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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다리는 시간
by 꼼지 Apr 02. 2018

임신 6주. 어서와, 입덧은 처음이지?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입덧이 너무 심해서 만삭까지 김치수제비로 연명을 했다고 하셨다. 입덧 때문에 너무 말라 아기를 낳을 때까지 임산부인 걸 사람들이 잘 모를 정도였다고 하니 괴로움이 오죽했을까. 딸은 엄마의 입덧을 닮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런데 병원에서 아기를 보고 온 후에도 속이 말짱했다. 임신의 기쁨을 누리느라 남편과 매일 맛있는 걸 먹었다. 오늘은 소고기, 내일은 탕수육……. 입에 들어가는 것마다 너무나 맛있었다. 어쩌면 나는 입덧 없이 지나가는 행운의 임산부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덧은 임산부들의 70-85%가 겪는 일. 입덧을 피해가는 행운은 나에게 없었다.      


  입덧의 신호탄은 뜬금없는 체기였다. 김밥을 쌌는데 김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남편은 아무 냄새도 안 난다는데 나에게는 계속 김의 오래된 냄새가 느껴졌다. 그 김으로 싼 김밥을 먹고 꼭 체해버렸다.

  얼큰한 것을 먹으면 답답한 게 나아질까 싶어 종종 들르던 칼국수집에 갔다. 왠지 전보다 맛이 없게 느껴지더니 김밥에 이어 2연타로 체하고 말았다. 아기를 가졌으니 약을 먹을 수도 없는데. 남편에게 부탁해 팔다리를 주물러봐도 답답하고 울렁거리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샤워를 하러 들어갔는데 샴푸에 거품을 내는 순간 속이 훅 뒤집어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입덧이 왔구나.

  세상 모든 것에서 냄새가 났다. 냄새 분자들이 입 안으로 들어와 맛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샴푸맛, 비누맛, 로션맛……. 그동안 쓰던 향이 있는 물건들을 모두 향이 약하거나 없는 것으로 바꿨다.

  냄새를 견딜 수 없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다. 지하철에서 부대끼는 사람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물론 남편의 냄새까지 모든 게 속을 뒤집었다. 샴푸, 비누는 바꾸기라도 할 수 있지만 남편은 바꿀 수도 없다. 그냥 무언가의 냄새가 느껴질 때마다 내가 숨을 참는 수밖에.     


  요리를 할 수 없으니 남편에게 먹을 것을 사오라고 부탁했다. 뭘 먹을 수 있을 것 같냐기에 아플 때마다 종종 사다 먹던 순두부찌개가 생각났다.

  “나는 김치순두부. 자기는 자기가 먹고 싶은 걸로 포장해 와.”

  이게 실수였다. 남편은 자기가 먹고 싶은 메뉴로 ‘청국장 순두부’를 선택했고, 남편이 청국장 순두부를 데우기 시작하는 순간 온 집안에 청국장 냄새가 퍼져나갔다. 임신 이후로 꼬마 집요정처럼 집안일을 해대는 남편에게 차마 먹지 말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속에서는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이 차올랐다. 왜 저 인간은 많고 많은 순두부 중에 청국장 순두부를 골랐을까?


  남편에게 입덧에 대해 이해시킬 필요가 있었다.

  “입덧이 어떤 느낌이냐면 말야. 24시간 체해서 속이 울렁울렁하는 거랑 비슷한 거야. 체한 느낌 알지?”

  “아니. 나 태어나서 한 번도 체해본 적이 없어.”

  “그럼 멀미하는 느낌은 알아? 시골길 같은 데 달리면 토할 것 같잖아.”

  “음……. 나 멀미 느낌도 몰라. 멀미 안 해.”

  속이 건강한 사람이라는 건 알았어도 일생동안 체해본 적도, 멀미해본 적도 없는 대단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비슷한 느낌으로 숙취가 있긴 하지만 남편은 소주 두 잔을 마시면 자버리는 사람이니 숙취의 느낌도 모른다. 입덧이 뭔가 매우 힘든 일이라고는 어렴풋이 짐작만 하는 것 같았다.

  “그냥 이제 청국장 같은 건 사오면 안 돼. 냄새 많이 나는 건 다 안 돼.”

  “알겠어. 미안해.”

  역시 남자에게는 공감을 구하기보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설명해주는 게 빠르다. 설거지랑 빨래는 당분간 자기가 해줘야 할 것 같아. 음식은 최대한 냄새가 나지 않는 걸로 부탁해. 그가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누워서 가만히 속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입덧은 기다린다고 가라앉는 게 아니었다. 그냥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며 견딜 수 밖에.     



  

  입덧은 참 요상한 것이어서 아무것도 먹고 싶은 게 없는데도 속이 조금이라도 비면 쓰리고 울렁거려 뭔가를 먹어야 했다. 아마도 속이 안 좋다 해서 엄마가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아기가 자랄 수 없으니 힘들어도 뭔가를 먹게 설계해놓은 자연의 섭리인 모양이다.

  다행히 입덧을 겪으며 먹어도 속이 편한 몇 가지를 찾아냈다. 나에게 입덧의 은인이 되어준 것은 흰 죽과 엄마표 반찬, 그리고 방울토마토였다. 매일 한 끼씩은 흰 죽에 엄마표 반찬을 먹으며 해결을 하고, 중간에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울렁거리는 속을 달랬다. 남편은 내게 음식을 해주지 못 하는 대신 처갓집에서 반찬을 갖다 나르고, 맛있는 방울토마토를 찾아오는 역할을 맡았다. 엄마와 남편, 그리고 방울토마토가 없었다면 그 시간들을 견뎠을까.     

입덧의 은인이었던 흰죽, 그리고 엄마 반찬

  입덧을 견디는 동안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흘렀다. 병원 검진 날 의사 선생님에게 입덧의 고통을 호소했더니 입덧이 있다는 건 아기가 자리를 잘 잡고 있다는 증거라고 하셨다.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입덧도 사라질테니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아직 점에 불과한 조그마한 아기 덕분에 삶이 송두리째 달라졌다. 아기가 태어나고 나면 더 많은 것들이 달라지겠지. 부모가 된다는 건 이렇게 자식을 위해 견디고 참아내며 자신의 삶을 바꿔나가는 과정인가보다. 아직 제대로 된 엄마가 되려면 멀고도 멀었지만 울렁거리는 속을 견뎌내며 부모가 되는 것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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