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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ungoo Feb 20. 2024

그림쟁이의 남편 - 01

이토록 평범한 그림

어쩜 이토록 평범할 줄이야! 현재 나에 대한 한 줄 자평이다. 40년 인생의 결과가 이렇게나 평범하다니 어디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럴 것이, 어느 누가 본인의 평범한 40세를 굳이 기대까지 해가며 손꼽아 기다리겠는가. 그러니 오늘의 이토록 평범한 나를 맞이함이 실망스러운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그렇지만 나처럼 분별력 있는 사람이라면 실망스러운 결과에 대한 고찰을 당연히 빠뜨리지 않는다. 실망한 이유는 단순하다. 나의 40세는 반드시 특별하리라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간의 삶이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에게 유난히 관대한 대견스럽고 일관적인 나를 향한 신뢰를 한사코 의심치 않았다. 사실상 분별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 바로 그 불변의 순수한 믿음으로 인해 나이 든 것만으로도 서러울만한 불혹의 남자는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여 실망스럽다던 그 결과에 대하여 이의신청하는 바이며 재평가를 요구하고자 한다, 나 자신에게.


단편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김연수)에서는 평범한 미래를 기억하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미래를 기억하라니, 도대체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언뜻 미래 지향적으로 살라는 듯 보이지만 작가의 말은 오히려 현재 시점에 활용될만하다. 지금을 사는 우리가 그토록 평범한 미래가 올 것이란 사실을 기억할 수만 있다면, 현재 우리를 뒤흔드는 시련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초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직면하는 많은 걱정들, 그들은 마치 남아있는 전인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치명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 양 협박한다. 평범한 미래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 수많은 협박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침착하게 분별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본인에게 진정 가치 있는 일들을 선별하여 보다 유용한 오늘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분별력을 소유한 훌륭한 나의 미래는, 당연하지만 또 그저 평범하다. 컴퓨터 앞에서 이렇듯 대수롭지 않은 글 따위를 쓰거나 심심풀이 유튜브 영상이나 보고 있을 60세의 나를 기억하라.


평범한 미래를 받아들이라니, 기대도 설렘도 없는 수수한 결과를 향해 꿈도 야망도 없이 살아가라는 뜻으로 여길수도 있겠다. 우리는 평범함의 가치를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의 평범이란 타인의 관점에선 어떻게 보일까. 남들 눈에는 나의 수수함이 특이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개개인이 느끼는 평범함이 필연적으로 상대적인 특성을 가진다면 그것은 주관적 특수성을 지닌 것이 아닐까. 따분하고 지겹게만 보이던 나의 평범함이 바로 개성에서 비롯된 독창적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도달한다면, 그 의심을 한번 믿어보자. 이러한 의견에 대해 굳이 강요할 생각은 없다, 받아들이는 마음은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의 것이므로. 


이토록 평범한 그림 (종이에 유화)


바로 지금 우리 부부도 주관적인 평범함 속에 살고 있는 듯하다. 아내와 나는 조금 무리하여 낡고 조그만 작업실을 임대했다. 그 공간에서 아내는 그림을 그릴 것이며, 퇴근한 나는 한쪽 구석에서 책을 보거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과거의 내가 이런 오늘을 기억할 수 있었다면 방황과 좌절의 총량이 줄어들 수 있었을까, 적어도 아내는 조금은 그러했을 것이라 동의한다. 확실히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많이 다른 40세의 내가 되었다. 어쩜 이토록 평범할 줄이야. 그렇다. 짧지만 여태 살아온 삶의 결과가 바로 오늘이다. 우리는 이렇게 되었고 결과에 대해 실망하지도 기뻐하지도 않는, 적당히 괜찮은 보통의 상태라고 재평가되어야 마땅하다. 


작업실의 월세를 조금이라도 충당하기 위해 아내는 화실을 겸하고자 하였다. 등록한 화실생은 아직 없다. 어쨌든 화실의 이름은 '이토록 평범한 그림'이다.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의 책제목을 인용하였지만, 무엇보다 평범하게 살길 바라는 아내의 소망이 함께 담겨있다. 화실 이름을 결정하고 아내는 '이토록 평범한 그림'을 그렸다. 간판이나 포스터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우리의 일상적 모습과 반려동물인 거북이 두 마리를 그림에 담았다. 부부가 있는 수평적 구성과 색감을 보고 혹여 데이비드 호크니의 '나의 부모님'을 연상할 수도 있겠다. 맞다. 어디선가 본 듯한 친숙한 느낌을 주고 싶어 바로 그 그림을 오마주 하였다. 유화용 종이에 그려진 이 그림은 MDF패널에 붙여 창 한편에 걸려있다. 아내는 두려움과 기대감 속에 여전히 첫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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