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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16. 2024

이언 매큐언 《체실 비치에서》

숫기 없는 영국식 사랑을 향한 고풍스러운 담론...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상대를 향한 절대적인 신뢰일까? 아니면 서로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상황에 대한 긴밀한 이해 혹은 사소하기 그지없는 것에까지 침투해 있는 수줍은 배려? 아니 오히려 피할 수 없는 성적 접촉을 포함하는 유한한 쾌락이야말로 중요한 것이라고 해야 할까? 


  “에드워드와 플로렌스 사이에서는 무슨 일이든 빨리 일어나는 법이 없었다. 중요한 신체 접촉, 지난번보다 더 보거나 만져도 된다는 무언의 허락은 아주 서서히 이루어졌다. 그녀의 맨 가슴을 처음 본 시월의 그날 이후, 한참만인 십이월 십구일에야 그는 그것을 손으로 어루만질 수 있었다. 키스는 다음 해 이월에 했지만 젖꼭지까지는 아니었는데, 오월이 되어서야 딱 한 번 그곳을 입술로 살짝 스칠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사십여년전쯤의 사랑, 영국의 체실 비치에서 벌어진 그 사랑의 끄트머리에 대한 이언 매큐언 특유의 미시적인 관찰 기록인 소설은 그 문장의 유려함과 고풍스러움이 매력적이다. 빠르고 화려하게 변화하는 세상의 풍속과는 무관하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키워왔던 두 젊은이를 다루고 있는 소설은 화려하지 않고 되려 고집스러웠던 사랑을 조용히 기록한다.


  에드워드와 플로렌스는 대학을 다니는 동안 만났고 당시의 세태와는 어울리지 않게 결혼식 당일까지도 아직 섹스를 하기 전이다. 그리고 이제 첫 섹스를 해야 하는 두 사람은 동상이몽 속에서 위태위태하게 진도를 나아간다. 하지만 성적 접촉에 대해 무지하며 또한 공포를 느끼는 플로렌스와 이러한 플로렌스를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에드워드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더디기만 하다.


  “... 무엇이 그들을 방해하고 있는가? 그들의 성품과 과거가, 무지와 두려움과 소심함과 까탈스러움이, 권한과 경험, 느긋한 태도의 결핍이 그랬고, 그 다음엔 막장에 다다른 종교적 금기가, 영국인 특유의 민족성과 계급이, 그리고 역사 자체가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삽입에 이르지도 못한 상황에서 지레 사정을 해버린 에드워드와 그런 에드워드를 방에 남겨 놓고 비명을 지르며 체실 비치로 뛰어나간 플로렌스 사이에는 좁혀지기 힘든 괴리만이 남는다. 그렇게 결혼 첫날 파국을 맞은 두 사람은 이제 서로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몇 마디의 말만을 흔적처럼 남겨놓고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예전 각자의 자리라고 생각했던 곳으로 돌아간다.


  “... 그는 그녀가 키스하는 것, 만지는 것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둘의 몸이 닿는 것도 싫어했고, 심지어는 그에게 관심조차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녀는 관능적이지 않았고 욕망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녀는 그가 느끼는 것을 결코 느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섹스가 없는 부부 사이를 요구했던 플로렌스와 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에드워드의 헤어짐 이후 이제 세월은 흘렀고, 어느 날 에드워드는 플로렌스의 연주회 소식을 듣게 되지만 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존재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제 에드워드는 젊었던 시절 플로렌스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자신을 되돌아본다. 과연 그러한 육체적 결합이 사랑에서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까, 하고...


  “...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확실한 사랑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그의 다독거림뿐이었다. 사랑과 인내가, 그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만 했어도, 두 사람 모두를 마지막까지 도왔을 것이다...” 


  만남에서 결혼, 그리고 결혼 첫날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예상된 듯한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조금은 지루하다싶게 다뤄지고 있는 소설이다. 사랑을 대하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입장 차이가 때로는 긴박하게 때로는 은밀하게 다뤄지고 있는 소설은 일단 그것만으로도 매력적이다. 물론 사랑을 향하여 여과 장치의 사용 없는 집요한 시선을 보낸 이언 매큐언의 의도가 잘 파악되지는 않지만...

 

 

이언 매큐언 / 우달임 역 / 체실 비치에서 (On Chesil Beach) / 문학동네 / 198쪽 / 200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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