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5년 8월 31일
이 브런치에 이직을 다짐한 글만 두 세 개는 되니 이제 이직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조금 무안하다. 그 동안 깨달은 것은 나는 누군가처럼 프로이직러는 되지 못한다. 숱하게 회사를 옮기면서 연봉을 점프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그나마 진득하게 몇 년은 한 곳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첫 번째 회사에서는 머리로 이직을 마음먹고도 족히 일 년은 옮기지 못했다. 이직을 위한 비용들 -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준비하는 노력과 시간들 - 이 낯설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아직 이 회사를 대체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게 느껴지던 때였다. 그 때는 정든 동기들과 팀장님, 업무를 같이하던 사람들을 떠나는 것에 대한 미련이 컸다. 새로운 곳에서 다시 인연을 쌓아가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고 그 당시 대기업 공채로서 받는 무형적 혜택도 무시하지 못했다. 웬만한 곳이 아니고서야 정든 인연들을 놓고 갈만큼 좋은 조건을 나에게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업무적으로 성장이 멈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꽤 오랜 시간을 머물러 있었다.
두 번째 회사이자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업무강도가 높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오래 버틸 자신이 없었기에 딱 1년만 일하고 옮기자는 마음을 먹고 이직을 결심했다. 그런데 이가 무색하게 나는 어느새 이 회사에 삼 년 반동안 머물고 있었다. 같이 일하던 이들이 떠나는 뒷모습만 수차례 바라봤다. 그동안 숱하게 이직을 마음 먹었음에도 단호하게 이직을 할 수 없었던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몇일씩 내리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모니터 앞에서 잠자는 시간 빼고는 모조리 일만 하던 시절도 있었고 몇 개월 혼신을 갈아넣어 리드하던 프로젝트가 런치를 앞둔 시점에 CEO한마디에 드랍되던 순간도 있었다. 그 시절의 내 몇 개월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은 성과였다. 행복도 건강도 버리고 오직 성과만으로 버티던 순간들이었다. 그래서 그 결정은 나를 무력하고 또 절망하게 했다.
내 삶의 방향이 맞는 지에 대한 의문이 숱도 없이 들었다. "나는 왜 이런 삶을 선택했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끝도 없이 맴돌았다. 심지어 비포괄제 연봉제라 시급으로 따져보면 내 연봉은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았다.그 때마다 이직을 생각했다. 나를 더 이상 이런 상황에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력서를 쓸 에너지나 시간조차 남아있지 않았을 때도 있었지만, 웃기게도 파이널 오퍼를 받고도 끝내 가지 않기로 결정한 적도 있었다. 왜 나는 그런 선택을 하는걸까, 장기근속에 대한 엄청난 혜택이 있는 것도, 같이 일하는 이들과 끊지 못할 유대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해외에 있어서 그들과는 줌이나 메신저로 하는 소통이 전부일 뿐이었다.
마음 속 깊은 곳 혼자만의 갈등을 지닌 채 어느 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중간매니저들도 하나 둘 떠나면서 일년 반 정도를 매니저 없이 일했다. 그러다보니 실무자임에도 많은 의사결정을 도맡아하고 가끔은 VP이상의 레벨에 보고도 했다. 언젠가는 비상상황으로 매주 진행되는 CEO보고를 위해 화면과 아젠다를 준비하면서 압박적인 나날을 보냈다. 전날 요청을 받고 다음날 출장을 가기를 부지기수라 비행기에 내릴 때까지 숙소가 정해지지 않은 적도 있었다. 일요일 밤에 갑자기 월요일 아침 CEO미팅이 잡혔다고 슬랙이 와서 일요일 밤이 늦도록 준비를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시들어가던 중에 드디어 새로운 중간 매니저가 왔다. 드디어 이 보고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기뻤다. 그가 오면서 자연스레 나는 보고에서 벗어나고 자료를 준비하는 데 그쳤고 곧 비상상황도 어느정도 해결이 되었다. 드디어 살 것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안정적인 시간을 보냈다. 가끔은 나를 너무 안 써먹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이 회사에서 처음으로 맞는 나날이라 그동안의 보상심리로 한동안은 이렇게 지내도 되지 라고 생각했다. 알고보니 내 매니저는 땡보였다. 그는 슬랙 답장도 참 느렸고 새로운 일감을 만들어내는 법도 없었다. 나는 혼자 한국에서 재택을 해서 몰랐지만, 이미 현지 오피스에서는 팀 밖에까지 그의 태만한 근태에 소문이 자자했다. 아이비리그에 아마존 출신 -우리 회사가 가장 좋아하는 조합이다- 이라는 배경으로 쉽게 들어온 것 같았지만 막상 할 줄 아는 것도 할 의욕도 크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일하면서 배우는 게 참 없다고 느껴졌었다. 내가 여태 쌓아온 지식을 소비하며 소모되는 느낌만 들 뿐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매니저가 없을 때보다 있을 때 배우는 게 더 없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그 때야 이직에 대한 확신이 섰다. 이직무새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 때는 진짜 확신이 섰다. 바로 그 때였다. 이직이 안 되면 전배라도 가야겠다는 명확한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당장 내일 오라해도 갈 것 같은 곳으로만 추려서 두 군데 이력서를 넣었다. 진짜로 떠날 마음에 확신이 섰다. 여기서 더 있는다면 나는 내년에도 비슷한 모습일 것만 같았기 때문에 미련이 없었다. 그 와중에 다시 CEO의 관심이 다시 우리 팀으로 쏠리며 팀이 아주 바빠졌다. 어느새 내 매니저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업무량이 되자 결국은 매니저가 바뀌었다. 갑자기 팀도 정신 없이 바빠지며 그 팀의 유일한 실무자였던 나도 덩달아 눈코뜰새 없었다.
회의를 하고 있던 어느날 전화가 계속 왔다. 끝나고 전화를 하자 이력서를 넣었던 채용팀이었다. 오늘 면접일정인데 왜 참석하지 않으셨냐고 물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바빠진 일탓에 이력서를 넣은 사실까지 까맣게 까먹은 것이다. 정말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를 드리며 마음 속으로 그 회사에는 영원한 안녕을 고했다. 이제 다시는 나를 뽑아주지 않을 터였다. 가고싶은 회사였는데 아쉽게 되었다.하지만 깊고 깊은 마음 속에는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조금 있었기에 어쩌면 무의식적으로는 잊고 싶어서 잊은 것일수도 있음을 고백해본다. 몇 달의 휴식기 같은 성장 공백기 이후에 다시 흥미로운 일들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새로 들어온 매니저는 실리콘밸리 출신의 워커홀릭이었는데 이전부터 그와 함께 일해보고 싶었다. 그는 일 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야망가인 그의 입장에서는 실무를 꽉 쥐고 있는 내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고, 나도 내가 다음레벨로 가기 위해서 부족한 people skill과 managing을 알려줄 사람이 필요했다. 서로의 니즈가 맞았다. 한편 업무도 새로운 부분을 맡게 되었다. 우리 팀 중 AI 관련된 파트도 맡고 있었지만 기존에 크게 주목을 받는 파트는 아니었다. 다만 최근 AI에 대한 관심으로 해당 파트도 같이 관심을 집중받았다. 이에 오토매핑 외의 기존 일을 새로 사람을 뽑아 인계하고 나는 AI부분만 집중하는 걸로 디렉터와 쇼부를 봤다. 올해 말 예정되어 있는 승진에 변경이 없도록 약속받은 것은 덤이었다.
사실 이렇게 정리하기까지 고민이 참 많았다. 지금 팀을 거의 2년째 맡고 있는데, 페이스가 빠른 이 회사에서 2년이면 보통의 회사에서는 6년 같은 시간이라 생각한다. 이 팀을 맡기 전에는 다이나믹하게 여러가지 파트를 돌았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 오래 고여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지금 팀은 백엔드 중심이라 이직시장에서 유사한 경력을 찾는 곳이 한정되어 있다. 이전 동료들을 만날 때마다 이직이 아니라면 하다못해 CX와 같은 프론트 쪽으로 전배를 생각해보라고 넌지시 권유받기도 했다. CX쪽이 훨씬 더 이직하기도 쉽고 이제 어디든 이직을 하고 나면 매니저레벨로 갈테니 CX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들의 말이 맞다. 그럼에도 선뜻 옮기지 못한 결정에 마음 한구석에 불안함을 느낀다.
그 때야 깨달았다. 지금은 진짜로 옮길 때라는 것을. 몸이 너무 힘들 때가 아니라, 있을 때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 때는 옮기는 거다. 힘들고 내 삶이 없을만큼 일에 파뭍혀 있을 때는 마음이 불안한 적은 없었다. 압박이 심하던 시절에는 명상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기도 했지만 그 때는 오히려 회사의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쳐질까봐 나를 다독이는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지금은 확실히 다르다. 이 회사에서 나는 충분히 굴렀고 목소리를 키울 수 있을 만큼 경력도 능력도 쌓였다. 매니저에게도, VP에게도 가시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대로 있다면 앞으로 몇 년은 걱정 없이 다닐 것이다. 그런데 아마 그게 나에게는 시그널인가보다. 여기서 이렇게 안주하는 것은 아닐지 성장할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닐지 불안한 마음이 나에게는 떠나라는 신호인가보다.
생각해보면 이전 회사에서도 그랬다. 신입 시절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서 울고 일하던 시간을 거쳐서 적당히만 일해도 팀장님께도 상무님께도 차기 팀장감이라는 말을 듣는 시기가 왔었다. 그쯤되니 나는 머무르는 것에 불안함을 느꼈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떠날 수 없다. 이전에 자유로이 떠날 수 있을 때는 확신이 서지 않다가 막상 현실이 발목은 잡는 시기가 오자 마음에 확신이 들었다. 남편과 상의 끝에 올해 아기를 가지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금 덜컥 먼저 회사를 옮기기가 쉽지 않다. 아직까지 현실에서는 이직한 지 2년도 되지 않아서 육아휴직에 들어가버리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 고깝게 생각하지 못한다. 고심 끝에 내년까지는 이직을 접어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게 지금 회사에도, 이직할 회사에도,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그렇게 체념했지만 잠잠하던 마음에 종종 소용돌이가 휩쓸곤 한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오늘 매니저와 1:1을 하면서 매니저가 먼저 귀뜸을 주었다. 매일 같이 일하던 내 또래의 BA가 떠난다고. 조인한지는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아주 잘 된 일로 떠난다고 했다. 그런데 그를 축하하는 마음보다도 상실감, 공허함, 박탈감이 더 내 마음을 휩쌌다. 그는 어떤 일로 떠나는 지 궁금한 마음이 몰아쳤지만 이 또한 박탈감에서 오는 마음임을 알고 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서 대학원을 가는걸까? 더 좋은 곳에 스카웃되어서 가는 걸까? 내가 게으르게 일 말고 다른 아무 것에도 노력하지 않은 사이 그는 일을 마치고도 다른 것을 성취하기 위해 애쓴 건 아닐까? 주식이나 코인같은 거라도? 나는 여기서 뭘 하는 걸까? 내 시간은 가치 있게 쓰이고 있을까? 수 많은 물음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음 속에 떠올랐다.
내가 조인하고 나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PO직군의 근속년수가 1년도 채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제 3년 반 정도 있으니 회사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한 달에 20일은 매일 일을 하니 1년만 보내도 그 시간이 도대체 얼마인가. 내가 같이 일하던 사람들도 대부분 2-3년 내외로 떠나고 말았다.
7월에는 나를 지금 팀으로 데리고 왔던 디렉터도 떠나고 말았다. 그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조인해서 많은 고군분투를 겪었다. 처음에는 텃세도 받고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떠날 때는 CEO도 그를 붙잡았다. 오랜 기간 같이 일하면서 의지했던 그였음에도, 막상 떠난다고 하니 진심으로 그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었다. 그는 FIRE에 성공했다. 고국으로 돌아가서 주식투자를 소소하게 하고 딸을 키우며 남은 인생을 보낼 것이라 했다. 내가 본 최초의 30대 파이어였다.
나를 이 회사에 데리고 왔던 친구도 떠난 지 벌써 일년이 넘었다. 항상 같은 팀에 일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끌어주고 의지하던 친구였다. 우리팀의 유일한 한국인이 나와 그녀였고 우리 둘의 이름은 하나의 명사처럼 불리고는 했었다. 그 친구가 떠나면 나는 정말 공허할 줄 알았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이제 한국 오피스에 가끔 출근해도 아무도 볼 사람이 없다는 것 빼고는 다 괜찮았다. 그 친구는 지금은 다른 회사의 디렉터가 되어서 그녀의 능력을 더 뻗친다.
내가 가장 믿고 의지했었던 과거의 매니저는 가장 올해 일한 사람들 중 하나로, 떠난 지 2년 반 정도 되었다. 그녀는 다른 회사의 C레벨이 되었는데 그럼에도 과거에 비하면 충분한 워라밸을 즐긴다. 업무 후 시간에는 부동산과 주식 등을 공부하며 월급 외 수입을 찾고 있다. 과거에 일에 미쳐 살아서 이런 걸 몰랐다며 자조하기도 했다. 그녀는 요즘 피부에서 광이 난다.
나에게 큰 영향을 줬던 사람들은 모두 다 떠났다. 나도 언젠간 떠날 것이다. 그 전에 여기서 조금이나마 더 많이 배우고 많은 것을 해 보고 싶다. 확실히 다른 곳에 비해서 이 회사는 리소스가 풍족한 곳이다. 다른 어느 곳에서 상상하지 못할만큼 매일같이 데이터를 뽑고 태블로 대시보드를 만들어서 세세한 지표를 살필 수 있고, 비싼 가격은 둘째치고 구하기도 힘든 GPU를 몇 백 개는 돌리면서 AI를 개선할 수 있다. 즉 일이 고된만큼 성과를 확실히 만들 수 있는 곳이다. 다양한 배경의 일 잘하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