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르몽 페랑으로 간 이유, 그리고 이젠 추억

by 공삼

파스칼과 미테랑 대통령의 고향이자 미슐랭 본사가 있는 이곳.
클레르몽 페랑...

내가 이곳에서 프랑스어 언어 연수를 했던 때가... 1996년이다. 벌써 아득한 옛날이 되어 버렸다.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ㅇ 그 흔한 디카가 없던 시절이라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수동카메라나 일회용 카메라로 찍은 게 전부였다.
1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체험했는데,,, 그저 내 머리와 가슴 속에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조금은 서운하다. 그리고 너무나 아쉬운 시절이다.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조금만 더 무모했더라면,

변명이지만 내가 살아온 집안 환경과 그 속에 몸에 베인 나만의 습관과 사고방식이 도전적이거나 무모할만큼 용기를 가지지 못했다.
프랑스 현지에서 프랑스어를 배우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렵게 주어진 자유를 만끽하는 데 전념했던 것 같다. 엄한 집안 분위기와 좋다가도 엄포를 놓는 어른 목소리는 나를 위축하게 만들었고 자연스레 내성적이었다. 오히려 결혼하고 나서 많이 변했달까?

프랑스는 막연히 가고 싶다는 생각에 나름 치밀하게 준비했던 계획된 유학길이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부터 배운 프랑스어..
대학에 들어가니 남자들 가운데 그런대로 프랑스어를 잘 따라하니 용기가 생겼고..
집에서는 공부한다면 없는 집안 형편에도 적극 지원하다보니 나는 나도 모르게 이를 이용하여 언어 연수를 다녀왔다. 당시엔 프랑스어를 배워 뭔가를 할거라는 거창한 꿈도 꾸었지만, 무엇보다 떠나고 싶었던 마음이 컷었다.

그래도 프랑스에서 머물면서 많은 것들을 보며, 새로운 것에 대해 컨텍하는 법에서 누리는 방법까지 내 스스로가 알아가는 자유가 너무나 강하고 달콤했다.

지금 다시 가라면 아마도 나는 비행 조정사의 꿈을 가지거나 디자이너의 꿈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프랑스 현지에서 김치를 담거나 해안지방으로 넘어가 젓갈을 담고 살지 않았을까? 조금은 무모하게..

여하튼 프랑스의 기억은 이제는 추억으로 때로는 비싼 꿈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분명 프랑스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도피처이자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무대였다. 그 덕분에 나 스스로를 살리는 방법을 배웠다.

프랑스에서 머물면서 가장 큰 소득이 무엇이냐고 물어 본다면?
예전에는 경험이라 말했지만, 이제는 여유다.

적어도 프랑스 생활은 나에게 여유를 가르쳐 주었고, 인내하는 방법과 심지어 괴로울 때 즐기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 23년이 지난 추억은 이미 꿈이 되어 아련하지만, 그래도 가끔씩 옛날 사진을 보며 꿈의 끝자락을 붙잡고 가끔씩 여유를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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