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 사람들은 늘 바쁜데도 불안할까

한국이라는 이름의 러닝머신에서

by 경계인

가끔 한국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다.


출근 시간 지하철, 사람들의 표정이다.


입을 꾹 다문 채, 누군가는 휴대폰 화면 속 뉴스를 따라 눈동자를 움직이고, 누군가는 작은 단어장을 손에 쥔 채 입술로 단어를 되뇐다. 노트북을 연 사람은 이른 아침부터 일하는 중이다. 모두들 어딘가로 향하고 있지만, 정작 그곳에 닿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


고요하지만 고요하지 않은 풍경.


그 속에 서 있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왜 이렇게 서둘러야 할까.

그리고 그 서두름은 어디로 우리를 데려가고 있는 걸까.

나는 열여덟 살에 중국으로 갔다.


낯선 땅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처음 몇 년은 그저 그곳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랐다. 언어도, 문화도, 사람들의 숨 쉬는 방식도 모두 달랐다. 그곳에서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다른 시선을 갖게 되었다.


두 사회 모두 바쁘다. 경쟁은 치열하고, 교육열은 하늘을 찌른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이든 한다. 더 나은 삶을 향한 열망은 어느 사회나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한국 사람들의 얼굴에는 보이지 않는 시계가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사람들은 그 소리에 쫓기듯 산다.

한국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이 마치 하나의 시간표처럼 짜여 있다.


몇 살에 무슨 시험을 보고, 몇 살에 어디에 취업하고, 몇 살에 결혼하고. 그 시간표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묘한 질문이 나를 따라온다.


“지금 이걸 하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이 질문은 단순한 고민이 아니다. 그 안에는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만들어 온 감정이 담겨 있다.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중국에서도 경쟁은 치열하지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일단 한번 해보죠.”


이 말은 놀라울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물론 그 '한번'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일단 해보자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왜 이 말이 그렇게 무겁게 느껴질까. 왜 '한번' 해보는 것이 쉽게 용기 나지 않는 걸까. 왜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으면 오히려 대책 없이 일만 벌여놓고 무모하게 질러버린다고 비난받는 것일까.


어쩌면 그 이유는 우리가 걸어온 길이 너무 가팔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국은 오랫동안 너무 빨리 달려야만 했던 나라였다. 전쟁의 폐허 위에 나라를 세우고, 가난을 딛고 일어서고, 세계 속에 이름을 알리기 위해 우리는 쉴 새 없이 달려야 했다. 멈추는 것은 곧 뒤처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숨 고르지 않고 달리는 습관은 우리 몸속 깊이 배어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산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게으름을 모른다. 하지만 그 열심은 때로 우리 자신을 가둬버린다.


아무도 멈추라고 말하지 않지만, 이제 아무도 스스로를 멈출 수 없다.


나는 한국 사회를 가끔 이렇게 생각한다.


거대한 러닝머신 위를 걷는 사람들.

모두 열심히 걷고, 뛰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다. 그래도 결코 멈출 수 없다. 뒤처질까 봐, 넘어질까 봐, 혹시 모두가 달리는데 나만 서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속도를 높일수록 오히려 불안은 커진다.


이 속도가, 이 서두름이, 정말 우리를 어디론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고 있는 것일까.


멀리서 바라본 사회는 당연해 보이던 것들을 질문으로 바꾸어 놓았다.


왜 우리는 이렇게 바쁜가.

왜 우리는 이렇게 불안한가.

그리고 그 바쁨과 불안은 언제쯤 멈출 수 있는가.


질문은 쉽지만, 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도착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길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길 위에서는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어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나는 여전히 두 사회 사이에 서 있다.


한국에 가면 빠른 속도에 잠시 숨이 막히고, 중국으로 돌아오면 그 속도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빨리 달리는 법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호흡을 고르는 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진짜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운다.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이 길은 정말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인가.


그 질문 앞에 서는 순간, 우리는 조금 다른 속도로, 조금 다른 방식으로 걷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천천히, 그러나 더 선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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