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현장직 김프로님 이야기
내가 우리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편의상 그분을 김프로라고 칭하겠다. 처음 김프로님을 만난 것은 신입사원 교육의 마지막으로 각 조별 발표를 준비하던 때였다. 발표 주제는 우리 회사의 현장들이었다. 각조별로 배정받은 현장의 공법, 자료를 바탕으로 관련 담당자들을 인터뷰해서 심지어 “재미있게” 발표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는 입사 후 아직까지는 계속 사무실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아직도 공사 현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동경이 있다. 공사현장은 뭔가 위험하고, 시끄럽고, 사람들도 거칠고 드세서 겁 많고 소심한 내가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곳 같았다. 건설사 직원의 80% 이상은 현장직이므로, 건설사에 입사하려면 언젠가 현장을 간다는 것에 대한 각오가 필요했다. 면접에서도 현장생활 괜찮겠냐는 걸 항상 물어보고, 그에 대한 모범 답안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씩씩하게 문제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망설임이 너무 많았던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입사 전 어떤 건설회사 홈페이지에서 본 영상이었다. 대부분 소개 영상과 인터뷰는 남성 직원들이었는데, 그 영상에는 내 또래의 여성 직원들이 나왔다. 그분들은 중동에서 우리나라 회사의 로고가 박힌 안전모를 쓰고,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당당하게 역할을 하고 있었다. 40도가 넘는 더위에 언어도 문화도 달라 힘든 환경이지만, 사람들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우리나라의 기술력으로 차근차근 완성해 나가는 것이 큰 보람이라고 했다. 마치 내가 가지 못하는 어떤 차원으로 훌쩍 가있는 사람을 본 느낌이었고,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내 마음을 움직였고,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용기가 생겨 건설사에 지원하게 되었다. 현실은 4년째 사무직을 계속하고 있지만.
김프로님은 내가 방문한 첫 현장에서 우리의 가이드였다. 여러 인터뷰를 준비해서 현장방문을 하던 날, 우리 조는 김프로님을 따라 3시간을 걸어야 했다. 4,000여 세대에 달하는 큰 현장이었고, 영하 3도에 달하는 추운 날씨였고, 우리 조는 모두 흰 와이셔츠에 검은 양복만을 입고 있었다. 다시 말해 얼어 죽을 것 같았다.
차마 그 말을 못 했던 건, 우리가 신입사원 이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열정 때문이었다. 3시간 내내 그는 단지 곳곳을 누비며 이 부분이 왜 이렇게 되었고, 어떤 점을 고민했었고, 공사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동료들과 입주민들은 반응이 어땠는지를 설명했다. 내용은 아주 의식의 흐름이었는데, 이 색깔은 왜 골랐고, 어떤 민원인과 몇 번 통화를 했으며, 그분은 자녀가 몇 몇이며, 이 자재는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이 공사를 할 때는 날씨가 어땠는지, 이 아무개가 이걸 보고 뭐라고 하더라는 정도의 디테일이었다. 50대라고 믿기지 않을 호리호리하고 건강해 보이는 그는 엄청나게 빨리 걸어서 나중에는 나도 발과 겨드랑이에 땀이 났고, 그러면서도 쌍꺼풀 짙은 눈을 내내 반짝여서 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사실 며칠간의 앉아서 듣는 교육에서 공구리를 치니(콘크리트를 타설 한다는 은어), 구배를 잡니(바닥에 경사를 조성해서 물이 빠지게 한다는 은어), 하이바를 던지니(열 받아서 안전모를 바닥에 던진다는 은어) 하는 외계어만 들으며 졸다가, 야외에서 실제 현장을 보니 재밌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내가 우리 회사에서 본 사람들 중 가장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열정적인 사람에게 잘 반한다. 안전모를 쓴 현장생활에 대한 환상에 굳건한 직업정신을 가진 실제 인물을 보니 너무 멋지고 희망적이었다. 사원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목이 터져라 설명하는 김프로님이 내 사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래지 않아 그 기회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다만 그 장소는 현장이 아니라 사무실이었다. 우리 팀에서 팀장님에게 찍힌 누군가가 순환근무라는 명분으로 현장으로 발령 났는데, 그 대가로 현장의 에이스가 사무실로 발령이 나서 근무하게 된 것이다. 그는 아주 오기 싫었는데 억지로 오게 되었다고 싫어했지만, 내 옆자리였기에 나는 내심 기뻤다.
그러나 들판을 자유롭게 뛰놀던 야생동물이 갑자기 우리에 갇히면 그렇듯이, 그는 모든 상황을 힘들어했다. 현장은 일정관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 상대적으로 사무실에서는 절차와 보고가 중요하고, 그게 안되면 상사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는 직원으로 여겨져 부딪히게 된다. 십수 년간 한 번에 한 현장에 집중해 문제를 해결하던 그가 갑자기 몇십 개의 프로젝트를 떠안고 문서 업무를 하게 되면서 과부하가 걸린 것도 당연하다. 이미 경력이 있기 때문에 물어보기도 뭐했고 다들 책임만 떠넘기기 바빴지 잘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현장에서는 몇 시간을 들떠서 설명을 하던 김프로님은 사무실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회의실에서 팀장님과 고성이 오가고 책상을 쿵쿵 치며 싸우게 된다. 팀장님은 왜 보고도 안 하고 마음대로 하냐고 소리쳤고 김프로님은 내가 책임지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
그리고 발령난지 10개월 만에 김프로님은 필드로 다시 훨훨 날아가게 되었다.
김프로님에게 전화가 온 것은 1년 후였다. 다시, 겨울이었다.
“내 현장 다 지어가. 구경하러 안올래?”
내 현장이라니. 그의 자신감에 감탄하며 이번에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두꺼운 패딩과 장갑을 준비해 갔다. 현장 입구에서 작업복을 입고 안전모를 쓰고 안전화를 쓴 김프로님의 모습은 내 입을 떡 벌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무실에서 시들어가는 화분과 같았던 그가 현장에서는 방금 비를 맞은 아름드리나무 같았다. 오랜 기간 내 옆자리에 앉았기에 그게 눈으로 확연하게 보였다. 발걸음은 가볍고 눈은 반짝이고 입가에는 웃음기가 있었다.
밀림의 왕 사자가 돌아온 느낌이 이런 걸까?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는 것, 그리고 자유로운 사람이 자유를 누리는 것이 그처럼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하루에 2만보를 훌쩍 넘겨 걷는다며 그는 처음처럼 투어를 했다. 현장에서 얼마나 잘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되게 열심히 했다고 했다.
싫었지만 본사에서의 경험도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이전에는 몰랐고 안보였던 것을 알게 되어서 입주민들에게 설계가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건지를 누구보다 잘 설명해줄 수 있다고. 설계보다 시공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설계한 사람들을 불러서 어떤 게 좋았고 또 아쉬웠는지 공유하는 시간도 가졌다고. 이제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내가 같은 일을 몇십 년 한다면,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 배운 것을 써먹는 것을 김프로님처럼 즐거워할 수 있을까.
내가 속한 공종은 마감공사에 가까워서 다른 공종보다는 결과가 가시적으로 보인다. 김프로님은 그 이후로도 매 현장을 우리 회사의 레전드를 남기고 있다. 최근에는 입소문이 나서 주택공사(LH)에서 우수사례 답사를 여러 번 다녀가기도 했다.
김프로님이 알려준 여러 가지 업무 팁과 새로운 도전들은 늘 기록하고 있다. 몇 가지 소개하자면 이렇다.
품질은 공기(공사기간)에 달렸다. 일정관리가 안되면 나중에 하나 더, 한 걸음 더 고민할 시간이 없이 그저 끝나는 데에만 연연하고 매달려야 한다.
같이 일하는 협력사에게는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압박하기보다 긍정적인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 “당신이 만든 현장 중에 최고의 현장으로 만들어서 박수받게 해 줄게. 나랑 같이 하면 적어도 손해는 안 보게 해 줄게.”라는 최소한의 신뢰가 있어야 서로 말이 통하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다.
입주민들은 작은 디테일에서 감동을 받는다. 예를 들어 죽은 나무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베야 한다면, 그걸 그냥 두거나 뽑기보다 거기에 부엉이 소품을 달아서 재미를 주거나 의자로 만들 수도 있다. 금액은 얼마 안 들어도 그런 정성을 사람들은 다 안다.
100% 완벽한 도면은 없다. 현장 상황은 와봐야 아는 거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그 여백을 고민하고 채워야 한다. 그런 과정이 스트레스받기보다 재밌어야 한다.
나 혼자 성장하는 것보다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이 같이 성장하는 게 결국 나한테 이로운 일이다. 내가 공사하면서 설계사와 시공사를 다 불러서 이슈사항을 공유하면 그다음 현장에서는 더 좋은 시너지를 내고 결과도 좋다.
현장은 다 끝난 후에 와보는 것보다 중간중간 과정을 보는 게 좋다. 저번에는 그랬던 게 이번에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뭘 고민했는지 완성되는 과정을 보는 게 공부가 된다.
그중에서도 내가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한 마디가 있다. 다시 시간을 돌려 신입사원 시절, 우리는 “건설은 [ ]다”라는 패널을 만들었다. 현장 직원 한 분 한 분에게 그걸 부탁해서 발표 영상 마지막에 연속으로 보여줘서 감동을 유발하는 계획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김프로님의 정의는 이랬다.
건설은 [여행]이다. 왜냐하면 아파트 공기가 보통 2~3년이기 때문에, 몇 년마다 다른 곳에 가서 새로운 동료를 만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노가다라고 하지만 나는 그 과정이 항상 새롭고 설렌다.
삶은 여행이라는 말이 있다. 김프로님에게 건설은 여행과 같고, 또 삶과 같나 보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나니 여행 못가는 요즘, 내 삶도 여행처럼 생각해봐야겠다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긴다. 나도 누군가에게 눈이 빛나는 사람이 되는 날을 꿈 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