른다, 고 그는 생각했다.


이윽고 남자아이는 완쾌되었고 건강해졌지만


그의 가슴에 타오르는 사랑의 열만은 식지 않았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사랑했고

남편의 눈을 피해 밀회를 계속하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노인은 말했다. 담담한 어조였다.


그리고 빈 술잔에 

막 갖다 준 따뜻한 정종을 스스로 따랐다.


"어리석은 짓입니다. 너무 좋아지니 아무것도 안 보였죠. 그런데도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제겐 그녀가 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어째서?"라고 여자는 물었다."그렇게 서로 사랑하면서,,, 그 여자분은 그렇게 사라질 이유 같은 건 전혀 없었을 텐데...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있었을 텐데......"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녀 혼자서. 내게도 말 못 할 

깊은 아주 깊은... 

말로 할 수 없는 괴로움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건 분명 지옥에 떨어진 것 같은 괴로움이었을 거라고, 지금은 이해합니다만 

당시의 내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녀는 언젠가는 

남편과 헤어지고 

아이를 데리고 내 곁에 올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시간문제라고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오만했죠... 설마 내 앞에서 사라질 줄이야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정말 그랬겠군요,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말이에요."


잠시 지나 노인은 

묻지도 않았는데 중얼거렸다.


그리고 한 모금 술을 마시더니 고개를 들고는 정면에 있는 허공을 노려봤다. 


"자기 아이까지 버리고 자취를 감춘다고 하는 것은... 이건 말이죠... 보통일이 아니니까.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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