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 엘리트는 의대를 선택할까

두 사회, 두 개의 두려움에 대하여

by 경계인

어느 사회의 미래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은 어디일까.


나는 오랫동안 그 질문을 품고 살았다. 문득 깨달은 것은 그것이 교실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 앉아 있는 맨 앞줄.


교과서를 덮고 어떤 학생이 의대 문제집을 펼치거나, 어떤 학생은 밤늦도록 코딩을 배운다. 그리고 그 작은 선택들이 조용히 모여, 십 년 후, 이십 년 후 한 사회의 풍경을 만든다.


지금 한국에서는 의대로, 중국에서는 공대로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흔히들 말한다. "입시 경쟁 때문이다", "직업 선호도 차이다."라고.


하지만 조금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전혀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왜 어떤 사회의 엘리트는 의사가 되기를 원하고,

어떤 사회의 엘리트는 엔지니어가 되기를 원하는가.

나는 그 질문을 안고 이십 년 넘게 중국에서 살았다.

스무 살도 되기 전, 어머니의 강요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낯선 땅에 혼자 떨어졌다. 중국어 한 마디 모르던 소녀는 그곳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가정을 꾸렸다. 중국인 남자와 결혼했고, 한국인으로서 중국에 기반을 둔 한국 기업의 인사팀장이라는 낯선 자리에 앉게 되었다.


두 사회의 경계선 위의 삶. 그것은 매일 비교하고 관찰하며 이해하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한 가지 장면을 반복해서 목격했다.


중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공대를 간다.

컴퓨터공학, 전자공학, 인공지능, 반도체.


그들에게 기술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이러한 전공은 국가의 미래와 연결된, 거의 신성한 분야처럼 여겨진다. 중국에서 엔지니어는 기술자가 아니라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들이 짠 코드 하나, 설계한 회로 하나가 결국 국가의 경쟁력이 된다는 믿음이 있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기술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사회 전체가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공대를 나와 기술 기업에 가는 것은 가장 확실한 성공의 경로로 인식된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그 선택 뒤에는 집단적인 기억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은 오랫동안 "뒤처진 나라"라는 감각 속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기술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국가적 자존심의 문제가 된다. 서구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더 나아가 앞서겠다는 열망이 공대생들의 등 뒤에서 조용히 숨 쉰다.


반면 한국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한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의대를 선택한다. 의사는 오래전부터 존경받는 직업이었지만, 지금의 의대 쏠림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의대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안정적인 경로가 되었다. 아니, 안정적이라는 표현보다는 "추락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한국은 이미 고도로 발전한 사회다. 산업화도, 민주화도, 기술 성장도 이미 한 번 크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또 다른 감각을 체득하게 되었다.


불안


IMF 이후의 경제 위기, 불안정한 노동시장, 치열한 입시 경쟁, 그리고 무너진 중산층의 꿈. 이 경험들은 한국 사회에 한 가지 집단적인 감정을 주입했다.


"실패하면 다시 올라오기 어렵다."


그래서 한국에서 의대는 성공의 상징을 넘어, 생존의 보증서처럼 여겨진다. 의사가 되면 적어도 경제적으로 추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아이의 미래가 적어도 내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에서 나타나는 두 사회의 차이다.


중국은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회다.

한국은 추락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회다.


그래서 중국의 엘리트는 세상을 바꾸는 기술을 선택하고, 한국의 엘리트는 가장 안전한 직업을 선택한다.


물론 이 비교가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임을 안다. 한국에도 세계적인 엔지니어들이 즐비하고, 중국에도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의대에 가는 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한 사회의 가장 똑똑한 젊은이들이 어디로 몰리는지를 보면, 그 사회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가장 갈망하는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만약 한 사회의 모든 엘리트가 가장 안전한 길만 선택한다면, 그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그 사회는 당분간 안정적일 것이다. 의사들은 병원에서 환자를 볼 것이고, 사회는 큰 혼란 없이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만드는 힘은 조금씩 약해질지도 모른다. 아무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사회에서 혁신은 기적에 가깝다.


반대로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때로 혼란스럽고 불안정해 보인다. 실패하는 스타트업이 넘쳐나고, 방향을 잡지 못한 젊은이들이 방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혁신이,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 열리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가장 안전한 선택이 모여 만들어진, 안정적이지만 새로운 것이 없는 사회인가. 아니면 아직 존재하지 않는 길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많은, 불안정하지만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회인가.

중국과 한국 사이에서 오래 살아온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사회의 모습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성격이나 문화적 특성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공유하는 두려움과 희망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두려움은 때로 우리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뒤처질까 봐 두려워 우리는 더 빨리 달리고, 추락할까 봐 두려워 우리는 더 단단한 땅을 찾는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모여, 결국 한 시대의 풍경을 만든다.

오늘도 한국의 교실에서는 누군가 의대 문제집을 펼치고, 중국의 교실에서는 누군가 코딩을 배운다.


그 선택들은 조용히, 그러나 하나하나 쌓여간다.


그리고 언젠가, 십 년 후 혹은 이십 년 후, 우리의 다음 세대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그때, 왜 모두 그 똑같은 길을 선택했나요?"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두려움은 과연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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