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멘즈웨어 컬렉션과 한국의 문화 산업
지난 1월 21일, 루이비통 남성복 컬렉션이 공개됐다. 퍼렐 윌리엄스와 니고가 함께해 큰 화제를 모았는데, 컬렉션 자체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디자인보다 쇼의 공간 연출과 그 뒤에 얽힌 이야기가 훨씬 더 흥미로웠다.
루이비통은 오랫동안 파리 기반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La Mode en Images’와 함께 패션쇼 디자인과 프로덕션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퍼렐 윌리엄스가 남성복 라인의 디렉터로 부임하면서 에이전시를 바꿨고, 지금은 엔트워프 기반의 ‘Villa Eugénie’와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퍼렐이 과거 Moncler와 협업할 때 Villa Eugénie와 인연을 맺었고, 그 경험이 이번 변화로 이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Moncler는 항상 Villa Eugénie와 함께 작업한다.) 요즘 들어 Prada의 OMA나 Saint Laurent의 Casper Mueller Kneer 같은 건축회사가 패션쇼 디자인에 참여하면서 관심을 끌고 있지만, 대형 패션쇼를 주로 담당하는 에이전시는 여전히 ‘Bureau Betak’, ‘La Mode en Images’, ‘Villa Eugénie*가 주축이다.
이번 루이비통 남성복 패션쇼는 특히 흥미로웠다. 가타야마 마사미치가 이끄는 일본의 Wonderwall이 디자인을 맡았기 때문이다. 유럽의 대형 패션 하우스가 비유럽권 디자인 팀에게 패션쇼 무대를 맡긴 사례는 전례가 없었다. 가타야마가 루이비통 쇼를 맡을 수 있었던 건 니고의 영향 덕분이었다. 두 사람의 협업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가타야마는 니고의 초기 컨셉 스토어 디자인을 맡았고, 도쿄 국립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니고 기획의 FENDI B.MIX PARTY에서도 무대 디자인을 담당했었다. 이런 인연이 쌓이며 루이비통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번 협업은 일본 문화계의 독특한 특징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국제 무대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계보’를 만들어왔다. 누군가 한 명이 자리를 잡으면, 동료나 후배를 소개하며 서로를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패션계에서는 다카다 겐조와 미야케 이세이를 시작으로 가와쿠보 레이, 야마모토 요지, 와타나베 준야, 아베 치토세, 아베 준이치로 이어지는 계보가 있고, 스트리트 패션에서는 후지와라 히로시, 타카하시 준, 니고로 이어지는 강력한 라인이 존재한다. 건축계에서도 단게 겐조가 마키 후미히코를, 마키가 다니구치 요시오를 미국 건축계에 소개했던 역사가 있다. 도요 이토, 세지마 가즈요, 니시자와 류에, 이시가미 준야로 이어지는 계보는 말할 것도 없고, 하라 켄야와 후카사와 나오토가 이끄는 디자인계의 흐름도 강력하다.
*다른 얘기지만 특히 디자인 분야는 2000년 하라 켄야의 <Re-Design> 전시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 패션이나 건축보다 20~30년 늦었지만,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본질적으로 산업에서 파생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간다. 산업적 결과물이 쌓여야만 그 가치를 논할 수 있으니까. 하라 켄야가 과거에 선택한 방향성을 보면 그의 지성과 통찰에 감탄하게 된다.
이번에 니고가 가타야마를 루이비통 쇼에 기용한 일은 과거 이세이 미야케가 레이 가와쿠보를, 단게 겐조가 마키 후미히코를 국제 무대에 소개했던 순간과 겹쳐 보였다. 역사적인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물론 산업이 부흥하던 시기의 일본과는 다른 환경이지만, 누군가를 국제 무대로 이끌어주는 장면을 라이브로 지켜보는 건 꽤나 인상적이었다.
일본 문화계의 이 ‘서로 끌어올리는 문화’를 볼 때마다 감탄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슬함을 느낀다. 내가 일본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일본 자체를 좋아해서라기보다는, 한국 문화계가 국제 무대에서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그동안 왜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는지를 고민하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을 탐구하다 보면 역사적인 문제와 맞닥뜨려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서구권에서 패션, 건축, 디자인 등의 산업들을 구축해나갈 때, 우리나라는 그 흐름에 함께하지 못했다. 물론 일제 치하가 아니었다고 해도 국제적인 흐름과 함께 산업 구조를 개편해 나갔을지는 의문이지만, 역사에서 '이랬다면 달랐을텐데' 하는 가정은 존재하지 않으니...
작년에 도쿄에서 넘어와 런던에서 지내며 유럽 내에서 한국 예술, 건축, 패션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면서 희망이 생겼다.테이트 모던 터바인 홀(Turbine Hall)에는 이미래 작가의 작업이 걸려 있고, 헤이워드 갤러리에서는 양혜규 작가의 개인전이 진행중이다. 건축계에서는 조민석 건축가의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작업이 있었다. 프리즈 런던 기간의 모든 미술관, 갤러리의 파티를 가보면 한국인들이 주인공인 자리가 꽤 있었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한국은 하라 켄야가 <Re-Design> 전을 기획하던 시점의 일본처럼, 뭔가를 정리하고 앞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단게 겐조와 이세이 미야케가 활동하던 일본 건축가, 디자이너들의 느낌이 지금의 우리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국제적 산업 환경은 다를 수 있지만, 일본이 자리를 잡아온 방법론을 우리가 시도해보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지금까지 한국은 한 사람이 국제 무대에서 성공해도 그 흐름이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우리도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