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라는 명칭이 가려버린 증류식 소주의 가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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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름, 다른 술 - 소주라는 명칭이 가려버린 증류식 소주의 가치 발견


최근 국내 주류 시장은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음주 빈도는 줄고, 한 번에 마시는 양도 적어지는 흐름이 일상화되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취하기 위한 술’보다 ‘맛과 향을 즐기는 술’, 그리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술을 천천히 마시려는 소비 태도가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전통주에 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며, 그중에서도 막걸리와 더불어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주종이 바로 증류식 소주다.

1.jfif 다양한 증류식 소주들


기존의 대중 주류였던 맥주와 희석식 소주가 익숙하지 않거나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세대에게, 향과 개성을 지닌 증류식 소주는 새로운 선택지로 자리 잡고 있다. 곡물의 풍미, 발효와 증류 과정에서 형성되는 향, 숙성을 통해 만들어지는 깊이 있는 맛은 ‘적게 마시되 제대로 즐기고 싶다’라는 오늘날의 음주 문화와 정확히 맞물린다.


증류식 소주는 제조 과정만 놓고 보더라도 일반적인 발효주와 분명한 차이를 지닌다. 어떤 술이든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없지만, 증류주는 발효 이후 다시 한번 증류라는 과정을 거치고, 때에 따라 숙성까지 포함되면서 여러 단계의 공정을 통해 품질을 완성해 간다. 이 과정에서 원료의 특성과 양조 기술, 증류 방식에 따라 도수와 향, 질감이 크게 달라진다. 이러한 점에서 증류식 소주는 단순히 ‘도수가 높은 술’이 아니라, 제조자의 의도와 개성이 명확히 드러나는 주종이라 할 수 있다.

2.png 증류식과 희석식 소주 차이 @농촌진흥청

반면, 일반 대중이 떠올리는 '소주'는 대부분 희석식 소주다. 주정이라 불리는 고도 알코올(약 95%)에 물과 감미료 등을 혼합해 도수를 낮추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며, 우리가 흔히 접하는 대중 브랜드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향이나 맛을 감상하기보다는 빠른 음용과 취기를 목적으로 소비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많은 소비자는 소주라는 명칭 아래 이 두 주종이 전혀 다른 술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3.jpg 우리에게 익숙한 전국의 희석식 소주 @나무위키


이 혼란의 배경에는 주세법상의 분류 문제가 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국세청은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를 별도의 주종으로 관리했다. 제조 방식이 명확히 다르고, 원료와 공정, 술의 성격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3년 주세법 개정 과정에서 희석식 소주를 규정하던 조문이 삭제되면서, 두 주종은 '소주'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통합되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세율이 동일하다는 점이었지만, 업계에서는 희석식 소주가 지닌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해석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4.jpg 주세법 통합 이유 @주세법


이 명칭 통합은 결과적으로 증류식 소주의 정체성을 흐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조 방식과 품질, 가격 구조가 전혀 다른 두 술이 같은 이름으로 불리며, 증류식 소주는 '비싼 소주' 혹은 '도수 높은 소주' 정도로 오해되기도 한다. 이는 증류식 소주가 가진 문화적 가치와 미식적 가능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 증류식 소주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젊은 세대는 술을 '들이키는 대상'이 아닌 '경험하는 대상'으로 인식한다. 향을 맡고, 잔을 바꾸어 마시며, 음식과의 조화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증류식 소주는 충분히 매력적인 주종이다. 발효와 숙성을 거치며 형성된 풍미는 단순한 알코올 자극과는 다른 만족감을 제공하고, 이는 소량 음주 트렌드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이 지점에서 증류식 소주는 K-Food와의 연계라는 측면에서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해외에서 소비되는 한국 술의 이미지는 맥주와 희석식 소주에 크게 의존해 왔다. 방송과 콘텐츠를 통해 노출되는 한국의 술 문화 역시 대기업 제품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이 장면들이 그대로 해외에 전달되면서 '한국 술=맥주와 소주'라는 인식이 고착되었다.


문제는 이 술들이 해외에서 '맛으로 즐기는 술'이라기보다 '한식과 함께해야만 소비되는 술'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치킨에는 맥주, 김치찌개에는 소주라는 공식은 한국에서는 익숙하지만, 외국 소비자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의 해외 한식 소비자 조사에서는 외국인이 싫어하는 한식으로 '소주'가 꼽히기도 했다. 이는 소주가 고급스러운 미식 경험과 연결되지 못한 채, 강한 술·취하기 위한 술이라는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증류식 소주는 이야기가 다르다. 쌀을 기본으로 한 증류식 소주는 오랜 시간 한식과 함께 발전해 온 술이며, 다양한 음식과의 페어링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향과 맛의 스펙트럼이 넓고, 장기 유통이 가능하다는 점 역시 해외 진출에 있어 강점으로 작용한다. 단순히 '한국의 술'을 넘어, '한국 미식의 일부'로 설명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를 다시 구분해 인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이다. 모든 소주를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버린 현재의 구조에서는 소비자도, 해외 시장도 한국 술의 다양성을 이해하기 어렵다. 주류 소비가 줄어드는 시대일수록, 더 명확한 구분과 설명, 그리고 각 주종의 고유한 가치를 드러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증류식 소주는 단지 '다른 소주'가 아니라, 한국 술이 나아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방향이다. 적게 마시되 제대로 즐기려는 시대, 그리고 K-Food의 다음 단계를 고민해야 하는 지금, 소주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희석식과 증류식의 차이를 다시 들여다볼 때다.

6.png 증류식 소주와 K-Food를 먹는 외국인들 @genspark 생성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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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소믈리에타임즈 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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