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를 요리하다:셰프의 식탁에서 다시 태어나는 우리술

전통주 주(酒)저리 주(酒)저리-232

최근 종영된 <흑백요리사 2>는 단순한 요리 경연 프로그램을 넘어, 전통주가 현대 미식 담론 속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라 생각한다. 이번 시즌이 특히 주목받은 이유는 몇몇 셰프의 요리 과정에서 전통주가 음식과의 ‘페어링’이라는 맥락으로 자연스럽게 등장했다는 점이다. 셰프들은 전통주의 맛과 향을 자신의 요리 언어로 해석하며 접시 위에 풀어냈다. 이는 전통주가 조리의 보조적 재료나 배경적 소품에 머물렀던 기존 방송들과 분명한 차이를 만든다.

1.jpg 최근 종영된 흑백요리사2 포스터 @넷플릭스


‘술빚는 윤주모’는 소줏고리를 활용한 라이브 증류와 ‘주모의 한상’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특히 머릿고기 수육과 애호박 찌개가 막 증류한 술과 어우러지면서 술과 음식의 관계를 단순한 곁들임을 넘어, 서로의 맛을 증폭시키는 동등한 파트너로 제시했다. 이러한 장면은, 심사를 넘어 우리 전통주 문화의 본질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이어 등장한 ‘4평 외톨이’는 주안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트러플을 곁들인 한우 떡갈비와 고등어 비빔밥을 약주와 페어링해 전통과 현대의 감각을 조화롭게 풀어내며 심사를 통과했다. 마지막으로 ‘아기맹수’는 쑥 두부무침, 오징어 냉이 무침, 방풍 암꽃게 무침 등 고기 없이 나물 위주로 구성한 ‘박주산채’ 술상을 선보였다. 이는 전통주 안주가 고기나 전류에 국한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또 다른 형태의 전통 술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시도였다.

2.jpg ‘술빚는 윤주모’의 술과 음식평 @넷플릭스


이처럼 그동안 전통주에 대한 설명과 홍보는 주로 제조 공정, 역사성, 지역성 등 생산자 관점의 정보 전달에 집중됐다. 이러한 접근은 전통주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이바지했지만,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다소 무겁고 접근하기 어려운 ‘공부해야 할 대상’이라는 거리감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반면 <흑백요리사 2>에서 셰프들이 전통주를 다루는 방식은 더 실용적이다. 전통주는 복잡한 배경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요리의 맛과 구조를 함께 만드는 요소로 제시되었다. 방송에서 보여준 다양한 음식과 전통주의 페어링은 시청자로 하여금 전통주를 ‘알아야 하는 술’이 아니라, ‘당장 저 요리와 함께 마셔보고 싶은 술’로 인식하게 만드는 인식의 전환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셰프는 전통주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셰프는 양조 방식이나 원료에 대한 정보를 그대로 전달하기보다, 이를 맛의 경험으로 전환해 설명한다. 예를 들어 “이 술의 산미가 지방의 무게감을 덜어준다”거나, “증류주의 곡물 향이 식재료의 본연의 맛을 증폭시킨다”라는 식의 제안은 소비자에게 그 어떤 화려한 마케팅 문구보다 강력한 설득력이 있다. 특히 셰프가 전통주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 전통주는 단순한 메뉴 구성 요소를 넘어 해당 레스토랑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하나의 브랜드 요소로 작동할 수 있다. 이는 전통주가 양조장의 물리적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셰프의 요리 철학과 특정 레스토랑의 정체성이 결합한 하나의 고유한 ‘미식 브랜드’로 진화할 수 있다는 산업적 가능성을 시사한다.

3.jpg 파인다이닝 식당에서의 전통주 페어링 @이대형

방송을 통한 이러한 노출은 전통주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일정 부분 이바지했다. 전통주를 명절의 제례용 술이나 어르신들의 술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해방시켜, 힙(Hip)한 레스토랑에서 셰프의 선택을 거쳐 제공되는 세련된 기호품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결국 전통주가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하나의 지속 가능한 산업이자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셰프들이 운영하는 실제 영업 현장에서의 소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셰프는 손님과 가장 가까운 접점에서 전통주를 직접 경험하게 만드는 최전선의 큐레이터이기 때문이다. 셰프가 자신의 요리에 어울리는 전통주를 엄선해 리스트를 구성하고, 그 페어링의 당위성을 손님에게 직접 전달할 때 전통주는 비로소 식탁 위의 살아있는 주인공으로 부활한다.


무엇보다 셰프의 선택은 소비자에게 ‘품질에 대한 신뢰’의 척도가 된다. 특정 셰프의 요리에 대한 신뢰는 그가 선택한 술에 대한 신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셰프들이 전통주에 더 깊은 관심을 두고 이를 레스토랑 운영의 핵심 경쟁력으로 삼을수록, 전통주는 외식 문화의 변두리가 아닌 당당한 주류로 편입될 것이다. 셰프들의 영업 공간에서 전통주 소비가 활발해진다는 것은 단순한 판매량 증가를 넘어, 전통주가 지닌 미식적 가치가 대중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통주의 미래는 더 이상 양조장에서 빚어진 술이 유통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셰프의 손끝에서 시작된 전통주의 매력은 식당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확장되며, 이제 대중의 일상적인 음주 문화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 준비를 마쳤다. 전통주가 세계적인 미식의 반열에 오르는 그날은, 이처럼 셰프들이 제안하는 한 잔의 술이 손님의 식탁 위에서 자연스럽게 소비될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4.jpg 셰프의 손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전통주 @이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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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소믈리에타임즈 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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