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앓는 노인은 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걸까?
'엄마 내 말 좀 들어봐, 엄마, 엄마, 엄마....내말 듣고 있는 거 맞지? 그렇지?'
아직 7살인 둘째에게 최근 변화가 있다면, '말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그 늘어난 말 중 절반은 '반복하는 말'.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자기 말을 '상대가 잘 듣고 있는지 확인하는 말'이라는 점이다.
아이들의 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3세를 지나 7세가 되면 단순히 혼자 단어의 뜻을 학습하는 수준을 넘어 관계 내에서 언어를 발달시킨다. 하지만 관계에서의 언어는 참 어렵다. 같은 단어임에도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뉘앙스도 달라지고, 뜻도 달라진다. 문제는 이를 감당할만큼 아들의 뇌 발달이 아직 더디다는 점이다.
상대방에게 내 기분이 어떤지, 내가 원하는게 뭔지 정확히 알리고 싶지만,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언어의 한계로 인해 마음만 앞서다 보니 결국 엄마 아빠에게 끊임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치매를 앓는 노인들에게도 나타난다. 사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현상은 치매 전단계에서 초기 치매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이며, 가족들이 가장 고통을 호소하는 증상이다. 보통은 치매 진단 후 2년 이내 잘 나타난다고 하는데, 실제 임상에서 보면 치매 전단계부터 흔히 나타난다. 몇몇 연구 결과를 보면 도네페질과 같은 항치매약이 치매 노인의 반복되는 말을 줄일 수 있다고 보고했지만, 안타깝게도 실제 임상에서의 효과는 제한적이다.
1. 말을 반복하는 것(verbal repetition)은 뇌의 인지기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치매 노인의 뇌에서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급격히' 나타난다.
(1) 현재의 시간, 장소, 앞으로 다가올 사건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다 (memory impairment), (2) 편도체를 포함한 변연계의 손상으로 자신의 건강이나 현재, 앞으로 벌어질 일에 과도한 불안, 초조, 걱정을 느낀다 (agitation & severe emotional disturbance), (3) 대화 주제가 바뀔 때마다 집중력을 전환시키는 능력을 잃는다 (inability to shift attention), (4) 전두엽의 실해 기능 저하로 한 생각이 다른 생각을 자연스럽게 수반하는 연속된 사고의 흐름이 끊어진다 (impairment in sequencing), (5) 보속증(Verbal perseveration)과 같은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난다. 이런 복합적인 뇌의 퇴화가 '말의 반복'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최근 내 부모나 배우자의 치매를 걱정하여 병원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걱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는 합리적인 의심이며, 치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또는 급격히 악화되는 병의 치료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중요한 싸인이다.
반복하는 말은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다.
(1) 질문을 반복하는 것 (Repetitive questioning)
(2) 나눴던 대화나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 정보를 반복하는 것 (Repetitive stories/information)
(3) 같은 '문구/단어'를 반복하는 것 (보속증: Verbal perseveration)
이 중에서도 90% 이상이 (1) 질문을 반복하는 유형이다.
그 중에서 반복되는 질문의 내용은
(1) 앞으로 다가올 약속이나 일정을 반복 질문
(2) 현재 시간, 날짜를 반복 질문
(3) 이미 벌어진 과거일을 반복해서 물어볼 경우
(4) 어떤 일이 잘 마무리 됐는지 반복 질문
등이 있는데 (1), (2)번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반복된 질문에 어떻게 답해줄지에 앞서 그분들이 시간과 일정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을 구성하는 것도 의미있다. 예를 들어 반복 질문이 잦은 치매 어르신이 있는 집에서는 쉽게 눈에 띄는 큰 숫자가 적힌 달력이나 큰 원형 시계 (memory aids)를 거실이나 안방에 걸어 둘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가족들은 '중요한 약속'이 있거나 '병원에 가야하는 날' 등은 어르신이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색깔있는 펜으로 달력에 표시해 놓고, 반복해서 물어볼 때 마다 달력을 이용하여 답해, 달력을 자주 확인하는 습관을 만들면 도움이 된다.
또 한 가지 눈여겨 봐야할 것은 이런 행동은 일정하게 계속 나타나기 보다 기복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급격한 인지 저하 이외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이 있음을 의미한다.
2. 말을 반복한다는 것은 그 날 뭔가 좋지 않은 상태(a marker of a "bad day")라는 뜻이다 (Rockwood et al., 2014).
그분들의 '불쾌한 하루'는 다양한 이유에서 비롯된다.
그 날 울적한 기분이나 우중충한 날씨 탓일수도 있다. 환경의 갑작스러운 변화, 약물이나 무거운 몸 컨디션도 불쾌한 하루를 자극한다. 특히 치매 노인의 분리 불안처럼 '초조'하거나 '불안'한 심리 상태는 보통 사람들처럼 불안하다는 표현 대신 반복된 질문으로 대체된다. '불쾌한 하루'를 자극 할만한 원인을 탐색하는 건 단순히 반복되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보다 효율적인 대처를 가능케 한다. 특히 '나쁜 치매 증상이 악화될 위험'을 미리 감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이유를 탐색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치매 노인의 증상을 욕구의 관점에서 해석하다보면 그 분들의 '불쾌한 하루'를 이해하는데 도움될 때가 있다. 어떤 대답을 해줄까가 아닌,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무엇인지 들여다 보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는 신체적 불편감 때문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관심을 바라는 단순한 기대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분들에게는 예전처럼 상대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는 상황 자체가 중요할지 모른다. 이는 내가 아직 세상에 속해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비록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서로 다른 주제로 엉뚱한 대화를 하며, 서로에게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대화의 내용'보다 '대화 자체'가 중요한 이런 소통을 개인적으로'가짜 대화'라 부르는데, 불안을 완화시켜주고 사회적 연결에 대한 만족감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3. 말을 반복한다는 것은 뇌가 느끼는 일상의 '자극 균형'이 깨졌다는 뜻이다.
만약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면, 과도한 '무료함'이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보는 것이 좋다.
치매 노인의 약해진 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자극(over-stimulation)을 받는 것도 문제지만, 겉으로 보기에 단순한 일상이, 아니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자극이 없는 무료함(under-stimulation) 또한 역설적으로 뇌를 예민하게 만든다. 우리 뇌는 적절한 감각 자극을 받고 이를 통합하면서 세상을 인식해야하는데, 그 균형이 깨지면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비슷한 예로 자폐증 환아의 경우도 뜻 없는 말이나 단어(상동 언어), 의미 없는 행동(상동 행동)을 반복 하는 경우가 잦은데, 이를 주위의 부족한 또는 과도한 자극에 대한 자기 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자기가 감당하기 어려운 낯선 자극이나 지속되는 무료함에 대한 자극을 반복되는 말과 행동을 통해 차단함으로써 스스로 안정을 꾀하는 것이다. 결국 말을 반복하는 치매노인을 보며 어떻게 말수를 줄일지 고민하는 것보다 지역사회 센터를 활용하여 어떻게 사회 활동을 격려하고, 집에만 머물지 않도록할지 방향을 찾는게 좀 더 현실적인 접근일지 모른다.
요약)
1. 짧고 간단하게 답하라.
2. 시간과 일정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라.
3. 말보다는 감정과 상황에 반응하라.
4. 관심을 보일만한 활동을 통해 주의를 환기시켜라.
5. 내가 감당할 수 없다면 잠시 자리를 피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