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부모는 왜 밤늦도록 학원 앞에 서 있을까

26년 동안 중국에서 살며 내가 이해하게 된 풍경

by 경계인
2000년, 나는 상하이에 도착했다.


그해 가을, 나는 상하이의 낡은 홍차오 공항에 내렸다.


공기에는 낯선 냄새가 섞여 있었다. 습기와 먼지, 그리고 미처 다듬어지지 않은 미래의 냄새. 푸동에는 아직 논밭이 남아 있었고, 황푸강 건너편의 옛 시가지엔 낡은 석탄 난로 연기가 피어오르곤 했다.


밤이 되면 거리는 빨리 어두워졌다. 가로등은 드문드문, 간판은 대부분 꺼져 있었고, 사람들은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의 중국은 조용했다. 아니,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나는 그때 학원이라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골목에서 뛰어놀았고, 부모들은 문 앞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시절 나는 생각했다.

여기는 참 느리게 사는구나.


그 풍경을 처음 본 것은 8년이 흐른 뒤였다.


2008년, 상하이는 달라지고 있었다.


푸동의 논밭은 사라지고 유리로 뒤덮인 빌딩이 들어섰고, 낡은 골목은 하나둘 철거되기 시작했다. 거리는 더 밝아졌고, 밤에도 사람들이 북적였다.


그날 밤, 나는 우연히 한 건물 앞을 지나고 있었다.


시간은 밤 9시 47분.


주변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는데, 유독 그 건물만 불이 환했다. 4층짜리 건물 전체가 형광등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창문 너머로 아이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선생님이 칠판 앞에 서 있었다.


건물 앞에는 부모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한 어머니는 벽에 기대어 교실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또 다른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며 길 건너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피로가 배어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아이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나이에 비해 어깨에 메기엔 너무 커 보이는 가방을 질질 끌며 걸어 나왔다.


한 여자아이가 나와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엄마를 찾는 눈빛이었다. 곧 한 중년 여성이 다가가 아이의 가방을 받아 들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함께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 풍경은 점점 깊어졌다


그 후로 나는 그런 장면을 자주 목격했다.


대도시의 밤은 그렇게 학원가를 중심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밤 10시, 11시가 되어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학원에서 나와 곧바로 다음 학원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간단히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또다시 교실로 들어갔다. 부모들은 운전대를 잡은 채, 혹은 건물 밖에 선 채로 기다렸다.


비 오는 날도, 눈 오는 날도 다르지 않았다.


어느 겨울밤, 나는 학원 앞에 서 있는 한 어머니를 보았다. 날씨는 영하로 떨어져 있었고,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호호 불며 미처 해결하지 못한 저녁을 호빵 하나로 때우며 아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최소 한 시간은 그렇게 서 있는 것 같았다.


아이가 나왔을 때,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외투를 벗어 아이에게 둘러주었고 아이의 가방을 얼른 내려 자신의 어깨에 메었다.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엄마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걸어갔다. 등 뒤로 학원 건물의 불빛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그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본 적 있는 풍경이니까. 하지만 그날따라 그 장면이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았다.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가오카오, 그날을 위하여


중국에는 '가오카오(高考)'라는 시험이 있다.

한국의 수능이라고 보면 된다.


매년 6월 7일과 8일, 전국이 숨을 죽이는 이틀이다. 수험생을 태운 택시는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고, 경찰은 시험장 주변 도로를 통제한다. 공사장의 소음은 멈추고, 차량들은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그날을 위해 멈춘다.


이 시험 하나로 인생이 갈린다. 칭화대, 베이징대에 들어가는 길이 열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하면 지방의 이름 모를 대학으로 가야 할 수도 있다. 대기업과 공기업의 문은 명문대 출신에게만 열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모들은 생각한다.


지금 아니면 언제 기회가 있겠어.


그 생각이 그들을 학원 앞에 서 있게 한다. 밤늦도록, 비바람 속에서도.

체면이라는 이름의 무게


중국에는 '몐쯔(面子)' 곧 체면이라는 말이 있다.


얼굴, 체면, 자존심. 이 단어 하나에 가족의 모든 것이 담긴다.


명절이 되면 친척들이 모인다. 밥상에 둘러앉아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오간다.


"아이, 어느 학교 다녀?"

"성적은 어떤가?"


이 질문 앞에서 부모의 표정은 순간적으로 변한다. 아이가 명문대에 다니면 어깨가 펴지고, 그렇지 않으면 대답을 얼버무리거나 화제를 돌린다.


아무도 직접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여기서 아이의 성적은 곧 가족의 체면이라는 것을.


그래서 부모들은 교육에 집착한다. 성공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방패이기도 하다.

14억 명의 사회


중국에는 14억 명의 사람들이 산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기회는 언제나 부족하다. 칭화대에 들어가는 것은 한국에서 서울대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부모들은 안다.

지금 놓치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의 시간은 최대한 공부에 투자된다. 영어, 수학, 과학, 코딩, 예체능까지. 하루 24시간은 부족하고, 주말이라는 개념은 점점 사라진다.



26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


나는 그 풍경을 처음 봤을 때, 조금 과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 좀 더 자유롭게 놀게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26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 생각은 조금 바뀌었다.


그것은 단순한 교육열이 아니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한다.


중국 부모들도 한국 부모들과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최고의 것을 아이들에게 주고 있었다. 시간, 정성, 기다림, 그리고 사랑.


그 방법이 낯설고 과하게 보일지라도, 그 마음만은 한국의 부모들과 다르지 않았다.



어느 밤, 다시 그 길을 걷다


얼마 전, 나는 우연히 늦은 밤 그 학원가가 있던 곳을 다시 지났다.


26년 전만 해도 논밭이었던 그 자리의 낡은 학원가는 없어졌지만 고층 빌딩이 들어서 있었고, 높은 빌딩의 불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없어진 그 학원가와 학생을 떠올렸다.


26년 전, 처음 상하이에 왔을 때 나는 이 도시가 낯설고 서툴렀지만, 이제는 내 삶의 절반 이상을 보낸 곳이 되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불빛 속에는 누군가의 기대가 있고, 누군가의 불안이 있고, 누군가의 희망이 있다고.


그리고 그 작은 불빛들이 모여, 오늘의 중국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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