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빛 바다, 다채로운 현지 요리, 고딕 양식의 대성당 어우러진 곳
여기는 어쩌다 SNS 명소가 됐을까요. 왜 요즘 트렌드를 아는 사람들은 이 장소를 찾을까요. 구희언 기자의 ‘#쿠스타그램’이 찾아가 해부해드립니다. 가볼까 말까 고민된다면 쿠스타그램을 보고 결정하세요.
수년 전 체코 프라하에 갔을 때였다. 프라하에 한국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야밤에 카를교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여성이 다짜고짜 “저기요! 길 좀 물을게요!”라고 (한국인이냐고 묻지도 않고) 한국어로 물어볼 줄이야. 프라하에서는 어느 식당에 들어가도 한국인이 있어서 심지어 그 자리에 합석해 메뉴를 셰어하기도 했다. 좋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한국인 없는 곳에서 온전히 이방인의 느낌을 가져보고 싶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기자가 최근 다녀온 스페인 마요르카가 답이다. 바르셀로나, 마드리드는 많이들 가도 마요르카는 축구선수 이강인의 팀이 있다는 것 빼곤 아직 한국에 그리 알려지지 않아 한국인, 아니 동양인 자체를 길에서 보기 어려웠다.
여행 가기 전 서점에서 스페인 여행 책을 몇 권 샀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대부분 2020~2021년 버전이었다. 300쪽 넘는 책에서 마요르카 관련 내용은 4쪽뿐. 동행인과 “그만큼 볼 게 없는 곳이라 분량이 적은 거다” “아니다, 아직 사람이 많이 안 가서 정보가 적은 거다”로 논쟁하다 직접 가서 두 눈으로 보고 확인하기로 했다. 참고로 ‘홍콩 ‘짠내투어’ 하려다 얼결에 ‘맛있는 녀석들’ 찍다(주간동아 1137호)’ 이후 두 번째 ‘내돈내산’ 해외 핫플레이스 #쿠스타그램이다. 모든 정보는 2022년 10월 말을 기준으로 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바르셀로나 엘프라트공항까지는 직항으로 14시간 30분가량 걸린다.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일부 항공편이 러시아 영공을 우회해 운항 중이라 비행시간이 2시간 정도 늘었다. 시차는 8시간(서머타임에는 7시간). 이후 엘프라트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고 50분가량 가면 팔마데마요르카공항에 도착한다.
기자는 바르셀로나 공항에 내리자마자 조금 대기했다 당일 늦은 시간 마요르카행 비행기를 탔다. 공항에 도착하니 자정이 다 돼 첫날은 공항에서 가깝고 저렴한 숙소에서 묵었다. 스페인에서는 호텔 체크아웃을 할 때 도시세를 별도로 내야 하니 추가금이 나왔다고 당황하지 말자. 보통은 입실할 때 미리 알려준다.
마요르카는 독일인이 사랑하는 지중해 휴양지다.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화가 호안 미로가 마지막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신혼여행을 목적으로 마요르카에 다녀왔다는 후기를 여럿 볼 수 있다. 국내 명소와 비교하자면 제주 느낌이랄까. 붐비는 팔마 시내를 제외하면 다른 지역은 한산했고, 드라이브하다 어디에 주차해도 멋진 해변이 펼쳐지는 점이 그랬다. 현지에서는 기내와 버스, 기차, 트램, 택시 같은 대중교통을 탈 때만 마스크를 쓰고 실내외에서는 쓰지 않아도 됐다. 날씨는 한국의 10월 날씨보다 따뜻해서 낮에는 겉옷이 필요 없었다.
마요르카를 여행할 거라면 제주처럼 렌터카를 이용하는 게 좋다. 팁이 있다면 너무 큰 차를 빌리는 건 비추. 회전교차로가 엄청 많은 데다 도로 자체도 크지 않고, 소도시로 가면 골목길이 정말 좁았다. 명소 근처 공영주차장이 꽉 찼다면 길가를 잘 살펴 흰색 선이 있는 무료 주차 구역을 찾아야 하는데, 차체가 크면 주차도 어렵다. 노란 선이나 주황 선이 있는 곳은 개인 주차 구역이니 피하자. 자칫하면 타지에서 견인될 각오를 해야 한다.
마요르카의 최대 도시 팔마 구시가지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고딕 건축 양식의 마요르카 대성당이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성당은 태양 빛을 받으면 빛나는 모습 덕에 ‘빛의 성당’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입장료는 7유로(약 9566원). 현장 예매는 줄이 길다. 온라인에서 표를 사 시간을 절약하자.
안으로 들어가면 주 제단 위에 놓인 커다란 철 캐노피가 보인다. 바르셀로나 관광업계를 먹여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닌 ‘가우디 투어’의 주인공, 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1909년 설계한 것이다. 가우디는 19세기 중반 지진으로 훼손된 성당 재건이 결정됐을 때 복원 사업에 참여했다.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처럼 눈 돌리는 곳마다 가우디 손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성당 관람을 했다면 바로 옆 알무다이나 궁전과 왕의 뜰을 둘러보거나(입장료 별도), 항구에서 신선한 해산물 타파스나 파에야에 술을 곁들이는 것도 좋겠다. 근처에 구글 맵 평점 4.5점이 넘는 뽈뽀(문어) 맛집도 있다. 배가 안 고프다면 국내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마시모두띠, 자라 같은 스페인 브랜드 매장을 둘러보자. 독특한 감성의 소품 매장도 많다.
오직 이곳을 보기 위해 마요르카를 찾는 이들도 있다는 아름다운 해변 ‘칼로 데스 모로(Caló des Moro)’. 가기 전 게티이미지 등 이미지 판매 사이트에서 그림 같은 마요르카 사진을 봤는데 그게 이곳 사진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보정 없이도 그런 광경을 만날 수 있었다.
절경을 보러 가는 길이 쉽지는 않다. 일단 주차가 난관인데,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어렵사리 한 뒤에도 한참을 걸어야 한다. 골목골목으로 들어가면서 길을 찾아야 하는데, 중간에 데이터가 안 터지면 난감할 수 있으니 구글 맵을 확대해 중요한 포인트는 캡처해두자. 반대편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몸을 말리며 걸어오는 외국인들이 보인다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도착한 뒤에도 물에 발을 담가보려면 깎아지르는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얼마나 가파른지 중턱에 있는 나무는 사람들이 하도 잡아서 원목 가구처럼 매끄럽게 변해 있었다. 슬리퍼보다 아쿠아슈즈 등 발을 보호할 수 있는 신발을 신고, 짐을 따로 둘 곳이 없으니 최대한 짐을 줄여서 가자. 그렇게 고생해서 내려가면 유명 스포츠음료 색깔의 바다가 펼쳐진다.
또 다른 해변인 ‘알무니아(Cala s’Almunia)’로 내려가는 길도 있는데, ‘칼로 데스 모로’로 가려다 길을 잘못 들면 거기로 내려가게 된다. 물론 그곳도 예쁘고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화장실도, 샤워실도 없기에 몸을 말릴 타월이나 손발을 씻을 생수를 차에 챙기는 게 좋다. 입고 있던 수영복은 어지간하면 뜨거운 태양 빛 때문에 차로 걸어가는 동안 마를 것이다.
골목이 예쁜 발데모사는 음악가 프레데리크 쇼팽의 흔적을 간직한 마을이기도 하다. 팔마에서는 20㎞ 정도 떨어져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댄 후 미리 주차권을 사 차에 올려두고 관광하면 된다. 5시간 주차권이 4유로(약 5470원).
이곳은 쇼팽과 그의 연인이던 조르주 상드가 머문 카르투하 수도원(입장료 10유로)과 쇼팽 박물관이 있다. 연인이라는 단어에 깜빡 속을 뻔했지만 둘 사이를 파보면 생각보다 낭만적이지는 않다. 쇼팽은 발데모사에 머물며 ‘빗방울 전주곡’을 만들었다. 다만 쇼팽이 1838년 수도원에서 겨울을 보낸 건 맞지만 수도원 내 쇼팽의 방과 피아노는 실제 그의 것이 아니라는 논란이 있었다. 2011년 팔마 지방법원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2번 방이 아닌 4번 방이 진짜 쇼팽의 방이고, 피아노도 실제 쓴 것과 다르다며 오해 소지가 있는 광고를 철회할 것을 촉구하는 판결을 내렸다. 논란이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쇼팽 애호가가 이곳을 찾는다.
기자는 건물은 외관만 보고 주로 길에서 시간을 보냈다. 거리 곳곳이 그림 같았다. 여기 온 관광객은 다 간다는 감자빵 맛집 ‘칸 몰리나스 제과점(Pastisseria Ca’n Molinas)’의 뒷마당 오렌지나무 그늘에서 빵과 함께 스페인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코르타도(에스프레소와 우유 비율이 일대일인 커피) 한 잔을 즐기면 바로 천국이 펼쳐진다. 우리가 생각하는 ‘유럽의 아기자기하고 예쁜 골목길’ 사진을 잔뜩 찍을 수 있다. 창틀 대부분이 초록색이라 인생샷까지 생각한다면 옷 배색을 맞춰가자.
소예르는 발데모사와 가까워 일정이 짧다면 보통 두 곳을 당일치기로 다녀온다. 일정이 여유롭다면 두 마을에서 각각 숙박하며 현지인의 여유를 즐기는 것도 추천한다. 소예르와 발데모사는 22㎞ 떨어져 차로는 30분 정도 걸린다.
19세기 소예르의 전성기를 이끈 올리브와 오렌지, 레몬나무를 길에서도 볼 수 있다. 소예르와 소예르항 사이에는 빈티지한 목재 트램이 오간다. 편도 7유로. 티켓은 트램에 타 직원으로부터 살 수 있다. 마요르카 여행 내내 한국인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유일하게 한국인 2명을 이곳 바닷가에서 봤다.
관광 포인트는 트램과 바닷가.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다 멋진 풍경이 보고 싶어졌다면 등대까지 올라가 지중해 일몰 전망을 볼 수도 있다. 등대는 폐쇄됐지만 이곳에 오르면 소예르항이 한눈에 보여 차량(10분)이나 도보(30분)로 가는 이가 많다. 인도가 따로 구분돼 있지 않으니 걸어서 왕복할 거라면 커브길에서 나오는 차를 조심하자. 일몰 즈음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마음에 드는 바닷가 바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자. 낮의 바다와 밤바다는 운치가 또 다르니까.
스페인에서는 시에스타의 영향으로 끼니를 여러 차례 나눠서 먹는다. 이 때문에 일하다 밥 먹는다가 아니라, 식사 중간에 잠깐 일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 끼니마다 명칭이 있다. 기상하자마자 간단히 먹는 데사유노(Desayuno, 오전 8시쯤), 알무에르소(Almuerzo, 오전 10~11시쯤), 코미다(Comida, 오후 2시쯤), 메리엔다(Merienda, 오후 6시쯤), 세나(Cena, 오후 9~10시쯤). 3번째 식사와 4번째 식사 사이 빈 시간이 뜨거운 태양을 피해 낮잠을 자는 시에스타 타임(2~5시)이다.
가장 푸짐하게 먹고 식사시간도 긴 건 코미다, 우리가 생각하는 스타일의 저녁식사는 세나다. 중간에는 타파스나 핀초스같이 가벼운 메뉴로 식사한다. 평소 나이트 라이프나 야식을 즐겼다면 와서도 바로 적응할 것이다. 대부분 식당이 늦게까지 열어 관광을 마치고 숙소 근처로 온 뒤에도 식당 선택의 폭이 넓다.
구글 맵에서 평점 4점 이상 필터를 적용하면 괜찮은 식당과 디저트 가게가 여럿 나온다. 단, 소금 간이 굉장히 센 편이라 짠 걸 잘 못 먹는다면 주문 전 “포카 살”(Poca sal: 소금 조금), 혹은 “신 살”(Sin sal: 소금 없이)이라고 말하자. 사실 달달한 상그리아나 끌라라 맥주를 곁들이면 특유의 짠맛도 즐길 만하다.
#군사 요새에서 바다 보며 한 끼 ‘시클럽(The Sea Club)’
마요르카 고급 호텔인 캡로켓 안에 있는 레스토랑이다. 캡로켓은 사암으로 지은 군사 요새를 호텔로 개조한 호텔이다. 숙소 예약도 어렵지만 식당 또한 가기 전 온라인 예약이 필수. 호텔 입구부터 레스토랑까지 버기카를 타고 이동 가능하다. 바다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테이블에서 요리와 샴페인을 즐길 수 있다. 호텔 숙박비는 1박에 60만~120만 원 선. 호텔 투숙객이 아니어도 이용 가능해 기자처럼 식당만 따로 예약해 오는 이가 많다. 랍스터 파에야 74유로(2인분, 약 10만 원), 티본스테이크 82유로(2인분, 약 11만 원). 다른 마요르카 식당보다 간이 세지 않다. 틴토 8유로(1잔), 애플타르트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각 10유로.
#2022 미쉐린 가이드 수록의 맛 ‘퓨전 19(Fusion 19)’
플라야 데 무로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이다. 여기도 예약 필수. ‘The Folk’ 애플리케이션에서 손쉽게 예약할 수 있다. 이름 그대로 퓨전 요리의 향연이다. 마요르카 요리부터 지중해 요리,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요리까지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데, 모두 이 섬에서 조달한 재료로 만든다. 직원이 메뉴를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그 자리에서 뭔가를 뿌리거나, 갈거나, 섞어서 음식을 완성한다. 레스토랑 콘셉트대로 오감을 깨울 수 있다. 아마 거품이 올라간 비누 바 모양의 첫 접시부터 사진을 찍게 될 것이다. 마요르카산 와인을 곁들이는 걸 추천한다. 총 13스텝, 28가지 요리를 만날 수 있는 디너 코스(시식 메뉴)는 1인당 80유로, 와인 1잔 6~8유로. 식사는 2시간 30분에서 3시간가량 걸린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https://weekly.donga.com/Library/3/all/11/37551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