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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 Mar 10. 2024

우리나라의 SDGs와 ESG, 이대로 좋은가?


SDGs가 공식적으로 국제 전반에 걸쳐 함께 이행하고자 결정 난 지 9년째이다.

그 시간만큼이나 ESG에 대한 촉구도 비슷한 세월을 지내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내년이면 10년이 되는 해, 


물론 각 지자체별로 지속가능발전협의회(이하, 지속협)를 두고 열심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솔직히 그 변화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처럼 지지 부지하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여전히 SDGs가 뭔지,  ESG가 뭔지? 왜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많이는 들어 봤지만, 꼭 필요한가라는 답이 되돌아올 뿐이다. 

사태의 심각성이나 중요성을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고자 한다면 대대적인 흐름이 요구된다. 그러나 여전히 제자리걸음처럼 변화가 없다면 아직까지 제대로 전파가 되지 않았거나 또는 시민들이 SDGs나 ESG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시사한다 하겠다. 잘 전파가 되어도 시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지금 시민들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양태를 보여준다 하겠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이 있다. 
학생들의 학교 교육이 늘 부족함이 많지만 그래도 전보다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얼마 전  우연히 같은 마을에 있는 모 고등학교 학생으로부터 블로그 댓글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요지는 경제 관련 활동을 하는데 나에게 문의가 온 것이다. 
그만큼 새로운 것을 알고자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느껴져서 아무 조건 없이  SDGs와 ESG에 대한 강의를 해 주겠다고 내가 먼저 청했었다. 지금의 학생들은 지금의 부모와는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그동안 말 많았던 학교 교육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SDGs와 ESG 실천이 잘 되는 나라 모습은? 



SDGs나 ESG 실천이 잘 이루어지는 나라는 크게 세 가지 형태의 국가에 잘 이루어지는 듯 보인다. 


첫 번째는 바로 선진국이다

특히 북유럽 국가의 SDGs나 ESG 실천은 늘 앞서나간다. 그만큼 교육에서 참여의식에 이르기까지 가장 앞서 있는 게 사실이다. 정권을 앞서는 시민의 의지를 보여주는 나라의 모습을 지녔다 해도 과하지 않다. 특히 그런 선진국은 겉으로 보기에 개인주의가 팽배해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동의 목적에 있어서 단 시일 내에 통합되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그 나라 국민의 지적 수준을 볼 수 있다. 어릴 때 참여하는 교육을 통해서 생활 자체가 참여하는 생활이 당연한 것이다. 그들이 그런 모습을 지니기까지 몬트리홀 국제회의 때부터 계산해 보자면 대략 54년을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SDGs와 ESG가 입에 올린 시점은 2015년부터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전에는 국민들이 UN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만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부분도 있고,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상관없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료를 살펴보니 모 정권 때부터 이미 지속가능성에 대한 것을 우리나라는 준비하고 있었다. 










둘째, 기후 위기에 직면해 있는 나라들이다. 

실제 몸으로 체감하거나 기후 위기로 위태로운 나라들이 자연스럽게 SDGs 실천을 강조하며 실행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로 키리바시공화국의 키리티마티와 투발루가 바다에 잠기고 있다. 이런 나라들은 오래전부터 대외활동을 통해서 SOS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최후 얼음조각'이라는 제목으로 안데스산맥 내 빙하가 다 녹아 이를 지키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나라의 정부는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해당 정부의 국민들이 그리 적극적이 않은 면이 있다는 점이다.  

베네수엘라 훔볼트 빙하[헤이 손 구스만 베네수엘라 메리다 주지사 소셜미디어 캡처]




셋째, 새마을 운동을 했을 때 우리나라 모습을 지닌 국가들이다. 

얼마 전 DEMAIN 내일이라는 다큐를 본 적이 있다. 

그 영상에서 인도 모 지역을 보여주며 공동체의 노력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 영상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이 떠올랐다. 

영상을 보면서 느낀 거지만, 

공동의 목적이 일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때 SDGs와 ESG 실천이 가능할 수 있겠다 싶었다. 


사실 우리나라도 새마을 운동을 통해서 깨끗해진 마을, 전보다 좋아진 소득,, 이처럼 직접적으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다 모두가 운동에 참여하였다. 실제 새마을 운동으로 나라의 환경과 경제가 좋아진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료하다. 바로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상황이지만 아직 많은 시민들이 다른 선진국 시민들처럼 미래에 대한 관심에 적극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들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리스크 영향이 덜한 편이며 시민들이 체감을 한다고 해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 전 국민은 절대 아니다. 게다가 새마을 운동은 이미 졸업한 상태이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기성세대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을 대상으로 좀 더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행동으로 이끄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본다. 

왜냐하면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새로운 것에 그리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입식 교육을 받았던 나와 같은 세대와는 문제 접근 방법과 해결 방법이 이미 다르다는 점이다. 

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변화를 꾀하고, 역으로 그들 부모에게 전달되게 하여 SDGs와 ESG 영향력을 넓히는 방법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이게 가능할까 싶지만, 가능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미 SDGs와 ESG는 전쟁과 경제 위기로 지지부진해 보이지만 후퇴 없이 하나씩 목표를 이뤄나가기 때문이다. 

더 쉽게 이야기해서 우리나라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도록 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제 우리나라가 해외에  주요 원재료를 판매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 유럽의 기준을 따라야만 한다. 유럽은 탄소국경세제도(CBAM)라는 것을 시행함으로써 이미 SDGs와 ESG의 중요성을 밑으로 깔고 시작한다. 즉, 우리나라가 그 기준에 따르지 않으면 아무리 우수한 재료라고 해도 팔지 못한다는 점이다. 


다음 발췌된 기사문을 참고하면 이해가 더 쉬우리라 본다. 


탄소중립에 필요한 전기 요금은? 
유럽연합(EU)은 올해부터 탄소국경세제도(CBAM) 시행에 들어갔다. 철강, 알루미늄 등 5가지 수입품목에 대해 탄소배출량을 의무보고토록 하고, 2026년부터는 실제로 탄소배출량만큼 세금을 물게 하고 있다. EU는 대상품목을 점차 확대할 계획이며, 미국도 이 제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출처: 에너지 경제, 2024년 3월 10일 자 신문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좀 더 빠른 시일 내에 전보다 다른 SDGs와 ESG 변화를 바란다면,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교육이 수반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어쩌면 기성세대들의 노력이라는 것은 더 이상 오염을 배출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실천, 그리고 새로운 세대들의 노력을 응원하며 같이하는 게 더 중요하다 본다. 필요하다면 다음 세대의 요구대로 맞춰 살아가는 것이 더 현명할지 모른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수직체계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수직 체계를 선호하는 아주 심연의 내면적 요소가 있다. 바로 인정과 대접받고자 하는 심리이다. 

그런데 문제는 역량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시간 순대로 수직 체계에서 위에 존재할 경우이다. 물론 그들도 그 이전 세대보다는 달랐던 세대이다. 

어쨌든 이점을 빗대어 설명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문제 해결능력에 있어서 주입식 교육을 주로 받은 기성세대보다는 지금의 학생들이, 나아가 그다음 학생들이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좀 더 개방적이고 깨어 있는 사고로 해결하려는 젊은 학생들 위에 바라는 것은 많고 변화보다 안주하려는 사람들이 버티고 있는 형국이라 변화의 속도는 매우 더딘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수직 체계상 위에 있는 사람들이 한없이 그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에 변화는 늘 S자 곡선을 따를 것이라 본다. 


*S자 곡선, 처음엔 영향이 미비하지만 변화 시점이 되어 빠르게 변화가 되고 다시 안정화되는 현상으로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 적용되는 곡선이라 보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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