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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중 Jun 08. 2021

부끄러움

치매 노인에서 부끄러움의 감정에 대한 생각

휠체어를 탄 할머니와 요양원 직원이 진료실을 찾았다. 요양원에서 가져온 간이 인지 검사 조차 모든 항목에 '확인 안 됨'으로 체크되어 있었는데 이는 소통에 어려움이 크다는 반증이었다. 실제로도 할머니는 질문에 대답 못하고 멀뚱히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는 등 와해된 모습을 자주 보였다. 더 큰 문제는 요양원 직원들에게 욕을 하고 팔을 휘저으며 위협하는 등의 공격성이었다. 치매 노인의 폭력성은 그 원인을 잘 탐색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소통이 어려운 할머니의 흥분을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음 진료에는 딸, 사위가 같이 왔는데 아무래도 가족들이 옆에 있다보니 할머니의 표정은 이전보다 편안해 보였다. 딸이 어머니의 치매 증상을 자세히 묘사하는 중에도, 할머니는 옆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보통 다른 어르신들은 본인의 증상에 대해 가족들이 이야기하면 역정을 내거나, 그들 이야기가 틀렸음을 적극 해명하려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없어 보였다. 요양원에서 실패한 간이 인지 검사를 다시 하려하니, 딸이 자신의 핸드백에서 보청기를 꺼냈다.

'엄마가 잘 못 들으세요.'


할머니는 보청기를 사용하는 것도 익숙지 않았다. 결국 딸이 어머니 귀에 대고 큰 목소리로 내가 하는 말을 전달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귀가 잘 안 들렸던 분들은 상대방의 입술 모양을 보고 예측하는 경우도 많은데 요새 같은 시기에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더욱 알아듣기 어려웠을 것이다. 검사를 진행하면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할머니는 조금씩 과제를 수행해 나갔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딸을 보며 살짝 웃기도 했다.


그런데 잘 따라오던 할머니가 오각형을 겹쳐 따라 그리는 검사에서 멈추더니 더 이상 못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 또한 궁금해하던 찰나에 검사를 재촉하던 딸에게 할머니가 한마디 툭 던졌다.  

'부끄럽잖아. 부끄러워.'

'엄마 뭐가 그리 부끄러운데, 이것만 그리면 다 끝나니까 끝까지 해보자.' 할머니는 소녀처럼 웃더니 흘끗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있는 사위를 보고 말을 이었다.

'못 그리겠어. 사위가 보고 있잖아. 부끄러워.'

사위도 딸도 부끄러워하는 할머니를 보며 웃는다. 할머니도 소녀처럼 수줍어하며 미소 짓는데 두 볼이 발그레 새색시 같은 표정이다.


부끄럽다
1. 잘 못하거나 양심에 거리끼어 볼 낯이 없거나 매우 떳떳하지 못하다.
2. 스스러움을 느끼어 매우 수줍다.


부끄러움은 복잡한 감정이다. 첫 번째 정의의 부끄러움은 자신의 도덕적 양심에 어긋난 행동을 한 상황에서 비롯된 감정인 반면, 두 번째 정의는 그 사람의 타고난 성격에 기인한다. 게다가 부끄러움은 기본적으로 자기(self)를 인식할 수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인데, 이는 인간이 어느 정도 성숙한 이후에나 가능하다. 위의 두 가지만 고려해봐도 부끄러움이 분노, 슬픔, 행복, 혐오, 놀람, 공포처럼 타고난 '기본 감정'일지는 여러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다.


그러나 치매 노인을 보고 있자면, 부끄러움은 오랫동안 그들 마음을 관통하는 '기본 감정'임을 알 수 있다. 초기 치매 단계에 있는 노인이 먼저 경험하게 될 고통스러운 감정은 어쩌면 분노나 우울이 아닌 '부끄러움'일지 모른다. 스스로의 결함을 주위 사람들의 걱정과 지적을 통해 인식하면서 겪게되는 자존감의 손상이 우선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그리고 반복되는 부끄러움은 분노의 감정으로 대체 된다. 적어도 화를 내는 순간만큼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잠깐이라도 분노에 휩싸이면 상대적으로 혼란감을 덜 느낀다. 그렇기에 치매 노인의 잦은 분노를 부끄러움에 대한 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면 치매가 진행되어 자신과 주변을 인식하는 능력을 잃게되면, 치매 노인의 마음에선 부끄러움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일까.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한 할머니의 수줍은 미소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줬다. 자신을 잃고 주위를 인식하지 못함에도 부끄러움의 감정은 살아 있었다. 대신 남아있는 부끄러움의 감정은 초기 단계에 보인 자존감의 상실로 인한 부끄러움과 그 느낌이 달랐다.


톰킨스는 감정 이론 연구 초기에 극히 생물학적인 접근으로 다윈의 이론을 확장시키다가 후기에 자기(self)의 심리학으로 부끄러움을 해석하는 등 변화를 꾀했다. 그의 연구 자체가 부끄러움에 대한 연구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는데, 특히 부끄러움에 대한 해석 중 자기 자신, 타인 및 사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도로 생기는 감정이라는 뜻으로 말한 부끄러움의 교통성(communicative nature)은 음미할 만한 메시지이다. (발췌: 부끄러움 276p, 이호영 저)


개인의 측면에서 부끄러움은 자신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바라보게 만드는, 그래서 극복해야 할 부정적인 감정으로 여겨진다.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은 적응력이 떨어지고, 결국 사회에서 소외되는 패배자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 사회적 관점에서 부끄러움은 타인 및 사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감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은 진화 심리학적으로도 인간의 사회적 결속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감정으로 해석한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환자를 보면 그것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감정인지 알 수 있다. 부끄러움은 자신의 부족한 모습이라도 남들과 솔직하게 드러내 놓고 소통하고자 하는 소망이 있을 때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다.


만약 할머니의 부끄러움 안에 간단한 검사도 못하는 자신을 비관하는 마음만 있었다면, 내 마음에는 단지 안타까움만 남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귀도 들리지 않고, 치매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어려웠던 할머니가 사위 앞에서 느꼈던 부끄러움은 분명 다른 메시지를 남겼다. 아직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비록 조각났을지언정 여전히 자기(self)를 인식하는 힘이 남아있다는 뜻이요, 치매로 왜곡된 자기 만의 세계에 침잠하지 않고 여전히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그들을 보게 되면, 나는 이를 희망적으로 바라본다.


인류 최초로 기록된 감정은 성경에서 창세기에 아담과 이브가 겪은 '부끄러움'일 것이다. 부끄러움만큼 인간의 문명에 오랜 기간 영향을 미친 감정이 있을까. 이는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담을 하다 부끄러움의 감정은 그 사람의 깊은 마음 속 두려움과 열망, 욕구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록 자신을 잃고 있는 치매 노인일지언정 부끄러워하는 노인을 만나면 내가 더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일지 모른다. 부끄러움이 그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 줄지 모른다는 기대 말이다.


치료하는 과정 중 알게 된 건 할머니가 침을 뱉거나 격노하는 건 주로 대소변으로 기저귀를 갈 때 나타나는 반응이었다. 부끄러움이 많은 할머니가 자신의 신체를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게 얼마나 싫었을까. 전혀 들리지도 않고, 말도 못하는데 얼마나 답답할까. 돌보는 사람이 매번 부딪치는 곤란한 상황도 이해되지만, 사위앞에서 부끄러워하는 할머니를 본 이상 그 부끄러움의 마음도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할머니가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으리라나 스스로 기대하는 건 할머니가 보여준 그 수줍은 미소 때문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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