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꽤 예쁜 데다, 패션감각 뛰어나고 애교철철이라, 언제나 나의 '워너비'요 '롤 모델'같은 존재였다.
미모가 너무 출중했던 탓일까?
언니는 내가 대학생이 되던 해, 스물다섯 어린 나이로 납치되듯 어떤 'rich man'이랑 결혼을 했다.
이후 언니는 아들 둘 낳으며 '전업주부'가 되어버렸고 난 대학생이 되고 이후 취업 및 결혼등으로 '서울'에 터를 잡고 살다 보니, 서로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아주 가끔 명절 혹은 , 집안 경조사에 만나는 게 전부였지만, 언니는 늘 나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이면에는 , 언니가 결혼 5년 만에, '마마보이' 남편 때문에 이혼한 이유도 있었다.
이혼했지만, 언니는 두 아들도 훌륭히 잘 키워냈고, 미모+ 애교+ 사업능력 이렇게 환상적인 3 콤보를 잘 발휘하여 본인도 개인사업을 잘 운영하여 나름 성공적인 삶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아들 장가보내고, 홀로 제주에 남다 보니, 서서히 근원적인 외로움을 내게 많이 호소해 왔다.
게다가, 내가 퇴직했다는 소식에 언니는 더 열정적으로 "여행 가자! 코로나로 몇 년 발이 묶이니 답답하다!
네가 여행 많이 다녀봤으니, 계획 좀 잘짜봐라. 우리 즐거운시간 많이 좀 가져보자!"라며 유혹의 손길을 뻗쳐왔다.
사실, 나도 퇴직은 했지만, 코로나로 멈춘 삶을 보내느라, 답답함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터라, 별 고민 없이 흔쾌히 ok를 외쳤다.
이때 큰딸이, "엄마! 아무리 어려서 친했던 사촌자매라지만, 안 보고 산 세월이 거의 30년 아니 40년 가까이 되는데 10박씩이나 여행을 갈 수 있겠어? 나도 친구들이랑 여행 갔다가 사이 안 좋아지는 경우가 꽤 있더라고..
그러니 신중히 생각해 보세요!"라고 하는 거였다.
나는 "이 언니는 친자매이상으로 나랑 아주 특별한 관계야! 늘 뜻도 잘 맞고 싸워본 적도 없고, 더구나 패키지로 가는데 싸울 일이 뭐가 있겠니? 라며 다가올 '애매모호한 불편함(?)'은 아예 예측도 못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결혼한 지, 27년째다.
운 좋게 항공사에 근무하는지라, 여행은 꽤 많이 다닌 편이지만, 늘 가족과 혹은 남편과의 여행이었다.
'사촌언니'와의 여행은 오묘하게 떨리고 기대되면서도 묘한 부담감이 있었다.
언니는 계속 "네가 다 알아서 해!""난 너만 믿어!"" 이런 식이었다.
코로나 백신 증명서 등등 다른 때와 달리 준비거리도 많았다.
준비과정부터 언니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각종 라면/간식거리며 혹은 얼굴팩도 종류별로 준비하고, 핸드폰 유심도 대신 주문했다. 그러느라 내 가방크기는 점점 커져만 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했고, 첫 여정을 풀기 위에 어느 호텔에 도착했다.
알다시피, 유럽의 호텔은 매우 작고 초라하다.
그런데, 환갑 넘은 나이에도 패셔니스타 언니는 매우 많은 옷과 신발과 화장품 등을 준비해 왔고.
나 또한 꽤 뚱뚱해진 가방을 가져온지라, 두 사람이 가방을 펼쳐놓자마자, 방안은 금새 가득해졌다.
가방을 펼치자마자 벌써 정신없어 보이는 어지러운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 언니는 창문 가까이 큰 책상이 있고 콘센트도 많고 조명도 좋고 좀 더 여유공간이 있는 쪽에 가방을 잽싸게 먼저 펼쳐놓고 그쪽 침대에 살림살이를 늘어놓고 있었다.
만약, 우리 부부가 여행을 왔다면, 남편이 내게 먼저 양보했을 좋은 위치였다.
그때부터, 앞으로 여행동안, 우리가 머물 호텔에 갈 때마다,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가 예측되며, 슬슬 걱정이 몰려왔다.
이른 새벽시간부터 아침식사 예정인지라, 내가 먼저 일어나 샤워를 했다.
다시 언니가 샤워하러 들어가면, 나는 어두운 방에서 화장과 헤어드라이를 해야 했다.
유럽 호텔방은 매우 어두운지라, 손거울 하나 들고 대충 건성건성으로 화장을 했다.
콘센트 있는 쪽은거울도 없으니, 드라이도 그저 느낌적으로만 했다.
머리를 말리기만 하지 기교를 부리지도 못했다.
남편 같으면 샤워를 금새 끝내고, 밝은 화장실 거울에서 편안히 내가 화장하고 머리도 매만지게 해 줬으련만,,,,
언니는 샤워 시간도 오래 걸렸고, 샤워를 끝낸 후, 밝은 화장실 거울에서 맘껏 꽃단장을 하고 나왔다.
늘 이런 식의 여정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남녀 부부가 여행하는 게, 호텔 사용에도 최적화된 거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두 여성이 화장대 하나를 두고, 묘한 신경전 (?) 분위기 였지만, 그거 갖고 싸우기보다는 '양보'가 낫다고 생각하면서도 맘껏 꾸미지 못하는 나의 외모에 은근 화가 나기도 하고,, 뭐 그런 반복이었다.
여성들에게 있어, 여행지에서의 '화장'과 '헤어'가 월매나 중요한가 말이다.!!!! ㅎㅎㅎ
이뿐만이 아니었다.
언니는, 외모에 자신이 있는 만큼 '사진 찍기'에 열광적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려면, 이어폰을 항상 껴야 하는데, 사진에 이어폰 줄이 나오는 게 싫다며, 이어폰마저 빼버리는 것이다. 그러고는 자꾸 나에게 몇 시까지 모이는 거냐? "여기 관광지 이름은 뭐냐?' 등등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거였다.
상황에 따라서는 셀카봉, 양산, 겉옷, 모자등 그녀의 소지품도 대신 들어주며 사진을 찍어줘야 했고,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한 장소당 최소 5-6 컷은 무조건 찍으라고 주문했다.
방문하는 관광지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소위 '인증 샷'에 열광적이었던 것이다.
가이드 설명 듣고 있는 나를 굳이 불러내어 사진을 먼저 찍어달라 하고, 내가 찍을 상황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 나는 엑스트라 가득한 상황에서 사진을 찍게 되는 거였다.
게다가 언니는 사진을 아무렇게나 막 찍어버리니, 건질만한 사진도 하나 나오지 않았다.
대신 공들여 인물/ 배경/구도 맞춰가며 심혈을 기울여 내가 찍어준 사진을 보며 언니는 엄청 흡족해하는 거였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계속 남편 생각만 났다.
남편은 평소 사진에 관심이 많은지라, 사진 찍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늘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뒷모습/옆모습/그냥 걷는 모습 등등 멋진 배경과 어우러지게 사진을 매우 잘 찍어주는 사람이었다.
너무 공들여 찍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게 단점이라,,,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대충 좀 찍으라"며 핀잔준 적도 많았지만, 내가 이 상황에 놓이고 나니, 남편이 월매나 고마운 인간이었는지가 자꾸 깨달아졌다.ㅎㅎ
"그놈의 사진이 뭐라꼬?.. 이런 거로 삐지지 말자. 즐거운 여행 와서 괜히 언니랑 사이 틀어지고 가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라며... 생각하다가도 엉망징창 내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화가 나고 그런 상황의 반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 기분을 맞춰주려 최대한 노력했건만.... 나의 화가 폭발하는 시점이 있었다.
마지막날, 가이드는 특별히 우리에게 3시간의 쇼핑시간을 주겠다며, 마드리드의 번화가에 우리를 풀어놓았다. 나도 나름대로 골목골목 돌아보고픈 맘이 있었는데, 언니는 무조건 나를 백화점으로 끌고 가더니, 옷쇼핑에 열을 올리는 거였다.
솔직히 우리나라 백화점 옷보다 디자인이든 퀄리티든 좋아 보이지도 않고 비싸기만 한데, 언니는 어떤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처럼 내게 "골라달라! 어울리는지 봐달라! 내 사이즈 있는지 물어봐 달라! 환율로 계산해 봐라! TAX REFUND 신청해라!" 등등 옷 서너 개 사고 나니 이미 쇼핑시간은 다 지나가고 있었다.
늦으면, 일행들에게 민폐이니, 빨리 가자고 재촉해도, 이 정도는 괜찮다며 느긋하기까지..(이런 식의 태도는 사진 찍을 때도 그랬다)
늘 일행들에게 "죄송하다"를 연발해야 했고 난 속으로 "왜 나까지 계속 사과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계속계속 기분이 나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