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꼼지 Mar 30. 2018

아기가 찾아왔다.

  신기한 꿈을 꾸었다. 눈부신 빛이 쏟아지는 방 안으로 들어가니 오렌지색 뱀 두 마리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뱀이 하도 예쁘기에 가까이 다가갔더니 그 중 한 마리가 내 팔뚝을 콱 깨물었다. 뱀에 물린 자리에서 새빨간 피가 철철 흘렀지만 그 뱀이 무섭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눈을 떠보니 새벽 4시. '태몽인가?'하는 생각이 들어 남편을 깨우고 꿈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도 대번에 태몽 아니냐고 물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뱀꿈은 태몽이기도 하고, 큰 돈이 생길 꿈이라고도 했다. “로또 살까?”라고 물었더니 대번에 “안 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말인즉슨 괜히 로또를 샀다가 당첨이 되기라도 하면 아기가 생길 운을 그리로 뺏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로또보다는 아기지. 가슴이 두근두근하며 잠이 오지 않았다. “뱀이 두 마리 나왔으니까 쌍둥이인가?”하며 김칫국을 마시다가 해가 뜰 무렵에야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물론 임신테스트였다. 하지만 생리예정일이 너무 멀었다. 임신이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임신테스트기는 생리예정일을 넘기고 나서야 두 줄이 제대로 보인다고 했다. 괜히 설레발치다가 단호박 같은 한 줄을 보고 실망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촐랑거리는 마음을 꾹 붙들어 앉히고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그 주 토요일. 남편은 머리를 하겠다며 미용실에 가고, 느지막히 눈을 떴는데 문득 임신테스트를 해 보고 싶어졌다. 여전히 생리예정일은 꽤나 많이 남아있었지만 최근 둘째를 가진 친구가 자신에게는 더이상 필요없다며 넘겨준 임신테스트기가 잔뜩 있었다. 하나쯤 낭비해도 상관없겠다 싶어 테스트를 했는데 평소랑 뭔가 달랐다. 늘 또렷하게 한 줄만 보이던 테스트기에 희미하게 선이 보이는 것이었다.

  놀라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하필 이 중요한 순간에 파마를 말고 있다.

  “나 두 줄 보이는 것 같아. 사진 보낼 테니까 봐봐.”

  남편도 놀라서 어버버하며 사진을 확인하더니 내게 되물었다.

  “이게 뭐야?”

  임신이라고 확신하기에는 선이 너무 흐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하기엔 정말로 두 줄이 있었다. 이럴 때 찾아야 하는 건 임신 선배님들. 그동안 둘러보기만 하던 인터넷 카페에 ‘혹시 아기가 찾아온 걸까요?’하며 사진을 올렸더니 십분도 되기 전에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아기 천사가 찾아왔네요. 축하해요!


  임신테스트기도 들여다보고, 인터넷 카페에 달리는 댓글도 보고 있노라니 남편이 파마약 냄새를 풀풀 풍기며 돌아왔다. 자기 눈으로 테스트기를 직접 확인하더니 그제서야 나를 꼭 안아주며 축하한단다. 남편의 품에 안겨 있다가 어깨에 뭔가 뜨거운 것이 닿기에 슬쩍 보니 남편은 울고 있었다.

  “내가 많이 미안해.”

  사실 그 전날도 우리는 뭣 때문인가 싸웠더랬다. 그런데 갑자기 다음날 아침에 아기가 생겼다고 하니 싸우면서 내게 했던 모진 말들이 먼저 생각난 모양이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인데. 그를 보며 우리가 부모가 될 수도 있겠다는 게 처음으로 실감이 났다.     

우리를 헷갈리게 했던 첫 임신테스트기


  인터넷 임신주수계산기에 마지막 생리일을 넣었더니 ‘임신3주 2일째’라는 말과 함께 출산예정일이 떴다. 당장 병원에 가서 확인을 하고 싶지만 임신테스트기에 희미한 두 줄을 보는 것 정도일 때에는 병원에 가도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기다렸다가 5-6주쯤에 병원에 가라는 것도 임신 선배님들이 알려주신 팁이었다. 정말 임신이라는 건 기다림의 연속이구나.


  그제서야 내 몸을 찬찬히 돌아보니 몸살기운이 있었다. 열이 37.4도를 넘고 머리가 지끈지끈했던 것이 임신의 증상이었던 것이다. 병원에 가기 전까지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체온을 재며 아기의 존재를 확인했다. 오늘도 열이 높구나. 아기는 잘 있겠지. 그리고 나서 남아도는 임신테스트기를 하루에 하나씩 쓰며 진해지는 두 줄에 기뻐했다.     


  그렇게 딱 열흘을 기다리고 찾아간 병원에서 너무나도 듣고 싶은 말을 들었다.

  “아기집이 예쁘게 잘 만들어졌네요. 4주 5일, 정상임신입니다. 2주 후에 와서 심장소리 들으세요.”

  우리에게 정말로 아기가 찾아왔다. 아가야,엄마 뱃속에서 열달동안 잘 지내보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