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경계 위에 서서 본 한국 사회의 풍경

by 경계인

우리는 늘 자신이 서 있는 곳을 기준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그래서 어떤 사회 속에서 오래 살다 보면, 그 사회의 방식이 마치 유일한 기준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특별하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나 역시 그랬다.


열여덟 살, 중국어 한 마디 모른 채 혼자 중국으로 떠났다. 내 선택이라기보다 어머니의 권유에 가까운 일이었다. 사실 나는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누군가가 정해준 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중국 생활이 어느덧 20년을 훌쩍 넘겼다.


처음 몇 년은 그저 낯설기만 했다. 사람들의 말투, 거리의 분위기, 사회가 움직이는 속도. 모든 것이 달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낯섦은 익숙해졌다. 그 사회는 어느 순간 나의 일상이 되었고, 나는 그 안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가정을 꾸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중국이 익숙해질수록 오히려 한국이 낯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을 떠나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두 사회를 동시에 바라보게 된다. 한 발은 한국에, 한 발은 다른 사회에 두고 서 있는 상태. 그 경계 위에 서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한국을 떠난 뒤에야 나는 알게 되었다.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이던 것들이 사실은 하나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한국 사회의 밀도였다.

한국은 놀라울 만큼 촘촘한 사회다. 사람들은 서로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비교하고, 평가한다. 학교에서의 성적, 대학의 이름, 직장의 규모, 직업의 안정성. 삶의 많은 부분이 보이지 않는 기준 위에서 끊임없이 줄 세워진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을 품게 된다.


"내 선택이 틀리면 어떡하지?"


이 질문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감정이다. 많은 선택들이 꿈이나 호기심이 아니라, 실수하지 않기 위한 전략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그것을 한국을 떠난 뒤에야 조금 더 선명하게 보게 되었다.




중국은 완전히 다른 사회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경쟁도 치열하고 교육열도 높다. 부모들은 자녀의 미래를 위해 많은 것을 투자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사람들이 선택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어떤 선택이 "틀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게 작동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장 안정적인 길을 찾는다. 위험이 적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길.


반면 중국에서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더 자주 듣게 된다.


"그래서 한번 해볼 생각은 없나요?"


이 질문에는 묘한 낙관이 담겨 있다. 실패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도해 보는 태도.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의 분위기 속에는 시도 자체를 크게 비난하지 않는 공기가 존재한다.




두 사회를 오가며 살아오면서 나는 종종 생각하게 된다.


한 사회의 모습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 걸까. 사람들의 성격 때문일까. 문화 때문일까. 아니면 오랜 시간 쌓여온 경험 때문일까.


아마 그 모든 것이 조금씩 섞여 있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한 사회 안에서만 살아가면 그 사회의 방식이 마치 유일한 방식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때로는 거리가 필요하다.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당연했던 것들이 질문이 된다. 늘 그래왔던 방식이 사실은 하나의 선택이었음을 알게 된다.




나는 오랫동안 누군가의 선택을 따라 살아온 사람이었다. 중국 유학도 그랬고, 삶의 많은 결정들이 그랬다. 그러나 두 사회 사이에서 살아오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사람이 자신의 관점을 갖게 되는 순간은 거창한 사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대개는 단지 다른 곳에서, 같은 세상을 다시 보게 되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한국을 떠나 살며 내가 가장 자주 하게 된 일은 관찰이었다.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희망하는지.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왜 이렇게 선택할까.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사회가 되어갈까.




나는 여전히 그 질문 속에 서 있다.


어쩌면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의 역할은 두 개의 다른 지도를 나란히 펼쳐 보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나만 보면 특별할 것이 없지만, 나란히 놓고 보면 비로소 차이가 드러나는 법이니까.


한국을 떠나 살며 내가 얻은 것은 하나의 확신이다.


사회는 멀리서 볼 때 더 잘 보인다.


그리고 때로는 조금 떨어져 바라본 시선이, 우리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를 조용히 알려주기도 한다.


두 사회 사이에서, 오늘도 나는 나 자신과 한국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