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간단히 치매를 확인하는 법
시계 그리기 검사 (Clock drawing test)
나이 든 부모가 어느 날부터 화를 참지 못하고, 식탐이 늘거나, 기억력이 떨어집니다. 또는 예전과 달리 하루 대부분을 방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응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마음속에 확실하지 않지만 내 부모가 치매 일지 모른다는 걱정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막상 부모 앞에서 치매 검사받으러 병원에 가자는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습니다.
'뭘 그런데 돈을 써, 그리고 또 내가 어딜 봐서 치매라는 거야. 쓸데없는 이야기하지 말고 내 상태는 내가 제일 잘 알아.’
이런 이야기를 하며 부모가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대부분의 가족들은 답답해하면서도 좀 더 지켜보는 선택을 하고 결국 1~2년이 지나갑니다. 나중에 부모의 치매 증상이 악화되면 자녀들은 이 시기를 놓친 것을 가장 후회합니다. 부모를 병원에 데려가야 할지 망설여질 때 부모에게 거부감 없이, 집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시계 그리기 검사 (clock drawing test)입니다. 검사는 시간제한을 두지 않고 시계가 없는 방에서 진행합니다. 구체적은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방법
1. 지금부터 시계를 그려보겠습니다.
2. 여기에 동그라미를 그리시고, 그 안에 시계에 들어가는 숫자들을 다 써넣으세요.
3. 11시 10분을 표시해 보세요.
방법은 단순하죠? 하지만 1983년 개발된 검사인만큼 채점하는 방법은 15가지나 있습니다. 그중에서 여러분에게 쉴 만 채점법을 소개드리겠습니다.
시계 모양이 원형인지, 1부터 12까지 숫자가 제대로 배치되어 있는지, 간격이 일정한지 등을 포함한 '정확한 시계 모양을 그렸는지'와 '11시 10분을 정확히 표시했는지'를 기준으로 0 (시계로 보이지 않음)부터 5점(완벽한 시계)까지 평가합니다. 점수가 낮을수록 문제가 심각합니다.
특히 0~3점은 치매 위험이 높은 상태로 평가됩니다. 기준이 되는 3점은 시계 구성도 불완전하고 11시 10분을 정확히 표시 못한 경우, 4점은 시계 구성에서 작은 실수는 있지만 11시 10분을 정확히 표시한 경우입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치매가 심해질수록 시계가 어떻게 망가지는지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기준이 복잡하다면 부모님이 그린 시계 그림이 아래 그림 중 어떤 것과 비슷한지 골라보셔도 됩니다. 6단계의 자세한 평가 기준은 아래 파일에 정리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Shulman et al 2000위의 검사는 치매가 진행됨에 따라 시계 그리기가 어떻게 망가지는지 6단계로 보여줬지만 토론토 대학의 Brian J. Mainland 박사에 따르면 '시계를 그릴 수 있다 (정상)', '없다(비정상)'의 2단계만으로도 인지기능 손상을 평가할 수 있다 했습니다. 논문 제목도 'Simple is better (단순한 게 좋다) 네요.
4차 산업 혁명 시대답게 최근 독일에서는 시계 그리기 검사를 디지털화하여 태블릿으로 보급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평가를 사람 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에 내장된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신뢰도를 높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EbWeiKxd0c
놀랍게도 2019년 네이처 Scientific Report에 발표된 슈테판 밀러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화된 시계 그리기 검사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복잡한 치매 진단 검사 (CERAD)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초기 치매 발견에 효과적이라 합니다. 참고로 이 연구도 쉴 만 채점법을 사용했습니다.
치매 혈액검사, 뇌 영상검사, 신경인지기능 검사, 치매 유전자 검사 모두 치매 진단에 있어 중요한 검사입니다. 하지만 환자가 병원에 오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입니다. 마치 집안에 상비약을 챙겨두듯이 치매에 대비하고 싶다면 시계 그리기 검사를 기억해 두셨다 필요할 때 활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