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넷플릭스

무엇을 재생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감상하느냐의 문제다

by KOSAKA

뚜둥~!


인생은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플랫폼 위에 놓인 끝없는 플레이리스트와 같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강제로 구독 버튼이 눌린 채, 각자에게 할당된 단 한 번의 오리지널 시리즈를 제작하고 관람하는 주인공이자 시청자가 된다.


이 플랫폼의 가장 가혹하면서도 매혹적인 특징은 정지 버튼이 없다는 사실이다. 현실이라는 스트리밍 서비스는 24시간 내내 실시간으로 송출되며,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세계라는 배경화면은 끊임없이 업데이트된다.


우리는 때로 장르를 선택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대개는 예기치 못한 반전과 설정 오류 속에 내던져진 채 다음 에피소드를 맞이할 뿐이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화려한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 믿는다. 화려한 특수 효과와 웅장한 배경 음악이 깔린 서사 속에서 악당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영웅의 서사를 꿈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되는 진실은, 우리 인생의 대부분이 자극적인 클라이맥스보다는 지루한 일상의 반복으로 채워진 다큐멘터리나 호흡이 긴 일상극에 가깝다는 점이다.


특별할 것 없는 출근길, 반복되는 식사 메뉴,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들은 편집 점을 찾기 힘든 롱테이크 기법처럼 지루하게 이어진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수많은 명작이 그러하듯, 위대한 서사는 자극적인 폭발 장면이 아니라 인물의 미세한 눈빛 변화와 고요한 독백 속에서 완성된다.


우리는 타인의 인생이라는 넷플릭스 썸네일을 보며 끊임없이 자신의 콘텐츠와 비교한다. 소셜 미디어라는 알고리즘은 타인이 가장 공들여 편집한 '하이라이트 릴'만을 우리에게 추천해주고, 우리는 그것을 그들의 전체 시즌인 줄 착각하며 자괴감에 빠진다.


누군가는 벌써 시즌 3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둔 것 같고, 누군가는 화려한 해외 로케이션 촬영 중인 것처럼 보인다.


반면 나의 화면은 여전히 저화질의 흑백 영화 같거나, 전개가 너무 느려 시청 중단을 고민하게 만드는 독립 영화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모든 명작에는 전개의 속도가 다른 법이다. 초반의 지루함을 견뎌낸 서사가 후반부에 폭발적인 감동을 주기도 하고, 자극적으로 시작한 시리즈가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중요한 것은 남의 알고리즘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타임라인을 묵묵히 채워가는 태도다.


인생이라는 넷플릭스에는 수많은 조연과 카메오가 등장한다. 어떤 이는 단 한 장면만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떠나고, 어떤 이는 영원히 고정 출연할 것처럼 굴다가 소리소문없이 하차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인생에서 지나가는 행인 1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절대 잊히지 않는 메인 빌런일 수도 있다. 관계의 편집권은 온전히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때로는 원치 않는 캐릭터와의 갈등이 강제로 삽입되기도 한다.


이러한 갈등과 이별은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장치가 되기도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감정적 소모를 불러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인물을 캐스팅하고, 떠나간 이들의 빈자리를 새로운 서사로 채워야 한다. 시리즈가 계속되는 한 카메라는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은 우리가 과거에 보았던 것들을 바탕으로 미래를 추천한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과거에 내린 선택들과 경험한 감정들은 '당신이 좋아할 만한 선택지'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우리 앞에 나타난다.


실패의 경험이 많았던 사람은 스스로를 비극 전문 배우로 규정하고 자꾸만 어두운 시나리오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언제든 재설정될 수 있다.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를 클릭하는 순간, 플랫폼이 제안하는 미래의 풍경은 바뀐다.


익숙한 슬픔과 안락한 포기에서 벗어나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용기의 장르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의 시청 기록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이다.


가끔 우리는 인생의 '미리보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선택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이 사람을 만나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스포일러가 가득한 영화가 재미없듯이, 결과를 모두 아는 인생은 견딜 수 없는 권태일 뿐이다. 반전이 있기에 우리는 내일을 클릭하고, 결말을 모르기에 오늘이라는 장면을 치열하게 연기한다.


때로는 제작비가 부족해 허덕이는 청춘의 시기를 지나기도 하고, 때로는 시청률이 나오지 않아 외면받는 중년의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모여 '나'라는 유일무이한 아카이브가 구축된다.


인생은 결국 무엇을 재생하느냐보다 어떻게 감상하느냐의 문제다.

같은 장면이라도 어떤 감정의 필터를 끼우느냐에 따라 장르는 순식간에 변한다. 비 오는 날의 고립을 외로움이라는 호러로 볼 것인지, 고즈넉한 사색의 멜로로 볼 것인지는 전적으로 시청자인 나의 몫이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가장 앞좌석에서 지켜보는 관객이자, 현장에서 메가폰을 잡은 감독이며, 조명 아래 서 있는 배우다. 이 다층적인 역할 수행이 고단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내 시리즈의 톤앤매너를 결정할 권한이 오직 나에게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젠가 우리 모두의 스트리밍은 종료될 것이다. '다음 에피소드'라는 버튼이 더 이상 활성화되지 않는 그 마지막 순간, 우리는 자신의 전체 시즌을 복기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세간의 평점이나 화려한 수상 실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내가 연출한 이 투박한 시리즈가 누군가의 가슴 속에 따뜻한 로그라인 하나쯤 남겼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이 긴 이야기를 촬영하는 동안 충분히 웃고 울며 몰입했기를 바랄 뿐이다.


인생이라는 넷플릭스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선택을 기다리며 실시간으로 스트리밍되고 있다. 당신의 오늘이라는 에피소드는 어떤 제목으로 저장될 것인가. 비록 완벽한 각본은 아닐지라도, 당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진솔한 연기가 담긴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될 것이다.


이제 망설임을 멈추고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를 시간이다. 당신의 이야기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으며, 가장 눈부신 시즌은 늘 다음에 올 에피소드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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