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포칼립스]③ 노동종말과 기본소득:낙원인가 사육인가

by 몽땅별

AI포칼립스(AIpocalypse)는 인공지능(AI)과 종말(Apocalypse)을 뜻하는 영단어 합성어다.


AI 발달로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이 필요없는 풍요의 시대를 눈앞에 뒀다. 다만 노동이 사라진 자리 의문이 남는다. 인간은 과연 자유로운 주체인가. 도파민에 사육당하는 동물로 전락하는가.


한계비용 제로 사회, 보편적 고소득 예고

AI는 육체노동을 넘어 고숙련 지적 노동까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 생산에 드는 한계 비용은 0으로 수렴할 전망이다.


일론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이를 두고 단순한 기본소득(UBI)을 넘어선 '보편적 고소득(Universal High Income·UHI)'의 시대를 예고했다. AI와 로봇의 생산성이 극대화하면 상품 가격이 극도로 낮아져 인류는 생계 유지를 위한 노동에서 해방돼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는 것이다.


그는 "미래에 노동은 생존 수단이 아니라 취미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인류는 유토피아를 누린다"고 답했다.


오픈AI의 샘 올트만 역시 AI 수익에 대한 지분을 대중에게 배분하도록 제안했다. 노동소득이 사라진 시대에 사람들이 AI라는 거대 생산수단의 주주가 돼 부를 향유하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노동 가치가 붕괴한 세상 가운데, 인간이 주체적 생산자가 아니라 AI가 제공하는 지원금으로 연명하는 수동적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헤겔이 주장한 노동의 가치

노동이 소멸한다는 것은 단순히 월급이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철학자 헤겔에게 노동은 인간정신을 도약시키는 '도야(Bildung)'로 작용한다.


헤겔의 <정신현상학> 속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 따르면 주인은 노동하지 않고 노예가 제공하는 결과물을 즉각적으로 소비(향유)만 한다. 반면 노예는 노동을 통해 욕망을 지연시킨다. 성과를 얻기 위해 사물을 가공하며 고통을 느끼고, '사물의 부정성'에 부딪힌다. 사물의 부정성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물의 저항을 마주하는 것이다.


노예는 '결핍과 지연'의 시간을 통과하며 사물의 부정성을 해소하고자 골몰한다. 이 가운데 노예는 '사유'하는 능력을 갖춘 존재로 도야하게 된다.


헤겔은 "고통스러운 노동을 하는 자가 향유하는 자를 넘어선다"고 말한다. 즉각적 쾌락에 머무는 주인보다 고통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고, 세상에 자기 정신을 실현하는 노예가 더 높은 자의식과 자유를 획득한다는 것이다.


AI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면 우리는 노동하지 않는 주인의 위치에 서게 된다. 이는 언뜻 낙원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도야의 기회를 박탈당한 거대한 사육장일지 모른다.


자발적 사육을 택하는 현대사회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인류는 노동의 괴로움이나 삶의 고통을 느낄 때마다 부작용 없는 완벽한 마약 '소마'를 먹고 즉시 행복을 누린다.


소설 속 통제관 무스타파 몬드는 "안정이 없이는 비극도 없다"며 "사회적 안정을 위해 예술과 종교, 그리고 '인간다운 고뇌'를 제거했다"고 시인한다. 이에 야만인 존은 안락한 사육을 거부하며 이렇게 외친다.


"나는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늙고 추악해질 권리,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를 요구합니다."


현대사회는 지연과 고통이 사라진 세계를 맞이하고 있다. 현대인은 숏폼 콘텐츠와 SNS가 주는 즉각적인 자극에 중독된 '도파민형 인간'을 자발적으로 택하고 있다.


스탠퍼드대 애나렘키 교수는 "스마트폰과 디지털 미디어는 현대판 마약"이라며 "고통을 회피하고 쾌락만 좇는 뇌는 결국 더 큰 결핍과 우울을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즉각적 보상과 편리함이 '디지털 소마'가 되어 인간 사유 능력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AI포칼립스가 던지는 진짜 질문은 "AI가 우리 일자리를 뺏을까"가 아니다. 노동이라는 성장 사다리가 치워진 뒤, 우리는 헤겔이 말한 '도야하는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머스크와 올트만이 설계한 낙원에서 소마를 먹으며 사육당하는 가축이 될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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