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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용 May 11. 2021

미국에는 고아원이 없다... 스티브 잡스처럼 위탁될 뿐

1960년 이후 대부분 사라진 고아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What would you do?)'라는 ABC 방송의 TV 프로그램이 있다. 미국에 있으면서 꽤 즐겨봤다. 방송의 구성은 매우 간단하다.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양심 몰래카메라'다. 연기자들은 각본대로 부도덕한 행동을 한다. 이때 주변 시민들의 반응을 지켜본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미국 사회 저변에 깔린 문제들을 들춰낸다. 민감한 소재들을 과감하게 다룬다. 예를 들면, 인종 차별, 아동 폭력, 학교 왕따 등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평범한 미국인들의 머릿속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한번은 이런 설정도 있었다. 엄마가 두 아이를 데리고 레스토랑에서 식사한다. 노골적으로 한 아이만 차별한다. 4달러 이상의 음식을 못 시키게 한다. 엄마는 이런 대사를 내뱉는다. "넌 우리 가정에 위탁된 아이(Foster Child)야. 주정부에서 한 달에 700불가량 주는데, 너에게 쓸 돈이 부족해."


이 광경을 본 주변 사람들은 영웅으로 변했다. 몰래 아이의 손에 돈을 쥐여 주기도 하며, 음식을 시켜주며 계산까지 한다. 이들에게 몰래카메라라고 밝힌 후 소감을 물어보니 "나도 한때는 위탁 아이였다"고 답했다.


이때 '위탁보호제도(Foster Care System)'를 처음 알게 됐다. 이 제도에 대해 궁금해 미국 친구에게 물어봤다. 친구는 "미국에는 고아원이 없어"라며 "고아의 대부분은 스티브 잡스처럼 가정에 위탁된다"고 답했다. 그렇다. 미국에는 보육원(옛 고아원)이 없다.


사라진 미국 고아원             

▲  1800년대 중반 고아들을 고아열차에 태워 중서부 농촌으로 보냈다.

미국 '고아원'은 1800년대부터 등장했다. 미국으로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때다. 많은 이들이 가난과 알코올 중독에 힘들어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전염병까지 창궐하면서 많은 이들이 죽었다. 고아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던 때다.


고아원은 과밀해졌고, 환경은 열악해졌다. 1800년대 중반에 해결책으로 나온 것이 바로 '고아열차(Orphan Train)'였다. 고아원에 있는 고아들을 가정에 위탁하기 위해 열차를 태워 중서부 농촌으로 보냈다. 기차가 역에 설 때마다 아이들은 일렬로 줄을 섰다. 예비 부모들은 상품 고르듯이 아이들을 선택했다. 간택 받지 못한 아이들은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왔다.


고아열차의 취지는 좋았다. 고아들이 동부 도시의 빈곤을 벗어나 중서부 농장 가정 부모를 만나 바르게 자랄 것으로 사람들은 기대했다. 1854년부터 1929년까지 20만명이 넘는 아이들이 동부에서 중서부로 보내졌다. 이것이 바로 위탁 보호 제도의 시발점이었다.


고아열차의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이를 데려와 무보수로 농장의 부족한 일손을 메꿨다. 고아열차는 사라졌지만, 미국은 여전히 공공복지 일환으로 고아원보다는 위탁가정 정책을 추진했다.


위탁가정 정책 옹호자들은 아이가 성장하는 데 있어 양육자와의 애착 관계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한 시설에 집단으로 모여 성장한 아이들이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발달 지체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사례를 내놓았다.


1950년부터는 정부 지원 정책에 힘입어 고아원보다 위탁가정으로 보내지는 아이의 수가 많아졌다. 1960년에 이르러 '고아원'은 사실상 사라졌다. 지금 미국에는 고아들을 대규모로 장기간 맡아 키워주는 시설이 거의 없다.


그런 시설이 있다 하더라도 보통 아이들이 머무는 기간은 한 달 안팎이다. 신체 또는 정신적으로 장애가 심한 아이들의 경우 시설에 위탁되기도 하지만 보통의 아이들은 가정에 위탁되거나 입양된다.


위탁 보호제도란             

▲  결국 사랑으로 인연을 맺는 것이 위탁 보호 제도의 핵심이다.

위탁보호제도(Foster Care System)란 친부모의 양육을 받지 못하는 아동에게 일정 기간 가정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사고 등으로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들도 있으며, 가정폭력 또는 마약·알코올 중독 부모부터 아동을 보호해야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미국 아동 보호국(Department of Children and Family Service)은 여러 가지 사유를 따져 아이에게 위탁 보호가 필요한지 판단한다. 승인이 나면 아이는 주정부 등에서 시행하는 위탁보호제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아이를 위탁받을 수 있는 조건은 그렇게 까다롭진 않다. 독신, 이혼 등 결혼 여부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범죄, 아동학대 등 이력이 없어야 한다. 위탁가정이 돼 아이를 돌보면 정부로부터 재정지원과 교육을 받게 된다.


아동권리기구(Children's Rightshttps://www.childrensrights.org)에 따르면, 미국에서 2019년 한해 67만명 이상의 아이들이 위탁 보호를 받았다. 3명 중 1명은 유색인종이다. 법적으로 부모 친권이 박탈돼 위탁 보호를 받는 아동의 수는 약 1만7000명정도로 파악된다. 위탁 아동의 평균 나이는 8세 정도다.


위탁 보호의 명암


1980년 12월, 미국의 언론은 '인류는 한 명의 천재를 떠나보냈지만 새로운 천재를 맞이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떠난 천재'는 그 달 세상을 떠난 영국 록밴드 존 레넌을 말한다. '새로운 천재'는 같은 달 나스닥에 상장한 애플 창업주 25살 스티브 잡스였다. 미국 언론에서 천재로 지칭한 이 두 천재는 '위탁 보호'를 받은 바 있다.


존 레넌은 자식이 없는 이모 집에서,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정식 입양되기 전까지 위탁 보호를 받았다. 스티브 잡스는 양부모님을 향해 '나의 1000% 부모님이다'라며 애정을 표현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배우 메릴린 먼로, 에디 머피, 피어스 브로스넌 모두 위탁 보호를 받았다.


반면, 위탁 보호의 문제점도 있다.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은 넘쳐나는데 위탁 가정의 아동복지 역량과 전문성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보호자의 신체적, 성적인 학대도 문제다. 워싱턴주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위탁 보호 아동의 30%가 학대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노숙자의 30%가 위탁 보호 가정에서 자랐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리무브드>(Removed)라는 제목의 단편 영화가 있다. 그 영화의 주인공 10세 소녀의 삶을 통해 미국의 가정위탁제도의 문제점이 잘 드러난다. 영화 제목처럼 소녀는 계속 '옮겨진다(Removed)'.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위탁가정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어 또 다른 가정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는 정서적으로 파괴된다.


모든 정책에는 명과 암이 있다. 위탁보호 제도도 마찬가지다. 어떤 보호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지 차이다. 스티브 잡스처럼 천재로 성장할 수 있고, 리무브드 영화의 비운의 주인공도 될 수 있다. 결국 사랑으로 인연을 맺는 것이 위탁 보호 제도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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