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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지 Mar 23. 2020

마흔에 처음으로 운전하는 이야기

  미리 말하자면 나는 스물다섯살에 운전면허를 땄다. 그 후로 운전을 하지 않았기에 70만원이나 들여서 획득했던 운전능력은 다시 ‘0’에 가까워졌지만 어쨌든 나는 오래 전부터 운전면허를 소지한 여자였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마흔에 처음으로 운전면허를 따는 감격에 대한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운전을 완전 처음하는 것도 아니다. 첫 학교가 아빠의 직장과 가까웠기에 함께 출근을 하면서 연수도 받을 겸 종종 내가 운전을 했다. 운전을 해서 출근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보다 출근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승용차로 하는 출근은 편하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나는 운전이 너무 무서웠다.


  시속 60km만 넘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누가 빵빵거리면 다 나한테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차선을 바꾸려고 사이드미러를 보면 뒷차들이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 같아 깜빡이를 켜놓은 채로 하염없이 직진만 하기도 했다. 30분 정도의 출근길 운전을 마치고 나면 온몸이 다 뻐근했다. 운전할 가만히 내버려두기만 하면 되는 왼쪽 허벅지까지 후들거렸다.      


  그렇게 부들부들 떨면서 하던 출근길 운전은 눈앞에서 크게 교통사고가 나는 걸 보고 놀란 이후로 관뒀다. 나와 지구의 평화를 위해 운전은 안 하기로 했다. 순발력도 없고, 공간감각도 없는 쫄보 주제에 운전은 무슨.  이번 생에 나의 정체성은 운전 못 하는 사람로 정했다.


  그런데 아기를 낳고 나니 운전 못 하는 게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다. 남편이 운전하면 되니까, 남편이 없을 때는 택시타면 되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문화센터 수업도, 아기엄마들과의 약속도 남편이 없는 시간에 더 많았다. 그나마 딸이 어릴 때는 아기띠하고, 백팩 둘러메고 씩씩하게 잘 다녔는데 딸이 아기띠에 들어갈 수 없는 무게가 되고 나니 발이 딱 묶였다. 땅바닥에 내려놓기만 하면 콩알탄처럼 튀어나가려는 딸의 손을 잡고, 유모차를 들고 택시를 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애가 있으면 운전을 해야 한다는 말은 진리였다.




  마흔을 맞으면서 뭔가 하나 배워야겠다 생각했을 때 운전이 1순위로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들었다. 생각만 해도 무섭다. 하지만 주변의 친구들은 사고가 몇 번씩 났어도 꿋꿋이 차를 몰고 다니더니 지금은 다들 운전을 잘 한다. 베테랑 운전자인 우리 아빠와 남편도 가끔은 사고를 낸다. 그래도 다들 운전을 한다. 남들 다 하는 거 나만 못 할까. 애엄마가 되어서인지, 아님 인생 40년차가 되어서인지 어디에선가 알 수 없는 용기가 올라왔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운전연수는 전문가에게 돈을 내고 받았다. 두근두근하면서 강사와 함께 직장도 가고, 친정도 가고, 마트도 갔다. 첫날 직장까지 운전을 할 때는 지하철로 가는 것보다 더 오래 걸려서 이럴거면 뭐하러 운전을 하나 싶었지만 연수를 마칠 때쯤 되니 그래도 운전하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는 됐다. 역시 돈 들여 배우는 게 최고다.     


  어렵게 되찾은 운전능력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몰고 다녔다. 이상한 짓도 많이 했다. 비보호 좌회전을 하려고 기다리는 차 뒤에서 나만 차선을 못 바꿔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하고, 신호를 이상하게 해석해서 사거리 한중간에 우두커니 서 있기도 했다.     


  주차는 뭐 말하기도 부끄럽다. 처음으로 운전해서 출근하던 날, 학교까지 가는 데는 30분 밖에 안 걸렸는데 주차하는 데만 10분이 넘게 걸렸다. 양 옆에 차도 없는데 칸 안에 차를 집어넣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 어쩌다 1등으로 출근한 날은 텅 빈 주차장에서 주차를 하는데도 기둥을 들이받을 뻔해서 학교 보안관님이 “스토오오오옵!” 소리지르며 뛰어나오셨다. 주차하는 매 순간이 위기다.  


  후방주차는 그나마 낫다. 평행주차는 아예 나의 능력을 넘어서는 영역의 미션이다. 처음으로 평행주차를 시도하던 날, 꽤 넓은 주차자리를 용케 찾았는데 그 다음부터 머릿속이 텅 비었다. 차를 집어넣으려고 움직일수록 뭔가 이상해진다 싶더니 결국은 도로를 가로로 턱 막아버리고 말았다. 맞은편에서 오던 차의 운전자는 인내심이 많은 사람인지 핸들에 손을 얹고 나를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계속 주차를 시도할 것인가. 아니면 빨리 포기할 것인가. 나는 후자를 택했고,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 사람에게 SOS를 청했다. "제가 평행주차를 오늘 처음 해보는데 도저히 못 하겠어요!" 결국 나의 첫 평행주차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 대신해주는 것으로 끝났다.


  그렇게 주차를 하느라 나의 모든 능력을 소진하고나면 정신을 놓은 채로 차를 떠나는 모양이다. 나중에 차로 돌아와보면 매번 뭐가 하나씩 이상하다. 비상등이 깜빡이고 있었던 적도 있고, 주차장에서 혼자 머리를 내밀고 있는 차가 있기에 ‘저 차는 뭐야.’ 이랬는데 그 차가 내 차였던 적도 있다. 기어를 D에 놓고, 사이드 브레이크만 얌전하게 채우고 내렸던 날은 남편에게 들켜서 대차게 욕을 먹었다. 이렇게까지 바보는 아닌데 운전만 하면 자꾸 오류가 난다.      


  운전 능력자들에게 대체 언제쯤 운전이 편안해지냐고 물었더니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을 이야기한다. 이제 고작 한달쯤 운전을 했으니 앞으로도 오랜 시간동안 벌벌 떨며 운전을 더 해야 도로 위의 바보신세에서 벗어날수 있겠다는 이야기다. 예전의 내가 운전을 못 했던 건 바보짓을 하며 버텨야 하는 시간을 견디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너무너무 초보인지라 누구를 태울 수도 없고, 안 가 본 데에 갈 수도 없다. 직장과 친정, 마트를 오가는 것만으로도 나의 운전능력 최대치를 쓰고 있다. 하지만 며칠 전 출근길에는 처음으로 운전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소리를 내어 노래하며 출근하는 길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운전을 하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몰랐을 즐거움이다.


  서툴게나마 운전을 할 줄 아는 것으로 삶이 조금은 달라지는 것 같다. 얼마 전, 엄마가 몸살이 나서 아무 것도 못 먹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찌개와 과일을 잔뜩 사서 친정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중간에 또 지하철을 갈아타고 친정에 와야 할 때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네가 운전을 한다고?” 하며 내가 운전하는 걸 마뜩치 않아했던 친정 엄마도 그 날의 방문 이후로 태도가 바뀌었다. 딸이 운전하니까 좋네, 하면서.


  마흔이나 되었으니 나라는 사람의 모습은 거의 결정되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이 변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운전을 못 하는 사람이었던 내가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잘 하지도 못 하는 운전능력을 하나 획득한 것만으로도 게임에서 아이템을 하나 획득한 것처럼 든든해졌다. 이번 봄에는 딸을 태우고 대공원에 가 볼까. 늙어가는 부모님이 병원에 가실 때 모셔다드릴 수도 있을 거다. 지금은 무리겠지만 언젠가 마음이 동하는 날, 훌쩍 바다로 떠날 수도 있겠지.


  다음에는 뭐에 도전해볼까. 마흔에 처음하는 뭔가를 찾아 쭉 시리즈로 써볼까. 유산슬처럼 트로트 가수가 될 수는 없겠지만 마라톤을 해 보거나 우쿨렐레를 배울 수는 있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고, 출퇴근을 하는 똑같은 일상 속에서 처음으로 하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일이 꽤나 큰 행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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