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함을 원하노라

사도행전 15장 1-31장 말씀

by 콩지수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26. (25절에 포함됨)

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30.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유대인에게 '이방인'과 크리스천에게 '믿지 않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의미를 같이 한다. 그리고 이 말씀에서 '이방인'은 유대인이 아니지만 이제 막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현재에 적용해보자면, '이방인'은 믿지 않는 사람, 또는 믿음을 이제 막 키워가는 사람, 아직은 믿음이 약한 사람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교회 안팎에 여러 논란이 있다. 믿는 사람은 뭘 해야 된다, 말아야 된다, 또는 믿지 않는 사람에게 이걸 하라고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옳고 그름에 관한 문제들이다.


내가 교회를 떠난 이유는 사실 죄의 문제였다. 나 자신이 매일같이 저지르는 죄. 많은 사람들이 내게 충고했고, 권면하거나 위로했지만 그 어떤 말도 나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왜냐면 나도 아는 내용이었으니까. 죄가 죄인 것을 알았고, 죄는 지으면 안 되는 것도 알았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이 모든 것을 알면서 계속되는 죄, 변하지 않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한때 나에게 죄를 털어놓았던 친구에게 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러면 안 된다는 권면의 말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 친구를 이해할 만한 것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나는 그저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옳은 말, 해야 할 말을 했었다. 그 친구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죄의 문제를 겪고 나니 그때 내가 했던 말들이 친구에게 상처가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에게 용서를 청했다. 이제는 내가 너의 마음을 알 것 같다고, 그때 공감하지 못하고 옳은 소리만 해서 미안하다고.

친구는 괜찮다고, 오히려 나를 위로해줬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나를 포기했었다. 교회를 떠나 방황하면서, 또는 가끔은 교회에 앉아 말씀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찬양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내 마음에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도 스스로 되뇌었다.

응, 나는 안 돼. 하나님을 알면서, 말씀을 알면서, 죄를 알면서도 죄를 떠나지 않다니. 나는 이토록 연약한 존재고, 실천하지 못하는 나는 하나님께 버림받을 거야. 나는 망했어. 나는 하나님이 버린 사람이야.

사람들에겐 웃으며 이야기했다. 솔직히 나는 이제 천국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약간 포기상태야. 지옥에 갈 수도 있겠지. 몰라~ 아무튼 난 좀 그른 거 같아.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마음은 괴로웠다. 하나님은 나를 자꾸 부르시는데, 나는 선악과를 따먹고 벌거벗은 몸이 부끄러워 숨어버린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쳤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도 무서웠고,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도 무서웠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끊임없이 죄를 저지르는 것 맑고는 없었고, 나는 내 영혼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결국, Finally, 하나님은 숨어있던 나를 찾아오셨고...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방식이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때 기습을 받은 내 마음은 녹아버렸다. 그리고 지금 내 마음엔 자유함이 있다.


나는 이방인들이 받은 이 편지가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과 결이 같다고 생각했다.

편지 내용을 내가 이해한 바는 다음과 같다.


'우리(유대인) 중에 어떤 사람들이 우리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당신들(이방인)을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택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사람이자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당신들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했습니다. (중략)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당신들에게 지우지 않는 것이 옳은 줄 알았습니다. 요긴한 것들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스스로 삼가면 잘될 것입니다. 당신들이 평안하기를 원합니다.'


이 편지에는 총 세 가지의 위로가 있다.

첫째, 그들은 된다, 안 된다, 해라, 말아라와 같은 옳고 그름에 대한 이야기가 이방인들에게 괴로움과 혼란을 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들에게도 버거운 율법의 멍에가 이방인들에게는 얼마나 무거운 것이 될지,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는 사도들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된 자들, 이방인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사고함을 보여준다.

둘째, 이 편지를 전할 대상이 이방인이라고 해서 아무나 보내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사람, 그리고 동시에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인 바나바와 바울을 보냈다. 복음을 알게 된 이방인,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율법과 죄의 개념을 알게 되어 괴로워하는 이방인들에게 이 사실은 더 큰 위로였을 것이다. 한 친구의 편지는 그 자체로 소중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전달해주는 편지를 받을 때보다, 편지를 보낸 친구를 함께 알고 친밀한 관계에 있는 친구가 전해주는 편지는 훨씬 더 반가운 법이니까.

셋째, '평안함을 원하노라'. 편지를 보낸 이들은 이방인들이 평안하기를 원했다. 하나님 앞에 그들이 어떤 모양으로 서야 할지 이러쿵저러쿵하며 거룩을 강요하기보다, 그들이 평안함을 누리기를 원했다. 각자의 모양으로 하나님을 섬기되 몇 가지(아마도 유대인들의 기준에서 명확하게 해로운 것)만 '삼가'는 정도로 살아가기를 권면했고, 누군가의 강요로 인함이 아닌 '스스로' 삼가기를 권했다.


결과적으로 이방인들은 이 편지를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했다.


다시 야고보의 말로 돌아간다.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나는 그동안 어쩌면 옳고 그름에 눈이 멀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혔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님도 중요하고, 거룩도 중요하고, 하나님 안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고 또 전하는 것도 중요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그들을 괴롭게 한다면, 다시 성령께 물어야겠다. 내 안에 사랑이 있는지. 상대방을 진정 위하는 마음이 있는지. 그리고 나는, 그들 이전에 나 자신은, 하나님 안에 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편지로 받아야겠다.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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