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셉트론 문법 모형의 적용 가능성

"고칠 수 없는 병 따위"??

by 콜랑

퍼셉트론 문법 모형의 적용 가능성

'따위'는 어떤 대상이나 행위 등을 얕잡아 보거나 폄하할 때 사용하는 의존명사다. '따위'가 앞에 오는 명사에 대한 폄하를 표시하니까 '너 따위가'는 '네 까짓 게'라는 뜻이 된다.


이 말은 '따위' 앞에 오는 명사는 모종의 평가 척도상에서 해석됨을 전제로 한다. '너 따위가 뭘 알아?'라는 말은 '무언가를 아는 사람의 집합' 속에 '너'는 포함되지 않거나, 설령 포함되더라도 많이 아는 부류는 아님을 표시한다. 평가 척도와 관련된 의미 해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도, 초자, 까지, 마저' 따위와 비슷하지만 해석 양상은 배타성이 상당히 간취된다는 차이가 있다.


이런 특성을 생각해 보면, '따위' 앞에 오는 명사는 일반적으로 서술 상황의 부정 상황과 관련됨을 나타낸다. '너 따위가 뭘 알아?'에서 '너'는 '뭔가 좀 아는 상황'에 포함되지 않는다.


아래 영상을 보면 "고칠 수 없는 병 따위는 없"다는 발화를 볼(? -> 들을) 수 있다.

세상에 하고많은 병들 중에 고칠 수 없는 병이라... 병(diseases)을 치료 가능성으로 평가하여 고칠 수 있는 병부터 고칠 수 없는 병까지 줄을 세워 보면 '병'의 속성상 고칠 수 없는 병이 평가 절상에 속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영상의 발화에서는 그런 병을 '따위'로 언급한다. 평가 절하한 것이다. 이런 용법은 발화 실수일까?


조금 더 분석해 보면 사전에서 설명하지 않는 '따위'의 용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고칠 수 없는 병'은 박멸해야 할 대상이다. 없애야 한다. 좋게 평가해 줄 수가 없다. 서술 상황('존재하지 않다')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따위'의 선행 명사(병)의 관점에서는 강력한 녀석이지만 인간이 개입되는 서술 상황과 관련해서는 없어져야 할 혹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현실에서는 쉽게 극복되지 않지만 화자의 관점에서는 극복하고 싶은 대상이 '따위'의 선형 명사이다. '폄하'를 표시하는 '따위'의 용법이 극복해야 할 상황 맥락에서는 '극복 대상'으로까지 확대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전이나 논문에서 명확하게 기술되지 않는 용법인데, '폄하'의 의미가 부정 상황 서술의 경우 '극복 대상'과 조화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문법 현상의 변화인지 기존 연구에서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던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코퍼스 자료에서 누군가가 검증해 주면 좋겠군... 운 좋으면 논문 거리가 될지도... 그러나 내가 하긴 귀찮다!!)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따위'의 '폄하' 의미가 화용적으로 '극복 대상'으로 심화됨을 기술하기에는 '퍼셉트론 문법(퍼셉트론 문법 매거진)'이 적절해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퍼셉트론을 이용한 문법 표상(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