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식탁 앞에서 마주한 나의 편견
처음 상하이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현지 친구들이 나를 광둥 식당으로 데려갔다. 메뉴판을 보는데 생소한 글자들 사이로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친구들이 무언가를 추천하며 신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직 중국어가 서툴러 그들이 시킨 요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음식이 나왔을 때,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접시 위에는 내가 본 적 없는 형태의 해산물이 올라와 있었다. 모양도 그렇지만, 그것을 보는 현지인들의 눈빛이 유난히 반짝였다.
나는 용기를 내어 한 점 입에 넣었다. 식감은 쫄깃했고, 맛은 생각보다 담백했다. 그런데도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이게 뭐지'라는 의문이 맴돌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자주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어떤 음식은 먹을 수 있고, 어떤 음식은 먹기 어려울까. 그 기준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상하이에 사는 동안 한국에서 온 지인들을 자주 만났다. 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음식'이었다.
"거기선 뭐 먹어? 정말 개도 먹어?"
"원숭이 뇌 같은 것도 먹는다며?"
처음에는 그런 질문이 듣기 거북했다. 왜냐하면 내가 매일 먹는 음식은 한국 음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부, 채소, 국수, 밥. 그게 내 일상의 식탁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들에게 '중국 음식'은 어떤 이미지일까. 그리고 그 이미지는 어디서 만들어진 걸까.
며칠 전, 한국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어머니는 친척 집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시다가 문득 이런 말을 꺼냈다.
"거기서 홍어를 내오더라. 나는 그 냄새 때문에 도저히 못 먹겠더라."
전라도 사람들에게 홍어는 잔칫날 빠질 수 없는 음식이다. 삭힌 특유의 강한 향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걸 즐기는 사람들은 그 맛을 그리워한다.
그런데 어머니는 홍어 냄새가 싫다고 하셨다. 같은 한국인이면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 그것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하물며 다른 나라의 음식 문화를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한국에도 외국인이 놀라는 음식이 많다.
· 살아있는 낙지를 통째로 먹는 산낙지
· 강한 냄새가 나는 홍어
· 매운맛이 지나친 김치
· 익숙하지 않은 발효 냄새의 된장
이 모든 것이 한국인에게는 일상이지만, 처음 접하는 외국인에게는 충격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
음식은 그 땅의 역사와 기후,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더운 지방에서는 음식이 빨리 상하기 때문에 향신료를 많이 쓰게 되었다. 산간 지역에서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가공식품이 발달했다. 바다가 가까운 곳에서는 해산물 요리가, 내륙 지역에서는 육류 요리가 발달했다.
중국은 땅이 넓다. 북쪽의 건조한 기후, 남쪽의 습하고 더운 날씨, 서쪽의 높은 산맥까지. 그 모든 환경이 각기 다른 음식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어떤 지역에서는 단백질을 얻기 위해 곤충을 먹기도 했고, 어떤 지역에서는 발효 기술을 발전시켜 독특한 저장 음식을 만들기도 했다.
낯설게 느껴지는 그 음식들에도, 결국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상하이의 한 식당에서 한국인 관광객 무리를 만났다. 그들은 메뉴판을 보며 당황한 표정이었다.
"여기 뭐 파는 데야?"
"믿을 수 있는 음식일까?"
나는 그들에게 간단한 요리를 추천해 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도 그랬을까. 모든 것이 낯설고 불안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깨달았다. 낯설음은 결국 익숙함의 문제라는 것을. 그리고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금은 내가 그들에게 추천해 준 그 음식을 나도 자주 먹는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그 맛이 그리울 때도 있다.
며칠 전, 남편과 함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간단한 채소볶음과 국, 그리고 밥.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식탁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이 음식들,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어떤 사람은 너무 싱겁다고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맛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 음식들이 이제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20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며칠 후, 나는 다시 그 광둥 식당을 찾았다. 이번에는 내가 친구들에게 추천하는 입장이 되었다.
"여기 요리 괜찮아. 한번 먹어봐."
친구들은 망설이는 표정이었지만, 용기를 내어 한 점 집어 먹었다.
"오, 괜찮은데?"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낯섦은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조금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된다.
중국 사람들이 원숭이 뇌를 먹는다는 이야기는 대부분 과장된 신화에 가깝다. 하지만 설사 그러한 음식이 존재한다 해도, 그 이면에는 그 지역의 역사와 환경이 담겨 있을 것이다.
낯선 음식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거부감을 느끼고 외면하거나, 아니면 그 낯섦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하거나.
나는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게 20년 전 상하이에 처음 왔을 때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이었으니까.
오늘도 나는 상하이의 작은 식탁에 앉아 있다. 앞에는 한국 음식과 중국 음식이 섞여 있다. 김치와 함께 중국식 볶음요리가 있고, 된장국 옆에는 샤오룽바오가 놓여 있다.
이 모든 것이 이제는 자연스럽다. 낯설지 않다.
그러나 가끔은 생각한다. 이 자연스러움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것인지를.
음식은 단순한 영양 공급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중국의 다양한 음식, 한국의 독특한 음식, 그 모든 것이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넓은 세상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낯선 음식이 던진 질문, 그것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나는 왜 이것을 낯설다고 느끼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는 순간,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